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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저출생 주도 세대

입력
2018.09.18 18:20
수정
2018.09.18 19: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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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원내대표가 ‘출산주도성장’ 운운했다는 뉴스를 보고, 나는 깔깔 웃었다. 그 정도의 예비 납세자 캐리어 취급에는 이제 화를 낼 생각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가 화두가 된 지 벌써 십수 년이 지났다. 대책도 이것저것 세워 지금까지 수조 원을 저출생 대책에 투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예산을 투입했는데도, 우리 세대는 임신을 하지 않는다.

모 야당 국회의원은 “요즘 젊은이들은 내가 행복하고 잘사는 것이 중요해서 출산을 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소위 가임기 인구 중 많은 사람은 출산을 하면 내가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금보다 못살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저 발언은 상당히 비난받았고, 그 비난은 마땅하지만, 그의 현실 인식에는 사실 꽤 정확한 데가 있다.

바로, 오늘날 한국에서 임신과 출산은 개인에게 징벌적이라는 것.

임신과 출산은 아무리 의술이 발달해도 모체에 상당히 위험한 과정이다. 설령 의료비를 국가가 완전히 부담한다 해도(그렇지 않다) 위험을 무릅쓸 만한지 가늠해 볼 만한 일이다. 이에 더해, 우리 사회는 출산에 사회적 모멸, 경제적 손실, 개인적 불안을 얹는다.

오늘날 출산 여성의 경력단절이나 사회적 고립, 양질의 일자리 배제는 굳이 더 말할 것도 없는 상수다. 수많은 여성이 취업시장을 반자발적으로 이탈하여 소위 경력단절 여성이 된다. 인사고과에서 최하위를 받는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고, 많은 경우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거나 아예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그에 더해, 혹은 바로 그 때문에 아이를 가진 가구는 가난해진다. 모의 경력단절은 가구 단위에서는 소득 하락이기 때문이다.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어나는데, 이 경제적 지위 하락은 대개 출산을 선택한 부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회복되지 않는다.

사회문화가 영ㆍ유아에 호의적인 것도 아니다. 영ㆍ유아를 데리고 공공장소를 다니는 것은 정말 어렵다. 많은 사람이 아동에게 적대적이다. 잠재적 소음 유발자인 아동을 데리고 지하철이라도 한 번 타 본 적이 있다면, 사방에서 내뿜는 적대감을 느꼈을 것이다. 노키즈존이라는 말이 자본주의에서는 당연하다며 옹호된다.

그나마 이 정도 가시화가 이루어진 것도 소위 정상가족인 경우다. 비혼모ㆍ비혼부에게 출산은 더욱 가혹하다. 모든 아동에게 인적사항을 완전히 갖춘 부모가 있을 것을 전제하다보니, 부모 중 어느 한쪽을 정확히 기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출생신고 단계부터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UN아동권리협약사항인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를 도입하지 않아 개선 권고를 받았다.

이처럼 지금 한국에서는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경제사회적 비용을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 부담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는 무엇을 하는가? 겁박을 한다. 출생률이 계속 하락하면 복지체계가 무너지고 국가의 경제성장이 둔화될 것이라 한다. 옳은 말이다. 저출생 추세 장기화로 인한 사회안전망 약화는 노인세대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서 더 빈곤한 사람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힌다. 이로 인한 빈부 격차 심화는 더 위험한 국가, 더 부정의한 사회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아이를 가지면 당장 나의 사회적 성취가 크게 저하되고 경제사정이 악화되고, 촘촘한 체로 거르는 선별복지 정책 아래에서 육아부터 노후까지 모두 개인의 몫인 나라에 살다 보니, 연금재정까지 걱정해 드릴 처지가 아니다. 그 걱정은 본래부터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몫이었다. 그리고 지금 가임세대들이 출산을 두고, 정확히는 출산을 포기하고, 임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결혼을 하지 않고, 결혼으로 이어질 것 같은 연애조차 그만두며 하고 있는 고민들 또한, 제대로 국가의 몫이어야 한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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