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5조원의 국민 노후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CIOㆍ기금이사) 선임 과정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CIO 공모 공고가 나간 2월 중순 전에 장 실장 권유로 공모에 지원해 내정 단계까지 갔다가 탈락한 사람이 언론에 공개한 내용이어서 파장이 만만치 않다. 청와대가 인사 개입설을 덮기에 급급해 석연찮은 해명을 내놨다가 몇 시간 만에 번복하는 해프닝까지 벌여 더욱 볼썽사납다.
당사자인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에 따르면 일면식도 없던 장 실장이 자신에게 전화해 "내부에서 적격자를 찾기 어려우니 지원해 보라"고 권유한 때는 1월 말이다. 16명이 응모한 공모에서 곽 전 대표는 4월 말 면접을 거쳐 1등으로 3인 후보에 들었고 김성주 공단이사장으로부터 내정됐다는 얘기까지 들었으나 6월 말 공단은 적격자가 없다고 최종 공고했다.
지난해 7월 전임자 사퇴 이후 1년 가까이 핵심 보직인 CIO를 공석으로 놔 둬 구설수에 오른 공단이 청와대와 협의해 유력 후보자를 찾고도 막판에 결정을 취소했으니 뒷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곽씨가 장 실장의 권유 과정, 김 이사장과의 대화 및 자신의 신상까지 소상히 밝힌 것은 문재인 정부 인사의 이중성에 대한 항변으로 읽힌다. 더구나 공모 공고 전에 나돌던 곽씨 내정설 배후에 장 실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함께 응모했던 사람들이 느꼈을 배신감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청와대의 부적절한 대응과 안일한 인식이다. 곽씨의 폭로가 나오자 청와대는 "장 실장의 권유는 공단이 곽씨를 CIO로 추천한 이후"라고 했다가 "공모 전에 통화한 건 맞지만 덕담 수준"이라고 둘러댔다. "장 실장 개입이 있었는데도 검증에서 탈락했으니 내부인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의미"라는 옹색한 변명도 뒤따랐다. "우리는 늘 정의"라는 독선과 아집이 아니면 하기 힘든 말이다. 재공모 과정엔 또 어떤 장난이 끼어들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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