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은행이 금리인상 문제를 놓고 각을 세웠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금리인상을 심각하게 검토할 때가 충분히 됐다”고 발언한 지 하루 만에 윤면식 한은 부총재가 “부동산 가격만을 겨냥해 통화정책을 할 순 없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학계에선 통화 당국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훼손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시장에선 저금리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윤 부총재는 14일 서울 중구 한은 본부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통화정책이 주택가격 안정 및 거시경제 안정, 금융안정 등을 위해 중요하지만 부동산 가격 안정만을 겨냥해 할 순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여러분들이 금리에 대해 말씀하시고 저희도 이를 참고하고 있다”면서도 “기준금리 결정은 금융통화위원회가 한은법에 의해 중립적, 자율적으로 해야 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고 못박았다.
이는 전날 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듯한 이 총리 발언에 대한 한은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같은 날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도 “당장은 아니더라도 대세적인 금리 인상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윤 부총재는 “완화적 통화정책은 주택가격을 포함해 자산 가격 상승 요인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최근 주택가격 상승은 전반적인 수급 불균형, 특정 지역 개발 계획에 따른 기대 심리가 다 같이 작용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동결을 결정한 후 “주택시장 과열 문제는 경기적 요인보다는 구조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어 통화정책만으로 대응하긴 쉽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한은은 청와대와도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지난달 21일 “미국 금리 인상의 여파가 있겠지만 우리에게 맞는 정책을 써야 한다"며 금리 동결을 주문하는 듯한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8월 금통위(31일)를 열흘 앞둔 민감한 상황이어서 한은 안팎에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당정청 등 범여권이 금리인상을 두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일이 빈번해진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했다. 한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침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시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는 금리 변화는 실물경기와 물가상승 등을 면밀히 지켜보고 확신이 섰을 때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명헌 단국대 교수는 “부동산 가격 폭등 등으로 코너에 몰린 정부가 조급해져 벌어진 일인 것 같다”며 “아무리 총리라도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금리인상이나 통화정책 문제에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정부가 한은과 정책 조율은 할 수 있지만 금리 방향성 자체에 대해 행정부가 언급하는 것은 통화당국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금융시장의 안정을 해칠 수 있어 부적절하다”며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한은이 이미 금리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도 거센 상황이다. 통화정책 당국으로서 한은의 일차적 임무는 물가 및 금융안정이다. 저금리 기조가 너무 오래 유지되며 시중자금이 부동산 등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시장으로 계속 흘러 들어 가격 거품을 키운 게 사실이다. 더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이달말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한미간 금리차는 0.5%포인트에서 0.75%포인트까지 벌어진다.
이에 따라 정부와 한은의 대립은 다시 금리 인상 시점 논란으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한편 윤 부총재는 전날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대책에 대해 “수급, 세제, 금융 면에서 종전보다 크게 강화된 대책”이라며 “정부 대책이 주택가격 안정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평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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