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인사이드]

서울 서초구 휠라코리아 사옥. 휠라코리아 제공

“1911년 여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휠라가 오늘 또 다른 시작을 알렸다.”

윤윤수 휠라 그룹 회장은 지난달 휠라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패션위크 무대에 자사 제품을 선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한국 브랜드가 된 휠라가 패션위크 데뷔를 고향에서 성공리에 마친 것에 대한 감회를 밝힌 것이다.

브랜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는 패션위크에 스포츠 브랜드가 참가한 사례가 흔치 않아 휠라의 이번 밀라노 패션위크 진출은 세계 패션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물간 중장년층 브랜드로 인식되며 휘청거렸던 휠라는 주인이 바뀐 뒤 다시 10~20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지난날의 영광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글로벌 본사를 해외 지사가 인수

휠라를 이야기할 때 ‘꼬리가 몸통을 삼켰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해외 지사가 본사를 인수한 드문 사례인 까닭이다. 휠라는 1911년 이탈리아 밀라노 인근 소도시 비엘라에서 휠라 가문 형제들이 속옷을 판매하면서 시작됐다. 1970년대에 들어서 스포츠웨어를 내놓으며 본격 성장했다. 특히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 테니스 스타 비외른 보리가 휠라 제품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선 뒤 세계적인 인기 브랜드가 됐다. 1980년대에는 스포츠화 분야에 도전해 성공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1990년대까지 승승장구하던 휠라는 유럽 시장이 부진하며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수년간 적자를 이어가다 2003년 윤 회장이 미국 헤지펀드와 함께 설립한 지주회사 SBI에 매각됐다. 이후 윤 회장은 2007년 전 세계 휠라 브랜드 사업권을 관리하는 지주회사인 휠라 룩셈부르크를 인수하며 휠라 브랜드의 새 주인이 됐다. 휠라 관계자는 “여러 경쟁사 중 휠라코리아가 최종 인수자로 결정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휠라의 전세계 27개 지사 가운데 유일하게 계속 흑자를 내고 있었던 윤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신뢰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으로 위기 딛고 재도약

윤 회장은 소매 위탁 매장을 줄이는 대신 ABC마트, 슈마커 같은 대형 신발 멀티숍으로 도매 유통을 늘려 재고 부담을 줄였다. 2009년 중국 푸젠성 진장지역에 글로벌 신발 소싱센터를 건립해 신발 샘플을 자체 개발하면서 생산 단가를 크게 낮췄다. 타이틀리스트, 풋조이 등 브랜드를 보유한 전 세계 골프용품 1위 기업 ‘아쿠쉬네트’를 인수하고, 중국 업체와 합작해 현지 법인 ‘풀 프로스펙트’를 설립하는 등 해외 사업도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올 초 휠라코리아 단독 대표이사로 취임한 윤 회장의 아들 윤근창 사장은 2007년 휠라USA에 입사한 뒤 CFO(최고재무책임자) 등을 역임하며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 내 사업을 흑자로 돌려놓았다.

휠라 부활의 원동력은 국내사업 실적 개선이다. 노후화된 브랜드 이미지로 인해 휠라는 국내 시장에서 오랫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윤 회장은 2015년 휠라코리아를 전면 리뉴얼하고 경쟁력 없는 사업부문에 구조조정을 결정했다. 그러나 금세 효과가 나온 건 아니었다. 2011년 550억에 달했던 영업이익이 2016년 310억원 적자로 내려앉으며 휠라는 큰 위기를 겪었다.

윤 회장 부자는 이에 굽히지 않고 1990년대 유행했던 큰 로고 티셔츠, 현대적 감성을 입힌 운동화 등을 선보이며 10, 20대 소비자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1970년대 휠라의 테니스화를 본뜬 ‘코트 디럭스’ 신발은 2016년 출시 이후 현재까지 130만족이 팔렸고, 복고풍 어글리 슈즈 인기를 타고 ‘디스럽터’ 2’는 100만족 가까이 판매되며 회사 실적을 견인했다. 그 결과 휠라코리아는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해 1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265억원의 흑자를 냈다. 해외 사업까지 연결한 전체 실적으로는 매출이 2016년 9,671억원에서 지난해 2조5,303억원으로 크게 뛰었고 영업이익도 2016년 118억원에서 지난해 2,175억원으로 급증했다.

향후 전망도 긍정적이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휠라코리아는 전 사업부의 고른 실적에 힘입어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67% 증가한 593억원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며 “국내에서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해졌고, 미국 및 유럽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브랜드 재평가가 진행되며 성과가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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