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60) 실종 사건과 관련, 사우디 정부가 정보기관 관계자의 심문 중 실수로 카슈끄지가 사망했다는 내용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화함에 따라 사망은 인정하되 하급 담당자의 단순한 ‘일탈 행위’로 규정, 권력 핵심부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사우디의 석연치 않은 해명을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5일(현지시간) CNN은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사우디 정부가 카슈끄지가 심문 도중 잘못 돼 사망했음을 인정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는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특히 카슈끄지에 대한 작전이 당국 승인 없이 진행됐다는 점을 강조해 사우디 왕실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워싱턴포스트(WP)도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 WSJ는 “사우디 정부가 심문 과정에 실수가 있어서 사망했다는 내용을 발표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며 “이렇게 함으로써 왕실과의 거리 두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WP는 “미 당국자들은 사우디 정부가 자신들이 카슈끄지의 죽음과 연계돼 있음을 인정하되, ‘망친 작전’이라고 주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사우디의 첩보원이 정부에 알리지 않고 비밀 작전을 펼쳤다 카슈끄지가 사망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과 20분간 통화를 한 뒤 기자들을 만나 “그(살만 국왕)는 매우 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진짜 알지 못했을 수 있다.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킬러(rogue killers)’가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터키 경찰은 카슈끄지 실종 약 2주 만인 15일(현지시간) 오후 사우디 허락을 받아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을 처음으로 조사했다. 수사팀은 9시간에 걸친 밤샘 조사에서 건물 벽면의 혈액 검사를 확인하는 등 증거물 수집에 총력을 다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수사팀이 독극물을 찾고 있고, 혹시 페인트칠로 덮어버린 것은 없는지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터키 매체가 전했다. 터키 고위 관리는 AP 통신에 “카슈끄지가 영사관에서 살해된 증거를 확보했다”면서도 “지금 당장 공개할 수 없지만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터키 당국은 영사관에 이어 인근 사우디 영사의 자택도 수색할 방침이라고 밝혔는데, 이 소식이 알려진 뒤 사우디 영사가 자국으로 출국한 사실도 확인됐다. 앞서 터키 당국은 자체 조사를 통해 사우디 왕실 지시로 카슈끄지가 영사관 내에서 암살됐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사우디에 급파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6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도착, 살만 국왕과 실권자로 알려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를 잇따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빈 살만 왕세자는 폼페이오 장관에게 “우리는 강하고 오래된 동맹국이다. 우리는 우리의 도전을 함께 마주하고 있다”며 따뜻하게 환대했다고 AFP는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17일 터키로 이동해 터키 외무장관과 회동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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