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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랑 산다] 마트에서 ‘토끼’ 본 적 있나요?

입력
2018.08.26 14:00
수정
2018.08.2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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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대형 마트의 토끼. 작은 상자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다. 최혜정씨 제공
서울 시내 한 대형 마트의 토끼. 작은 상자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다. 최혜정씨 제공

지난 22일 서울 시내 대형 마트 20곳에 전화를 걸어 토끼 입양 가능 여부를 물었다. 20곳 중 입양이 가능한 곳(토끼를 판매하는 곳)은 5곳이었다. 이 중 2곳은 더운 날씨 때문에 당장은 토끼를 입양할 수 없다고 했다. 높은 기온 때문에 토끼가 유리 전시관 안에서 죽는 일이 생겨, 잠시 판매를 보류중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작고 귀여운데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토끼, 햄스터 등이 일부 대형 마트에서 물건 팔리듯 소비되고 있다. 폭이 50㎝가 겨우 넘는 유리 상자에 갇힌 동물들은 마트 고객들의 충동구매를 유발하는 ‘물건’으로 취급된다.

나 역시 토끼 랄라를 대형 마트에서 데려왔다. 랄라는 다른 토끼들 사이에 끼어 사료도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불쌍하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충동적으로 랄라를 데려왔다. 마트에서 랄라는 작은 상자에 담긴 채 움직이는 계산대 위에 올려졌다. 점원이 상자에 붙어있던 바코드를 스캔하는 순간 랄라는 내 소유가 됐다. 마트에서 다른 물건을 사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입양이 아닌 판매, 가족이 아닌 소유물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과정이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대형 마트에서 동물을 팔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동물들을 마트에서 팔지 못하게 해달라”는 취지의 청원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는 “대형 마트에서 반려동물 물품은 팔 수 있지만, 살아있는 동물을 파는 것은 서양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양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데, 물건 사듯이 반려동물을 사도록 마트들이 소비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형 마트에서 만난 토끼 이야기

서울 용산구 한 대형 마트 3층에는 흰색 털을 가진 토끼 1마리가 혼자 살고 있다. 작은 유리 상자 안에 살고 있는데 직원에 따르면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직원은 토끼를 20분 넘게 보고 있던 나에게 유리 상자 한 쪽 문을 열어줬다. 마치 랄라를 살피듯 손을 내미니 토끼는 깡충 달려와 자신을 쓰다듬어 달라며 머리를 들이밀었다. 손을 갖다 대니 마음이 편한지 토끼는 그 자리에서 다리를 쭉 뻗고 누워버렸다. 이 토끼가 있던 유리 전시장 위에는 ‘3만 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서울 용산구 한 대형 마트에 있던 토끼 가격표다. 1마리당 가격은 3만 원이었다. 이순지 기자
서울 용산구 한 대형 마트에 있던 토끼 가격표다. 1마리당 가격은 3만 원이었다. 이순지 기자
서울 용산구 한 대형마트에서 촬영한 토끼 사진. 이순지 기자
서울 용산구 한 대형마트에서 촬영한 토끼 사진. 이순지 기자

직원은 이 토끼가 함께 살던 수컷 토끼 때문에 얼마 전 임신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아무도 안 데려가면 이 토끼는 어디로 가나요?”라고 묻자 직원은 “본사로 간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다시 “본사로 가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묻자 직원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마트를 떠난 토끼들은 번식 농장 혹은 실험실로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원은 “오늘 데려가세요. 지금 데려가세요. 귀여워요”라고 몇 번이나 입양을 권유했지만, 임신한 토끼를 키울 때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혹은 어떤 책임이 뒤따르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반품 안됩니다”… 토끼 반려인들의 외침

이예진씨가 키우는 토끼다. 입양 직후 모습(왼쪽), 입양 후 곰팡이성 피부염 치료 중인 모습(가운데), 현재 토끼 모습(오른쪽). 이예진 씨 제공
이예진씨가 키우는 토끼다. 입양 직후 모습(왼쪽), 입양 후 곰팡이성 피부염 치료 중인 모습(가운데), 현재 토끼 모습(오른쪽). 이예진 씨 제공

토끼 반려인 이예진(21)씨는 1년 7개월 전 한 대형 마트에서 자신의 반려 토끼 ‘빼꼼’이를 입양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된 빼꼼이는 이씨를 마트에서 우연히 만나 운 좋게도 평생 가족을 찾았다. 이씨는 마트에서 빼꼼이를 데려올 때의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빼꼼이는 이씨 가족이 된 직후 곰팡이성 피부염을 심하게 앓았다고 했다. 당시 수의사는 마트에서 토끼들을 잘 관리하지 못해 병이 생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마트의 동물 관리 상태에 화가 나 항의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그런데 업체 담당자는 “구매한지 10일이 지나 반품이 안 된다”는 답만 되풀이 했다.

이씨는 “’반품’이라는 단어를 듣고 토끼를 물건으로만 보던 담당자에게 화가나 다시 항의하자 ‘환불해주겠다’는 해결책을 내놨다”며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물건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비아냥뿐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는 “마트에서 작은 동물 분양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의 호기심 때문에 부모가 동물을 구매하는 행위에 ‘책임감’은 따라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박주현(27)씨는 경기 안양의 한 대형 마트에서 발견한 토끼 얘기를 전했다. 마트에 진열된 토끼 한 마리가 아파 보여 직원에게 말하니 “병원 대신 ’토끼 업체에서 데려가기로 했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박씨는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곧 죽게 내버려 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며 “톱밥 사이에 있는 건초 부스러기를 먹던 토끼들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토끼를 키우는 유리 상자 안에는 토끼 호흡기에 치명적인 톱밥이 널려 있었다.

경기 고양시 한 대형 마트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토끼 반려인 A씨는 “얼마나 물을 안 주면 이런 안내 문구가 붙어있는지 모르겠다”며 마트의 동물 관리 실태를 지적했다. 토끼 반려인 제공
경기 고양시 한 대형 마트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토끼 반려인 A씨는 “얼마나 물을 안 주면 이런 안내 문구가 붙어있는지 모르겠다”며 마트의 동물 관리 실태를 지적했다. 토끼 반려인 제공

일부 반려인들은 마트 근처에서 ‘작은 동물 판매 금지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토끼 반려인 김연우(31)씨는 얼마 전 자신이 키우는 토끼와 함께 대형 마트 근처에서 ‘작은 동물 판매 금지 운동’에 나섰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토끼를 파는 매장 근처에서 그저 가만히 자신이 키우는 토끼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 작은 동물은 반려동물이 아닌가요?

서울 시내 한 대형 마트에 판매되고 있는 토끼들이다. 최혜정 씨 제공
서울 시내 한 대형 마트에 판매되고 있는 토끼들이다. 최혜정 씨 제공

반려동물 1,000만 시대. 일본 야후 닷컴 등에서는 개, 고양이 등에 ‘반려(伴侶)’라는 단어를 쓰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두고 “놀랍다”는 반응을 종종 보인다. 일본에서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기르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는 쓰지만,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의 ‘반려동물’은 잘 쓰지 않는다. 일본 네티즌들은 “한국인들의 동물 사랑이 느껴지는 단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동물들에게 ‘반려 동물’이라는 표현은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마트에서 자녀가 “귀엽다”고 조르면 부모는 인형을 사듯 토끼를 사주기도 한다. 토끼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키울 때 어떤 책임감이 뒤따르는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실제 포털 사이트 커뮤니티에는 부모들이 마트에서 산 토끼를 키우지 못해 “무료 분양한다”는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그저 “사정이 생겼다”는 말로 토끼를 보내는 이유를 설명한다.

마트의 동물 판매는 합법이다. 다만 동물보호법에 저촉되는 사례가 있다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대형 마트에서 동물을 파는 행위를 두고 “누구나 쉽게 동물을 책임감 없이 입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강한 조명 등으로 대형 마트는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열악한 환경”이라며 “왜 대형 마트들이 굳이 동물 판매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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