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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랑 산다] 반려동물과 이별 사진을 찍다

입력
2018.09.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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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키우고 있는 토끼 랄라와 촬영한 사진이다.

2013년 봄 토끼 랄라를 만났다. 반려동물 키우는 것을 상상해 본 적 없던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가족이었다. 걱정과 달리 랄라를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항상 기쁨만 가득했다. 랄라가 집을 누비며 전기선을 다 뜯고, 침대에 올라가 오줌을 싸도 모든 것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랄라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느라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토끼의 평균 수명은 8~14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반려동물은 반려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그렇기 때문에 반려인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 4월 시작된 랄라의 하악 치근단(뿌리) 농양은 재발을 거듭했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4시간 넘는 수술만 다섯 번을 받았다. 지난 22일 진행된 수술에서는 수의사에게 “농양 때문에 랄라의 오른쪽 턱뼈가 다 부서져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랄라의 눈빛에서 슬픔을 발견했다. 랄라는 내 팔에 머리를 기대고 멍한 눈으로 어딘가를 쳐다봤다. 사람도 견디기 힘든 수술을 5번이나 참아내고 매일 쓰디 쓴 약을 아침, 저녁으로 먹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워낙 씩씩한 토끼인 랄라는 걱정과 달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좋아하는 풀을 입에 가져다 댔다. 턱이 아픈지 씹는 속도는 매우 느렸지만, 풀을 되새김질하며 먹는 랄라로부터 또다시 삶의 의지를 발견했다.

랄라를 보면서 함께 찍은 사진을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반려동물을 기억하고 추억하고자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나이 든 반려동물과 사는 반려인들이 사진 촬영을 많이 한다. 반려인들은 이런 사진을 ‘이별 사진’ 혹은 ‘장수 사진’이라고 부른다.

사진 촬영을 위해 준비한 소품들이다.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경우도 많지만, 비교적 예민한 성격을 가진 토끼의 경우 집에서 사진을 찍는 경우도 많다. 나는 집에서 랄라와 사진 촬영을 하기로 했다. 젊은 시절 랄라와 스튜디오 촬영을 한 적이 있는데, 낯선 환경이라 랄라가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준비한 물건은 삼각대와 소품이다. 삼각대는 따로 찍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필수다. 나는 블루투스 리모컨으로 촬영이 가능한 삼각대를 구입했다. 또 커튼을 배경으로 삼고 풍선 장식물을 활용해 꾸몄다.

집에서 촬영할 때는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사진 촬영 소품으로 랄라가 좋아하는 물건도 활용했다. 침대를 오르내릴 때 쓰던 계단인데 덕분에 수월하게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랄라가 계단에 오르는 순간을 포착해 찍었다. 덕분에 랄라의 귀여운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랄라와 함께 찍는 사진은 어떤 포즈를 취할지 고민했다. 토끼는 발을 바닥에서 떼면 불안해한다. 랄라와 사진을 찍을 때는 내 다리 위에 랄라의 발을 올려두고 가볍게 앉는 자세를 취했다. 여러 번 시도 끝에 랄라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2단 계단은 랄라가 좋아하는 물건이다. 익숙한 물건을 소품으로 활용해 촬영이 편했다.

반려동물과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소품 준비에 신경 쓰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글자를 만들 수 있는 풍선을 활용했는데, 어떤 소품을 쓰느냐에 따라 사진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촬영한 후 기념품 제작도 함께 의뢰했다. 수공예품 홍보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사진을 그림으로 만들어주는 작품도 받아볼 수 있다. 나는 이날 찍은 사진을 달력으로 만들어주는 수공예 전문가 제품을 구매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랄라와 함께 했던 시간을 다시 추억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랄라가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찬찬히 쳐다봤다. 어릴 때부터 장난치기를 좋아하던 랄라의 눈빛은 지금도 여전했다. 어린 시절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털이 조금 푸석해지고 뛰기보다는 누워있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랄라의 건강은 괜찮냐”고 나에게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랄라는 삶의 의지가 강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냥 수술 없이 보내주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고 질책한다. 그럴 때면 나는 “랄라 눈빛에서 ‘아직 더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답한다. 이번에 찍은 사진들이 ‘이별 사진’이 아니라 ‘장수 사진’이 되었으면 한다.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랄라 사진을 모아봤다.

글ㆍ사진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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