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1년새 6명의 대법관이 교체되면서, 언제나 ‘보수 우위’였던 대법원이 사상 처음으로 보수ㆍ진보 대법관의 ‘수적 균형’을 이뤘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후년 상반기까지 현재의 대법관 구성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국정농단 사건’ 등 폭발력 높은 사건 선고가 줄줄이 예고돼 있어, 앞으로 1년 반 동안 대법원에서 전례 없이 팽팽한 보수-진보 간 법리 논쟁의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이 김상환 서울중앙지법 민사1수석부장판사를 다음달 2일 퇴임하는 김소영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 제청함에 따라 대법원의 이념 스펙트럼은 보수-중도-진보 간의 균형이 이뤄질 전망이다.
법조계에선 김 후보자가 임명되면 대법원장을 포함한 14명의 대법관 구성이 보수 5명, 진보 5명, 중도 4명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후보자는 2014년 부산고법 부장판사 재직 시절 대림자동차의 정리해고를 무효라고 보는 등 사회적 약자 편에선 진보적 판결을 많이 내렸다. 김 후보자는 국회 본회의 표결을 통과하면 임명이 확정된다.
기존 대법관 중 진보에 속하는 이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이 대표적이다. 진보 성향 우리법연구회 회원이었던 박정화ㆍ노정희 대법관, 우리법연구회장을 거친 김명수 대법원장도 진보로 분류된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임명한 조희대ㆍ권순일ㆍ박상옥ㆍ이기택ㆍ김재형 대법관은 모두 보수성향이라는 평가에 법조계 내에서 큰 이견이 없다. 나머지 4명인 조재연ㆍ민유숙ㆍ안철상ㆍ이동원 대법관은 이념적 성향이 도드라지지 않는 중도 인사들이라는 평이 우세하다.
대법원이 이렇게 이념적 균형을 이루는 된 것은 1948년 사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진보 정권인 노무현 정부 때 진보 대법관 그룹인 ‘독수리 5남매’(이홍훈 김지형 박시환 전수안 김영란)가 있었지만, 이들은 소수파였다. 양승태 사법부와 김명수 사법부에서 임명제청된 대법관이 7명으로 동률을 이루면서 생긴 현상으로 풀이된다. 이 체제는 2020년 3월 조희대 대법관이 퇴임할 때까지 1년 반 동안 계속된다.
대법원이 이념적 균형을 이루는 올해 말과 내년 중에는 정치ㆍ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된 사건 다수가 대법관들의 판단을 받는다.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뇌물 혐의 재판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돼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최종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5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 역시 내년 중 대법원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양심적 병역거부, 일본 강제징용 손해배상,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의혹 사건 등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다른 사건들도 내년 중 대법원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보수와 진보가 5명으로 동률을 이룬 현 체제에선, 특히 전원합의체(법원행정처장을 뺀 대법관 13명으로 구성)에서 중도파 향배가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판례 변경 등 중요한 사건을 다루는 전원합의체는 7명이 의견을 함께하면 의결에 이를 수 있다. ‘독수리 5형제’ 퇴임 이후 보수 일색이었던 대법원 판결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과거 독수리 5남매 시절은 5명이라는 수적인 한계로 판례까지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중도 성향 2명만 합류하면 상당수 사건 판례가 진보 방향으로 바뀔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어느 때보다 치열한 법리 논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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