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성폭행 의혹으로 미국을 뒤흔든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우여곡절 끝에 끝났지만 후폭풍이 여전하다. 논리 대결보다는 거친 공방이 오간 정쟁으로 얼룩지면서 사법체계에 대한 미국 시민의 신뢰가 추락했고, 연방수사국(FBI)의 추가 조사 결과에 따라 남은 관문인 상원 인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론도 찬반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어떤 식으로 최종 결론이 나더라도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일단 공은 FBI에 넘어갔다. 28일(현지시간) 상원 법사위 요청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조사를 지시하면서 FBI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5명 여성 가운데 두 번째 폭로자인 데버러 라미레즈와 접촉했다고 미 언론이 전했다. 조사 기한은 1주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FBI는 완전한 재량을 갖고 있다”며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캐버노에 대한 전면적 범죄수사가 아니라 사실관계와 범죄경력을 확인하는 선에 그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이렇게 되면 10월5일쯤 상원 전체회의 표결을 거칠 예정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정파의 이해관계가 압도한 탓에 미 사법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혐의를 부인하는 캐버노, 그를 옭아매려는 민주당, 어떻게든 방어하려는 공화당이 서로 죽기 살기로 맞붙으면서 물밑 조율은 사라지고 대중 앞에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탓이다. 벤저민 바튼 테네시대 법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청문회를 통해 사법적 판단보다는 정치 논리가 앞서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라며 “이건 모두에게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도 최근 강연에서 “사법부의 힘은 정치적 판단을 배제하고 법적 정당성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는 대중의 믿음에서 나온다”며 “이런 믿음이 사라진다면 법원의 판결을 수용할 이유가 없다”고 한탄했다.
미국인들의 실망과 혼란은 청문회를 지켜보며 뚜렷이 양분된 여론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29일 의회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성폭행 의혹을 최초 폭로한 크리스틴 포드 교수가 출석해 캐버노 후보자와 진실공방을 벌인 27일과 이튿날인 28일 유고브가 미국인 2,6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1%는 포드의 증언을, 35%는 캐버노의 발언을 믿는다고 답변했다. 반대로 ‘누가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38%는 캐버노를, 30%는 포드를 지목했다. 어느 쪽도 확실하게 우세를 점하지 못한 셈이다.
정치성향에 따라 대중의 판단은 극명하게 갈렸다. 민주당 지지자의 73%는 포드의 증언을 사실로 받아들였고, 공화당 지지자의 74%는 캐버노의 발언을 믿는다고 응답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포드의 증언을 믿는다는 답변은 14%, 민주당 지지자 중 캐버노의 해명에 손을 들어준 응답은 11%에 불과했다. 심지어 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의 경우도 응답자의 33%가 포드, 32%가 캐버노를 믿는다고 답변해 양측이 팽팽하게 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청문회가 사실상 무승부로 끝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끔찍하고 과격한 민주당의 무리가 어떻게든 권력을 되찾아 가려고 결심해 비열하고 추잡한 일을 벌이고 있다”며 정치공세에 주력했다. 그는 웨스트 버지니아주 지원유세에서 “FBI의 철저한 조사가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면서 “캐버노에 대한 찬성표는 민주당의 무자비하고 터무니없는 전술을 거부하는 투표”라고 상원 인준을 압박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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