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이 젤리처럼 흔들리더니 먼지를 뿜으면서 주저앉았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팔루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한 싱가포르인 응 콕 총(53)씨는 지난달 28일 7.5 강진이 강타한 순간 눈앞에서 펼쳐진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가 공개한 현장 사진에 따르면 5층 높이 호텔은 지진 이후 3층 높이로 줄어들었다. 쓰러진 담장은 물론 호텔 앞 보도에 깔린 블록까지 모두 쓸려가 이 지역을 휩쓴 지진과 쓰나미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그는 “지진이 날 땐 넘어져서 이리저리 뒹굴었다. 너무 흔들려서 땅바닥에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고 싱가포르 채널뉴스아시아방송에 전했다.
통신은 일부 복구, 구조장비ㆍ구호물자 역부족
사태 발생 사흘째인 1일 인도네시아 당국은 구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민 안전 및 피해 상황 파악을 위해 자카르타에서 급파된 주 인도네시아 대사관 유완수 영사(경찰청 파견)는 이날 전화통화에서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작업을 하느라 도시 사방이 분주하다”며 “물, 식량은 물론 구조, 복구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군의 도움으로 전날 팔루에 들어간 그는 “광업에 종사하는 1명은 생존이 확인됐다”면서 “붕괴한 로아로아 호텔에 투숙한 나머지 1명은 아직까지 연락 두절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조와 복구 속도는 좀처럼 붙지 않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도로가 심하게 파손돼 장비를 실은 차량들의 팔루 진입이 쉽지 않다”며 “구조대원들이 잔해를 제거하고 수색하기 위해 중장비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구조작업을 진두 지휘해야 할 팔루시의 컨트롤 타워라고 할 수 있는 전ㆍ현직 시장이 모두 사망, 사태 수습이 원활하지 않다.
전날 현장에 도착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군경에 총력 구조와 복구를 거듭 지시 하면서 주민들에게는 구호품을 최대한 공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다만 통신은 복구돼 일부 지역에서는 전화가 터지기 시작했다. 28일 강진 발생 당시 파손된 팔루 무티아라 SIS 알 주프리 공항도 활주로가 전날 복구돼 군수송기의 이ㆍ착륙이 재개됐다. 하지만 관제탑과 터미널이 없어 민항기 운항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혼란 가중되는 술라웨시
수송기로 구호품이 유입되기 시작했지만, 30만명 시민 모두가 사실상 이재민인 탓에 혼란상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날부터 이어진 약탈이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CNN인도네시아는 “당국이 술라웨시에서 일어나는 약탈을 방관하고 있다고 현지 소매협회가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로이 니콜라스 소매협회장에 따르면 지역주민들이 40여개의 매장과 국영석유 회사 트럭을 털었다.
관련 언론보도도 혼선을 빚고 있다. 일부 매체에서 ‘타조 쿠몰로 내무장관이 지진 피해자들이 상점에서 집어간 물건들에 대해서는 책임도 묻지 않고 정부가 전액 보상키로 했다’는 보도를 내보내자, 타조 장관이 직접 나서 “그런 성명을 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구호물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조코위 대통령은 외국 원조제안을 수용키로 했다. 구조 당국은 구조 구호 작업에 필요한 물품과 장비 목록 작성을 시작했다.
시신 매장 작업도 본격화 했다. 시신들이 부패하기 시작하면서 코를 찌르는 냄새 때문에 매장작업을 멀찌감치서 촬영하는 취재인력도 마스크를 써야 할 정도라고 CNN은 전했다.
당국은 이날까지의 사망자는 전날보다 12명 늘어난 844명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외신들은 더딘 구조 작업을 감안, 사망자 수가 최소 1,200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팔루 공항 남단 페토보 지역에서는 지반이 늪처럼 변하는 액상화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 진흙이 마을을 휩쓸었고, 이곳 사망자만 수 천명에 이를 것으로 우려된다고 콤파스가 보도했다. 주민 유수프 하스민은 "파도 치는 진흙을 헤치고 겨우 탈출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지 언론들은 군 수송기가 들어올 때마다 생지옥과도 같은 섬을 탈출하기 위한 사람들이 항공기 앞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호품을 내려 놓고 빈 자리에 응급환자들을 인근 마카사르 혹은 자카르타로 후송하기 위한 것이지만, 비행기 앞에서 ‘발작’을 하는 시민들도 보인다고 CNN은 전했다.
대량 인명피해를 낳은 쓰나미 조기경보 실패 원인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국립지리정보국(BIG) 하사누딘 Z 아비딘 국장은 “조수관측기가 팔루만 앞에 있었지만, 지진에 따른 정전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비상 배터리도 작동하지 않았다. 조수관측 부이도 설치했지만 도난 당하고 없었다”고 현지 언론에 털어놨다. 전날 현지 언론들은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35분만에 당국이 해제를 결정한 근거로 200㎞나 떨어진 관측기의 잘못된 정보 때문이라고 보도하면서 팔루 근처에 조수관측기가 없었다고 보도했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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