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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경비대장 조부 서거 99년만에 독립유공자 추서

입력
2018.09.0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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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청산출신 독립운동가 박동희 선생

옥천군공무원·후손 노력 대통령 표창

손자 박연호 대장 “청산 주민에 감사”

보훈처 관계자가 박동희 선생의 장손인 박정만씨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옥천군 제공
보훈처 관계자가 박동희 선생의 장손인 박정만씨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옥천군 제공

3.1만세 운동을 벌이다 옥고를 치른 애국 지사가 서거 99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4일 충북 옥천군에 따르면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23일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옥천 출신인 박동희(1897~1919)선생을 항일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옥천군 청산면 백운리에서 태어난 박 선생은 3.1운동 당시 김한주·고한주·안병하(모두 독립유공자)선생 등과 함께 청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격렬한 투쟁 끝에 일경에 검거된 선생은 보안법 위반으로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에서 태형 60대를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심한 태형을 당한 그는 출소 직후인 1919년 5월말 경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청산 만세운동의 주도자 14명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에 관한 독립운동 기록이 부족하고 뒤늦은 1924년 사망신고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안타깝게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게 잊혀질 뻔한 선생의 공적은 옥천군 공무원들과 청산면 주민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되살아났다.

2013년 7월 당시 청산면장이던 신한서(2016년 2월 퇴직)씨는 면사무소 서고에서 일제강점기 때 작성된 수형인 명부를 우연히 발견했다. 이 명부에는 3.1운동 당시 청산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 일제에 붙잡힌 주동자들의 성명과 직업, 판결일, 형량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이를 통해 박동희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을 알게 된 신씨는 주변에 선생의 공적을 알렸다. 선생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기 위해 옥천군지와 청산향토지 등을 이잡듯 뒤져 관련 자료도 확보했다.

이어 청산면장으로 부임한 전재수 현 주민복지과장과 주민 대표인 이갑기 청산면민협의회장은 수형인명부 등 수집된 각종 자료를 토대로 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선정을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독립운동가 박동희 선생에게 추서된 대통령 표창. 옥천군 제공
독립운동가 박동희 선생에게 추서된 대통령 표창. 옥천군 제공

박동희 선생은 박연호(51)독도경비대장의 친할아버지다. 박 대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선생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생존자 증언을 확보하고 인후 보증을 받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박 대장은 “뒤늦게나마 할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청산만세운동을 주도한 14분 가운데 근거 자료가 부족해 할아버지처럼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한 나머지 5분도 조속히 명예를 회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독립유공자 선정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청산지역 주민들과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전재수 옥천군 주민복지과장은 “선생의 유족, 청산면 주민들과 함께 5년여 동안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라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의 명예를 되살리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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