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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기승전결-1] ‘자정’ 기회 세 번 놓친 법원… 결국 공은 검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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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기승전결-1] ‘자정’ 기회 세 번 놓친 법원… 결국 공은 검찰로

입력
2018.09.23 10:00
수정
2018.09.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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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의 “수사 협조” 발언 직후, 검찰이 사법농단 수사에 착수한 지 3개월이 훌쩍 넘어섰다. 그 동안 검찰 수사의 타깃이 실무진에 집중됐다면, 추석 이후 펼쳐질 수사는 당시 사법농단 관련 사건을 주도하고 지시한 사법부 최고 수뇌부를 대상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수사 대상이 ‘윗선’으로 확대될 변곡점은 추석 이후 소환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조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등장인물도 많고, 관련 사건도 많아 헷갈리는 사법농단 사건을 ▦사건의 발단(起) ▦수사착수(承) ▦수사의 전개(轉) ▦향후 수사전망(結) 등 기승전결의 형식으로 정리해 봤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양승태 전 대법원장 .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기본권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권력과 재판을 두고 ‘거래’를 했을 수 있다는 희대의 의혹.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한 장의 사직서가 계기가 됐다. 지난해 2월9일 이탄희 수원지법 안양지원 판사는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 재판이 아닌 행정업무만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는 전국 판사 3,000여명 중 소위 ‘잘나가는’ 37명만 갈 수 있는 요직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 판사는 ‘출세의 지름길’을 거부하고 일주일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나흘 뒤 다시 안양지원 재판부로 복귀하라는 발령이 났다.

이를 두고 진보성향 학술단체로 알려진 국제인권법학회 활동에 법원행정처가 부당개입 하려다 이 판사가 사표를 낸 것이란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자 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이탄희 판사에 대한 인사조치는 “당사자 의사에 따른 것”이라는 글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공지했다. 이는 법원 내 비판적인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 판사는 곧바로 행정처장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 글을 올렸고, 김형연 부장판사(현 청와대 법무비서관)는 대법원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해달라는 청원문을 게시하기에 이른다.

다음날인 3월9일, 전국법원장 간담회에서 김명수 당시 춘천지법원장(현 대법원장)은 “최근 벌어진 일에 경악하고 있다”며 대법원에 진상조사를 강하게 요구했다. 결국 나흘 뒤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인복 사법연수원 석좌교수(전 대법관)에게 진상조사 전권을 위임하고,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을 직무 배제 조치한다. 임 차장은 며칠 후 법관 연임 불희망 의사를 밝히고 법원을 떠났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연합뉴스

‘꼬리자르기’ 그쳤던 1차 조사

한달간 조사를 마친 뒤, 작년 4월 진상조사위원회가 내놓은 결론은 모호했다. 조사위는 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점을 인정하고, 이탄희 판사가 사직서를 낸 정황도 밝혀냈다. 이 판사는 조사위 조사에서 행정처 발령이 난 후 이규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행정처가 관리하는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고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관리했다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조사위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을 추단하게 하는 어떠한 정황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결론 냈다. 조사위가 행정처의 거부로 관련 파일이 저장된 컴퓨터를 조사하지 못한 사실도 알려지면서, ‘부실조사’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조사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일선 판사들이 잇따라 판사회의를 열어 추가조사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양 대법원장은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열어 조사한다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이 사건을 덮으려 했다. 그리고 작년 9월 임기를 마쳤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5월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5월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블랙리스트’에서 ‘재판 거래’로 확산되는 의혹

뒤이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된 개혁 성향의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법원장 시절 진상 조사를 요구했던 김 대법원장은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 최고참 법관인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현 서울중앙지법원장)를 위원장으로 임명하며 추가조사를 지시한다.

추가조사위원회는 문제의 기획조정실 컴퓨터를 확보해 내부 문서를 조사하고 올해 1월22일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한 문건이 다수 발견됐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검색어를 입력해 추출한 문서 가운데 총 760여개 파일 내용을 당사자들의 협조를 얻지 못해 열어보지 못했고, 문건의 실행여부는 “조사범위 밖”이라 조사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힌다.

그러나 여론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특히 발표한 조사 결과 중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항소심 재판 직후 청와대(우병우 당시 민정수석)가 대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대목에서 법원 안팎 여론은 충격에 휩싸였다. 블랙리스트를 넘어 재판권 독립 침해 의혹까지 불거진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대법관 13명은 이례적으로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며 반박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결국 김명수 대법원장은 확실한 진상 조사 요구를 수용해 2월12일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단장으로 한 특별조사단을 꾸리고 3차 조사를 지시하기에 이른다.

3차 조사 결과에도 의혹만 뭉개뭉개

100일에 가까운 기간 동안 조사를 벌인 특별조사단은 올해 5월25일 192쪽의 조사보고서와 사법행정권 남용이 의심되는 문서 자료 410건 중 98건을 공개했다. 그러나 또 한번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형사상 조치는 취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특별조사단이 문제가 없다고 밝힌 문건의 내용을 보면 ‘사법농단’이란 말이 나올 만큼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전교조 법외노조나 통합진보당, KTX 등 특정 재판 결과를 협상 카드로 삼아 상고법원 도입 문제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협조를 끌어내는 방안을 검토하는 내용이 대거 드러난 것이다.

결국 블랙리스트에서 시작됐던 의혹은 사법부 독립성 침해 의혹에 이어 ‘재판거래’ 의혹으로까지 확산된 것이다. 안철상 특별조사단장은 “재판거래는 실제로 있지 않다고 확신한다”고 밝혔지만, KTX 해고 승무원들이 대법원장 면담을 요청하며 대법정에서 기습 시위를 하고 시민단체들의 고발이 이어졌다.

김 대법원장은 5월 31일 대국민사과를 발표하며 각계 의견을 수렴해 관련자들의 형사조치여부를 결정했다며 ‘장고’에 들어갔다. 다음날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기자회견을 열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여론은 오히려 악화됐다. 전국 법관들은 다시 대표회의를 잇따라 열었고, 소장판사들을 중심으로 진상규명을 위해선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결국 김 대법원장은 6월15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검찰수사 협조”를 선택했다.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될 경우 모든 조사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대법원장 명의로 수사의뢰나 형사고발을 하는 대신 검찰에 실체 규명 작업의 공을 넘긴 것이다. 검찰은 그로부터 사흘 뒤 수사에 본격 착수한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 기사 내용은 ‘[사법농단 기승전결-2] 속속 드러난 박근혜-양승태 ‘실거래’ 정황들’에서 계속됩니다.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9201772390710?di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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