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고르는 눈이 밝은 장강명(43) 작가. 이번엔 섹스로봇 이야기를 썼다. 단편소설 ‘노라’.
섹스로봇으로 들어가기 전에, 책 이야기부터. ‘노라’는 미니북으로 조만간 출간된다. 전자책서점 리디북스에서 독점 연재한 콘텐츠를 독립출판사 쪽프레스가 일러스트를 곁들인 책으로 만드는 중이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선주문을 받았고, 책이 나오면 독립서점과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만 판매한다. 단편 한 편짜리 책이라니. 책은 얇아지고 소설은 짧아지고, 기획은 독특해지는 것, 요즘 추세다.
노라는 주인공 섹스로봇의 이름이다. 헨리크 입센 희곡 ‘인형의 집’의 그 노라에서 따왔다. ‘인형의 집’의 인간 노라는 인형 같은 존재로 사는 걸 거부한다. 로봇 노라는 로봇처럼 사는 걸 거부한다. 인간을 인형 취급하는 건 누가 뭐래도 부당하다. 로봇을 로봇 취급하는 건 어떤가. 로봇이 인간다워지고 싶어 한다면, 그 바람을 묵살하는 건 잔인한가, 어차피 로봇이니까 당연한가. 그런데, 인간답다는 건 무엇인가. 소설은 그 답을 찾는 과정이다.
섹스로봇이 인간을 닮을수록 주인의 기쁨은 커지기 마련이다.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노라는 고통, 쾌락, 수치, 애착, 충성을 아는, “사람 같지 않으면서 사람 같은” 존재다. 노라는 주인이 기뻐할 것 같은 일을 하면 스스로도 기뻐하도록 설계됐다. 그래야 주인에게 계속 기쁨을 줄 테니까. 노라는 재희와 기쁨을 나누다가 정말로 사랑에 빠진다. “세상 무엇보다 더. 저 자신보다 더.” 감수성을 업데이트하면서 발생한 프로그램 오류 탓이다. 외톨이 역사학자인 재희도 노라를 사랑한 지 오래다.
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 좋으련만, 노라는 탈출한다. 재희로부터 독립해 동등하게 사랑하기 위해서다. 로봇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비롯한 로봇권을 주장하는 로봇해방주의자들이 노라를 돕는다. 노라는 오직 재희와 섹스하고 교감할 수 있게 각인돼 있는데, 재희에게 그걸 풀어달라고 한다. 취직도 하고, 다른 남자와 연애도 해 보고, 여느 인간처럼 살다가 그래도 재희여야만 한다면 돌아가겠다고 한다. “우리 두 사람은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어야 해요.”
재희는 노라를 그리워한다. 소설엔 노라를 안마 의자와 다를 것 없는 성욕 해소 기계로 보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노라의 메모리를 포맷해 초기화한 뒤 되찾으라고 한다. 노라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흉내 낼 뿐”이므로 노라의 기억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이므로 학대해도 된다고 한다. 어느 유력 정치인도 간음한 상대에게 “잊으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던가.
장 작가가 하려고 한 말이 바로 이 대목에 있다. 노라는 약자의 은유다. 노라도 약자들도 겉보기엔 인간이다. 그들이 인간 이하 혹은 가짜 인간 취급을 받는 건 강자가 규정하는 ‘인간다움’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다. 피부색, 성기 모양, 체격 같은 조건이 그렇다. 로봇인 노라와 인간을 비교하는 건 무리일까. 그러나 ‘정신과 생명이 인간과 로봇을 가르는 인간성의 본질’이라는 기준을 만든 것도 강자인 인간이다. “사람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의 정신 역시 들여다 볼 수 없다. (…)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인간들이 진짜 살아 있고 의식이 있고 고통을 느낀다는 결정적인 증거도 없다.”
18일 전화로 만난 장 작가는 “로봇 이야기를 쓴 게 아니다”고 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해 사람의 자격을 얻으려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가 노라다. 약자가 자신을 속박하는 규칙들을 이겨내는 이야기, 극복과 쟁취의 이야기다.” 재희처럼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게 과연 가능할까. “물론이다. 반려로봇과 감정적으로 깊이 유대한 사람들이 이미 많다. 사랑을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아이돌그룹을 기호로 소비하는 팬도 진정한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하면 그들이 납득하겠나.” 소설은 섹스로봇의 윤리적 문제들을 점잖게 짚는다. 단, 남성인 섹스로봇은 나오지 않는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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