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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 없애야” 종교란 겉옷을 입은 대학의 ‘마녀사냥’

입력
2018.07.22 10:00
수정
2018.07.2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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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씨는 징계 이후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홍인택 기자
S씨는 징계 이후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홍인택 기자

"제 이름을 말하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저를 둘러싼 논란을) 알 테니까. 교문을 지나는 것도 두려웠어요."

S(27)씨가 허가받지 않은 '페미니즘' 강연을 주최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당한 지 다섯 달이 지났다. 문제가 된 지난해 12월 강연 이후, 그는 한동대를 '잘못된 사상'으로 장악하려 한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혔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학교 수업 시간, SNS나 학교 홈페이지 등 갖은 장소에서 돌고 돌았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종종 호흡이 가빠지고 어지럼증을 느꼈다. 고도위험군의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복학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기도 힘든 상태가 됐다. 


 그는 어떻게 '암세포'로 지목됐나 

학교는 S씨 징계를 공공연히 언급하며 정당화했다. 학내 설교 시간엔 교수가 그를 ‘암세포’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S씨가 처음부터 ‘문제 학생’으로 지목된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학내 언론을 창간하고 청소노동자의 처우개선 활동 등에 나섰을 때도 학교는 아무 제재도 하지 않았다. 과거에 다른 강연을 열었을 때도 문제가 없었다. 학교는 그가 2017년 한 대학생 토론 프로그램에서 우승하자 S씨 얼굴을 내걸고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S씨가 토론 대회에서 우승하자 학교는 SNS와 입학 홍보물 등에 이를 홍보했다. 페이스북 캡쳐
S씨가 토론 대회에서 우승하자 학교는 SNS와 입학 홍보물 등에 이를 홍보했다. 페이스북 캡쳐

학교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강연 당일. 학생처장 C씨는 주최 측 학생들을 불러 “우리 학교는 ‘반동성애’를 선언한 바 있다”며 페미니즘 강연에 대해서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페미니즘 강연과 ‘반동성애’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설명 없이 ‘기말고사 1주 전부터 종료까지 집회나 행사는 허가하지 않는다’는 학칙까지 끌어왔다. 이에 학생들은 ▦학교가 이미 강연 홍보 포스터에 허가를 내준 점, ▦원래 계획했던 강연이 ‘포항지진’으로 인해 연기된 점, ▦해당 조항을 다른 단체에 적용하지 않고 ‘들꽃’에만 적용한 점 등을 들어 반발했다.

‘반동성애’를 불허 이유로 내세운 학교에 대해 학생들은 ‘헌법 위에 학교가 있냐’며 따졌지만 돌아온 것은 “너희는 (대한민국) 국민 해라 나는 한동대 교수할 테니”라는 대답. S씨는 이 과정에서 교수에게 “이것이 얼마나 큰 인권탄압인지 보셔야 합니다”라며 “부끄러운 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고, 학교는 이를 ‘교직원에 대한 불손한 언행’으로 규정하고 무기정학 징계의 근거로 삼았다.

지난해 11월 포항에서 규모 5.4지진이 발생해 한동대도 큰 피해를 입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포항에서 규모 5.4지진이 발생해 한동대도 큰 피해를 입었다. 연합뉴스

 “한동대를 '영적 지진'이 강타했다” 

강연에 대한 비난은 교수와 학생, 학교 안팎을 가리지 않은 곳에서 흘러나왔다. “이번 강의가 진행되면 앞으로는 학교에서 동성애 관련 어떤 강의도 힘들다”는 내용의 ‘가짜뉴스’가 강연 전날부터 학내 곳곳에 퍼졌다. 학생들은 강연이 “교묘하게 동성애와 관련 없는 척하는 전략”을 취한다며 반대 여론을 형성했다. 강연 당일엔 학생처장, 교목실장 등 교수와 학생 20여명이 “학생들에게 자유섹스 하라는 페미니즘 거부한다”, “창조질서 무너뜨리는 젠더 이데올로기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고 강연 공간에서 시위를 벌였다.

강연 전날부터 강연에 대한 '가짜뉴스'들이 학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강연 전날부터 강연에 대한 '가짜뉴스'들이 학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강사와 참여 학생들에 대한 모욕도 쏟아졌다. 학생처장은 교직원들에게 돌린 전체 메일에서 강연자들을 “수십 가지 성 정체성을 주장한다”,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기를 창녀 혹은 성노동자라 주장한다”고 언급했으며 S씨와 강연자 중 한 명이 ‘다부다처제’로 산다고 말하기도 했다. 학생처장은 “(강연 당일) 땅이 흔들리는 염려보다 더 큰 영적 지진이 있었다”며 “함께 기도해달라”며 강연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했다. 한국일보는 학생처장 C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강연 당일, 강연 내용에 반발한 교수와 학생들이 강연 공간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뉴담 페이스북 캡쳐
강연 당일, 강연 내용에 반발한 교수와 학생들이 강연 공간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뉴담 페이스북 캡쳐

강연에 반발하는 학생들은 몇몇 교수의 실명을 언급하며 ‘페미니즘 강연을 홍보하고 지원했다’며 징계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부 교수가 “이런 식의 접근은 마녀사냥”이라며 문제 삼았지만 학교 측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서명운동을 주도한 학생 한 명의 징계가 한때 논의됐으나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등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이마저도 철회된 것으로 전해진다. S씨 무기정학 사유가 됐던 교수에 대한 ‘불손한 언행’은 학교의 입맛에 맞게 적용된 기준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돌아오려면 관계를 정리해라” 

학교는 S씨에 대한 징계를 철회하기 위해서는 S씨가 ‘폴리아모리(세 명 이상의 사람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 사랑하는 상태)를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동대는 지난 5월 교육부에 보낸 답변서에서 ‘S씨가 연세대 성소수자관련 포럼에서 ‘한동대사건과 폴리아모리’라는 주제로 강연했다’는 점 등을 문제 삼으며 ‘폴리아모리의 정리’를 복학 조건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S씨의 인간관계는 학교 징계 사유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연세대 강연 사실 역시 S씨 SNS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알기 힘든 내용이다.

S씨 징계 과정에 참여하고 교내 채플에서 S씨 관련 발언을 한 바 있는 C교수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학생이 교수에게 공손하지 않았다고 처벌하지 않는다”면서 “폴리아모리 때문에 궁극적으로 (징계를)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대가 단지 페미니즘 강연의 내용과 형식만을 문제시한 게 아니라 학생 개인의 사상과 인간관계를 통제하려는 의도도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저작권 한국일보]경북 포항 한동대학교에서 페미니즘 강연을 열어 무기징학 징계를 받은 학생 S(27)씨와 포항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학교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정혜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경북 포항 한동대학교에서 페미니즘 강연을 열어 무기징학 징계를 받은 학생 S(27)씨와 포항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학교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정혜 기자

익명을 요구한 한동대 관계자는 “우리는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학생을 대한다”며 S씨에 대한 무기정학 징계가 학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한동대 학생처장 C씨는 지난 2월 S씨의 징계 사실을 S씨 부모에게 알리며 “밖에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아시냐, 다자연애하고 성소수자 포럼에서 발제도 한다”고 덧붙였다. S씨가 그간 부모에게 알릴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내용들이다. 이런 대학의 모습은 도대체 어떤 부모를 닮은 것인가.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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