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구나 싶어요. 한낱 연극쟁이에 불과했던 저에게 이런 기적이 찾아오다니요. 어안이 벙벙하고 조금 어지럽기도 합니다.”
16부작 드라마 JTBC ‘라이프’를 마치자마자 2부작 특집드라마 JTBC ‘탁구공’이 방영됐다. 독립영화 ‘죄 많은 소녀’와 ‘봄이가도’를 같은 날(13일) 스크린에 걸었고, 추석에는 영화 ‘명당’으로 26일까지 167만 관객을 만났다. 이 모든 일이 9월 한 달간 벌어졌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한 배우 유재명(45)이 쑥스럽게 얘기한 “별일”과 “기적”은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열심히 연기한 결과”이자 “계획 없음이 준 선물”이다.
그중에서도 ‘명당’은 좀더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부산에 계신 어머니를 극장에 모셔 처음 보여 드리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30일 극장에서 아들 유재명은 어머니를 마주 보며 동료 배우들과 무대 인사를 할 예정이다. 그의 표정이 잠시 뭉클해졌다.
천하명당을 둘러싼 암투를 그린 이 영화에서 유재명은 해학으로 극에 숨통을 터 주는 장사꾼 구용식을 연기한다. 장동 김씨 일파에 맞선 천재지관 박재상(조승우)을 살뜰히 챙기는 의리파 친구이면서 “소중한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하는 민초의 대변자다. 인간 욕망의 허망함을 관조하는 그의 대사는 곧 영화의 주제의식으로 이어진다.
“코미디 연기가 정말 어려워요. 작정하고 웃기기도 힘들고, 타이밍을 놓치면 어색해지거든요. 어느 후배가 이런 감상평을 들려줬어요. 머리 작은 꽃미남들 사이에서 벌에 쏘여 부은 듯한 얼굴로 잔망 떠는 구용식이 보기 좋았다고. 제 연기가 조화를 깨뜨리지 않을까 고심했는데 다행히 적정 수위를 잘 맞춘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유재명은 구용식과 박재상의 관계를 “운명을 함께하는 동지”라고 설명했다. 박재상 역을 맡은 조승우와의 우정이 영화에도 스며들었다. 소문난 단짝인 두 배우의 명연기는 ‘명당’의 또 다른 미덕이다. JTBC 드라마 ‘비밀의 숲’(2017)부터 최근 종방한 ‘라이프’까지 연달아 세 작품을 함께했고, 모두 호평받았다. “조승우는 에필로그에 나오는 노인 박재상과 구용식처럼 오래오래 함께 나이 들어갈 친구예요. 우리 인연이 엄청난 행운 같습니다.”
유재명은 자신에게 찬사를 안겨 준 일련의 선택을 “우연”이라며 겸손해했지만, 그 우연들이 결코 마구잡이는 아니다. 정경유착과 검경비리를 파헤친 ‘비밀의 숲’이나 의료계 현실을 폭로한 ‘라이프’ 같은 최근 출연작들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맞닿아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이들의 삶을 그린 옴니버스 영화 ‘봄이가도’도 마찬가지다. 특히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이 영화를 그는 “배우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시절이 수상하던 2년 전 여름 “뭐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해 무기력하던 때” 출연 제안을 받고 “‘아몰랑’ 하는 심정”으로 참여했다. 그는 “당시 대학생이던 세 신인감독에게도, 나에게도 이 영화는 통과의례였던 것 같다”고 했다.
부산에서 연극을 하다 서울에 올라온 지 6년. 상업영화와 드라마부터 배우의 헌신이 필요한 독립영화까지 그를 원하는 곳이 너무나 많다. 연기를 향한 그의 ‘열병’을 관객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에서 힘들게 장사하는 어머니에게 유일한 효도는 국립대 진학이라 생각해 부산대에 들어갔지만, 우연히 접한 연극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스무살 이후 20년은 “극단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며 연극에 미쳐 지내던 시절”이었다. 30대 중반에는 ‘배우, 관객, 그리고 공간’이라는 뜻의 극단 ‘배관공’을 창단해 제작과 연출에 몰두했다. 그렇게 “5~6년간 열정을 모조리 쏟아 부었더니 ‘번아웃’이 왔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것만 같아 “외유성 도피로” 서울에 올라왔다. 그때가 마흔 살이었다.
대학로 인근 옥탑방에 터를 잡았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서울엔 인맥이 없어 연극 무대에 서기도 어려웠다. 영화 드라마 오디션도 족족 떨어졌다. 2년간 분투하다 부산에 내려가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신원호 PD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에 그를 불렀다. 쌍문고 학생주임인 동룡(이동휘) 아빠 역이었다. “서울에서 아주 작은 연극에 참여하고 출연료 7만원을 받았어요. 그게 불과 3년 전 일이에요. 후배가 1만원을 몰래 꺼내 택시비로 써 버려서 엄청 화를 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지금도 행복하지만 그때도 참 재미있었어요.”
유재명은 요즘도 첫 보금자리였던 옥탑방이 있는 동네를 가끔씩 산책한다. “서울에서 방 한 칸 마련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던 그 시절을 돌아보면 간절한 마음이 되살아난다”고 했다. 친한 동료에게 “내 연기에 비린내가 난다면 뒤통수 때려 달라”는 부탁도 했다. “결코 중심은 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다. “인생이 열 바퀴를 도는 레이스라면 저는 다섯 바퀴째 100m를 남겨둔 지점에 있는 것 같아요. 연기 방법론을 새롭게 가다듬고, 동료의식과 책임감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반환점까지 잘 달려가서 다음 레이스도 무사히 완주하고 싶습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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