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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안녕, 미누씨

입력
2018.10.19 18: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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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비보가 들려왔다. 9년 전 함께 활동하던 동료가 네팔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미누(미노드 목탄)로 알려져 있다. 1992년, 스무 살이었던 미누씨는 한국에 들어와서 동대문 봉제공장, 식당 등지에서 일했다. 또 노래 실력이 뛰어나서 1999년에는 외국인 예능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문화부 장관에게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그가 한국에 들어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이나 제도는 없었다. 1994년 산업연수생 제도가 생겼지만, 연수생이라는 이유로 일을 시키면서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주에 의한 임금 체납, 폭행, 여권 압수, 산업 재해 시 미보상 등 잦은 인권침해를 경험했다. 정부는 문제를 개선하고자 2003년 고용허가제법(‘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지만,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었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으로 많은 이들이 다치고 죽었다.

이런 배경에서 2003년 이주노동자들은 명동성당과 성공회 대성당에 모여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폭력적인 단속에 문제를 제기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미누씨도 농성에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다국적 밴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 Down)’을 결성했고, 다문화 강사, 인권운동 등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꾸려는 일을 시작했다.

9년 전 나는 이주노동자방송 MWTV(현 이주민방송)에서 일했고, 그때 미누씨를 처음 만났다. 그는 이주민 활동가로 유명했고, 내게 동료이자 선배 활동가로 ‘이주’라는 화두를 던져 준 사람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하루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적인 단속을 멈춰 달라는 반대 집회를 열기 위해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에 갔다. 같은 시각 사무실에 출근하던 미누씨는 표적 단속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강제 추방만은 막아 보고자 밤새 보호소를 지키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10월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본 모습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되어 버렸다.

다시 10월이다.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문화’를 표방하면서 포용적인 정책을 펼치는가 하면, 동시에 ‘불법’적인 존재로 낙인찍으며 배제하는 정책이 오늘날 이주민에 대한 정책이다.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도 그렇다. 법무부는 제주도 내 예멘 난민 심사 대상자 중 339명에게 인도적 체류 허가를 내줬지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없었다.

지난달 법무부는 ‘불법 체류ㆍ취업 외국인 대책’을 발표했다. 이주노동자들이 건설업 분야에서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기 때문에 정부는 이들을 강제 추방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나 노동환경은 개선하지 않은 채 이주노동자를 불법적인 존재로 간주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을 정부에서 대책으로 발표한 셈이다.

“우리 집 뒷산은 히말라야다”며 너스레를 떨던 미누씨와 “우리 집 텃밭에 토마토가 자라고 있다”던 미누씨에게 “우리 집”은 네팔이기도 했고, 한국이기도 했다. 그는 네팔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한국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여전히 한국에는 미누씨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때로 음악가로, 노동자로, 활동가로, 학생으로, 이웃이자 동료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다.

공연할 때마다 빨간 목장갑을 끼고 노래를 부르던 미누씨가 생각난다. 목장갑은 노동자를 상징하는 것이자 프레스 기계에 손이 잘린 이주노동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애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좋아하던 토마토는 여전히 푸릇하다. 너무 늦은 인사가 되어 버렸지만 다시 만나면 해 주고 싶었던 말을 이제야 전한다. 안녕, 미누씨. 보고 싶었어요.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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