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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 처음 심은 풍기인삼, 이젠 6차 산업 뿌리내려 세계로

입력
2018.10.05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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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시 풍기인삼농협 가공공장에서 수북히 쌓인 홍삼을 분류하고 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인삼농협 가공공장에서 수북히 쌓인 홍삼을 분류하고 있다.
영주시 풍기읍 선비골인삼시장 상인이 판매할 인삼을 진열하고 있다.
영주시 풍기읍 선비골인삼시장 상인이 판매할 인삼을 진열하고 있다.
영주시 주최로 지난해 10월 열린 풍기인삼축제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인삼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영주시 주최로 지난해 10월 열린 풍기인삼축제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인삼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일대는 국내 최초의 인삼 재배지이다. 조선중기 풍기군수로 부임했던 주세붕(1495~1554) 선생은 서원의 효시인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지만 소백산 기슭에서 세계 최초의 상업적 인삼 재배의 틀을 마련, 지역경제에 보탬을 주기도 했다.

이렇듯 500년을 훌쩍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풍기 인삼이 홍삼 가공산업과 경북영주풍기인삼축제(20~28일) 체험축제, 인삼박물관 건립 등 6차 산업 육성을 통해 다시 힘차게 비상하고 있다.

퇴계 이황의 스승이자 숙부인 이우 선생의 12세손인 이홍로(1849~1923)가 지은 인삼송 등문헌에 따르면 1551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 선생이 이 곳에 인삼종자를 채취해 재배토록 했다. 이때 인삼은 요즘의 산삼을 의미한다. 재배삼은 가삼(家蔘)으로 불렀다. 주세붕 선생은 이어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해선 개성 지역에도 인삼재배법을 보급했다.

송준태 영주시인삼박물관장은 “일각에선 고려시대 때도 인삼을 재배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기록도 없고 간간이 산삼 씨앗을 산에 뿌려 키우는 산양삼 개념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풍기 인삼 역사에는 또 하나의 ‘최초’가 있다. 풍기인삼농협이다. 1908년 풍기삼업조합이란 이름으로 출범한 풍기인삼농협은 개성보다 2년 앞선 국내 최초의 인삼농협조합이다. 향토사학자 김인순(70)씨는 “이풍환 초대 조합장은 개성 출신으로, 영양 현감을 지낸 아버지를 따라 다닐 때 거쳐가던 풍기지역이 인삼재배적지임을 알아보고 삼업조합을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이때부터 풍기 지역엔 근대적인 인삼재배법이 본격 보급되기 시작했다. 현재 조합 관할구역은 영주에 국한하지 않고 대구 경북 등 17개 시군으로 확대됐다. 9월 현재 조합원은 약 965명에 이른다.

영주시 풍기읍 금계로 풍기인삼농협에 들어서면 알싸한 인삼 특유의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조합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가공공장엔 매일 40∼50대 근로자들이 갓 쪄낸 홍삼을 손수레로 실어 나르고, 2층 분류작업실에서는 10여명의 직원이 나란히 앉아 수북이 쌓인 홍삼을 크기와 모양에 따라 분류한다.

조순행 상무는 “1996년 홍삼 전매제 폐지 후 우리도 홍삼 등 고부가가치 인삼제품 개발에 나섰다”며 “최신 설비를 통해 고품질의 인삼 가공제품을 생산 중이며 국내 130개 점포, 해외 6개국에 지사를 두고 14개국에 수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황풍정’이란 브랜드로 올린 매출은 260억에 이른다. 2010년 100만불 수출탑에 이어 2015년 대통령상(500만불 수출탑) 등 수출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여파로 중국시장 수요가 줄어들면서 수출신장세가 주춤했지만 수출시장 다변화 등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풍기인삼농협은 70농가와 13만㎡에서 계약재배를 통해 고품질의 원료 수삼을 공급받고 있다. 김인순씨는 “1920년대 풍기인삼 여덟냥(300g)이면 금산인삼 열냥(375g), 개성인삼 열 여섯냥(600g)이 같은 가격으로 거래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풍기인삼의 품질은 우수하다”고 자랑했다.

영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영주지역 인삼제품 총 매출액은 약 2,100억원. 이 중 수삼은 587억 원이고 나머지 대부분이 홍삼가공제품 등 2, 3차 산업이 차지하고 있다. 영주 지역 인삼류 제조업체는 인삼농협 등 32개에 이른다. 지난해 총매출액도 1,200억 원이 넘었다. 생산 가공 유통 등 인삼 관련산업 종사자만 3,0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선비골인삼시장 인삼상인 오창순(59)씨는 “이곳 인삼시장이 풍기와 부석사, 소수서원을 잇는 관광코스여서 관광객이 주로 많이 애용한다”고 말했다. 요즘은 현장판매보다 택배 물량이 60%나 차지할 정도다. 최근 수삼은 한 채(750g) 에 2만5,000원~5만원 선, 6년근 3뿌리로 포장한 것은 한 채에 12만원을 호가한다. 남은숙(52ㆍ울산)씨는 “매년 이맘때 가족들의 건강용과 선물용으로 인삼을 사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풍기인삼이 단단하고 품질이 좋아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인삼재배 세대교체도 이뤄지고 있다. 20년 전부터 2대째 인삼을 재배중인 김동걸(48ㆍ풍기읍)씨는 “수년 전부터 30∼40대 젊은이들도 나서 해가림시설, 점적관수 등 현대적 재배 시설과 신기술을 적용해 단위면적당 생산량도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 재배면적 50여만㎡, 연간 채굴면적 5만여㎡, 연평균 매출 10억원이 김씨의 인삼재배 대차대조표다.

영주시는 풍기인삼 경쟁력 제고를 위해 인삼축제(www.ginsengfestival.com) 개최, 양직묘 생산기반 구축, 인삼박물관 건립에 이어 2015년에는 판매상과 농가 등이 참여하는 풍기인삼 혁신추진단을 발족했다.

연작장해 예방을 위한 객토사업 지원 확대, 지난해 인삼축제 때 도입한 ‘산지봉인 품질인증제’ 등을 통해 풍기인삼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고 있다. 산지봉인 품질인증제는 축제용 인삼을 공개적으로 채굴한 뒤 일련번호를 붙여 봉인했다가 축제 당일 아침에 뜯어 바로 판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10월 초순에 열어오던 축제도 최고의 인삼을 제때 공급하기 위해 하순으로 늦췄을 정도다. 축제는 1984년 풍기인삼경작조합(현 풍기인삼농협) 주관으로 4년간 열다 중단됐다가 1998년 재개됐다. 인삼 재배포에서 직접 인삼을 캐 보고 일정량을 가져갈 수 있는 인삼채취 체험이 특히 인기다. 축제에 따른 경제적 유발효과도 영주시는 900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어린 인삼을 무순처럼 통째로 양념해 먹을 수 있는 인삼새싹채소를 2016년 개발해 시중에 보급하는 등 인삼 요리의 다변화도 꾀하고 있다. 4, 5월 비닐하우스에 파종해 2, 3개월 후 새싹이 나왔을 때 수확해 샐러드나 데쳐 먹는 신개념 나물이다.

이와 함께 전국 주요 인삼재배지역에서 저마다 열려고 하는 인삼세계엑스포를 2021년 풍기에서 열기 위해 연구용역을 의뢰하는 등 인삼산업 부흥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권헌준(60)풍기인삼농협 조합장은 “지난해 건립한 풍기인삼공판장을 더욱 활성화해 풍기인삼이 도매상인들에게 값싸게 팔리는 걸 방지하겠다“며 “농협중앙회와 함께 홍삼제품을 어린이 학생 어른용 등으로 세분화ㆍ고급화해 풍기인삼의 명성을 업그레이드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열린 영주풍기인삼축제 인삼캐기체험 참가 가족들이 직접 캔 인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영주시 제공
지난해 열린 영주풍기인삼축제 인삼캐기체험 참가 가족들이 직접 캔 인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영주시 제공
풍기인삼 역사. 송정근기자
풍기인삼 역사. 송정근기자

영주=이용호 기자 ly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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