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태 前 부산고법원장 소환
“당시 법원행정처장 전화 받고
재판부에 처리 내용 전달” 진술
재판 개입문건 실제 실행 확인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 판사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재판과정 개입 계획을 마련하고, 실제 실행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31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는 전날 윤인태 전 부산고법원장(61ㆍ변호사)을 비공개 소환조사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이들 가운데 고등법원장급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전 법원장은 2016년 가을 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게 “변론을 재개해 1, 2회 공판을 더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전화를 받은 뒤 사건 재판장이었던 김모 부장판사에게 통화 내용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문모(49) 전 부산고법 판사는 부산지역 건설업자 정모(52)씨에게 수 차례 향응을 제공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5,000만원을 건넨 혐의(뇌물공여)로 항소심을 받고 있던 정씨의 재판 관련 정보를 문 전 판사가 누설한 혐의도 검찰은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검찰로부터 이러한 비위 사실을 통보 받고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행정처는 정씨의 재판과정에 개입하면서까지 문 전 판사 비위를 은폐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9월 말 행정처가 작성한 ‘문 판사 관련 리스크 검토’ 문건에는 고 전 처장이 윤 전 법원장과 통화하기 위한 ‘말씀자료’가 포함됐다. 문건은 ‘판사가 재판 내용을 유출한 것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검찰 불만을 줄이려면 재판이 제대로 되고 있다는 인식을 줄 필요가 있다’면서 ‘공판을 1, 2회 더 진행해 항소심이 제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1심 선고 7개월 만인 2016년 9월 종결됐던 항소심 변론은 문건 내용대로 재개됐고 두 차례 추가 변론을 거쳐 이듬해 2월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이 무죄로 판단한 정씨의 뇌물공여 혐의 가운데 3,000만원을 유죄로 인정하면서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나올 경우 문 전 판사 비위 사실을 알고 있는 검찰이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씨와 연루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이라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양승태 대법원이 현 수석과 거래 대가로 활용하려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앞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은 물론 김명수 대법원장 때도 꾸려진 진상조사단은 세 차례 조사에서 이 사안을 포함한 재판개입 의혹에 대해 “실행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어 봐주기 부실조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재판개입 문건이 실제 실행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등의 직권남용 혐의는 더 뚜렷해졌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 외 사법행정을 위해 설치된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 재판에 개입한 것은 사법부 독립을 훼손한 것으로 중대 범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재차 부르고, 이모 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도 소환해 조사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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