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을 평정한 후 왕조를 세우거나 왕조의 세력권을 넓힌 진시황·한무제·당태종은 호대희공(好大喜功)형 군주로 불린다. 큰 일을 좋아하고 공명을 기뻐하여 부강의 기세를 타고 주변에 무력으로 위엄을 과시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성업 후 암전과 퇴보 등 실격의 역사로 이어질 수 있어, 호대희공(이하 호공)은 군주가 경계해야 할 덕목의 하나로 거론되어 왔다. 5독(毒) 천자로 악명 높은 송 태종이 형 태조의 업적을 가리고 자기 공적을 돋보이려 주변국 공략에 나섰다가 실패한 사례 등 부정적 인용이 많다. 하지만 우리에겐 고려 왕건의 후삼국 통일 후 1,100년 만에 남북 분단 체제를 종식시킬 강한 리더십의 호공형 리더가 고대된다.
동아시아에선 한대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일부 시기를 빼고 중국 주도 평화인 팍스 시니카(pax sinica) 체제가 유지된다. 명 영락제나 청 강희제·건륭제에 의한 호공형 통치가 대표적이다. 근자에 중국 시진핑 주석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 체제가 재조명된다. 2차 대전기 독·이·일 추축국에선 히틀러, 무솔리니, 고노에 후미마로·도조 히데키 같은 호공형 지도자가 등장한다. 전후에는 세계 질서에서 미국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팍스 아메리카나가 화두가 되고 트루먼·아이젠하워·케네디·존슨 등 호공형 대통령이 출현한다.
우리 역사에선 이런 지도자가 많지 않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나 신라 무열왕 등 삼국 시대 인물을 빼면 고려 왕건 정도로 한정된다. 영토가 한반도내로 획정되고 사대주의가 뿌리를 내린 조선에선 찾아보기 쉽지 않다. 20세기의 국권피탈, 해방과 남북 분단, 한국전쟁과 분단체제하의 대립 등 굴곡진 역사가 장기간 이어진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다만 한국전쟁에서 미군주도 국제연합국군을 이끌어 북진하는 등 한때 전세를 유리하게 이끈 맥아더가 이 유형의 리더로 분류될 수 있을지 모른다.
조선시대엔 호공이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왕조실록에 관련기사가 18회 나오는데 세종, 성종, 중종 등 근세 이전에 집중되며 북방의 영토 확장과 경계 강화, 왜적 대책 관련 부분이다. 8할 이상은 사안의 절박성을 강조하고 공명심 추구가 아님을 주장하기 위해 인용되고, 나머지가 영웅의 사적을 중립적으로 인용한 기사다. 오늘날 이 말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의 정치 지형적 특성과 국제 평화 기조의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선 호대희공을 ‘큰 일을 하여 공적을 세우려 한다’ ‘전투에서 수훈을 세우려 안달한다’는 것처럼 풀어서 쓴다. 흥미롭게도 정유전쟁때 포로로 잡혀 오즈와 후시미에서 2년8개월여 머물다 돌아온 강항이 이들의 특성을 호공과 연관짓고 있다. 저서 간양록(1656년)에서 “일본인들은 큰 일을 벌여 공명을 얻는 것을 즐겨 외국 상선과의 교역을 좋게 여긴다. 그래서 포르투갈·인도·필리핀·중국 복건·류큐 등 먼 곳 사람들의 내왕이 이어진다”고 적고 있다. 활성화된 대외 교역을 호전적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호공형 리더의 또다른 공명 추구 사업으로 본 것이다. 호공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조선의 문신이고 납득하기 힘든 점이 많은 일본인이라는 인식을 지녔던 강항이기 때문에 이 표현을 긍정적인 의미로 썼는지는 의문이다.
17세기 이후 조선 조정이 쇄국과 유학 의존도를 한층 강화한 것과 달리, 도쿠가와 막부는 쇄국 기조하에서도 일정 수준의 대외 교역을 지속하고 서구 학문과 기술 습득 등 실용적 분야에서 개방적 자세로 임하는 등 호공의 불씨를 끄지 않는다. 근대 진입기인 막부 말기, 서구 국가에 의한 개국 압력이 거세지자 이를 기화로 막부 타도와 왕정복고 등 체제 변혁을 시도하는 웅번 호공 세력이 힘을 규합한다. 사카모토 료마와 사이고·오쿠보·기도 및 이들의 동지, 후배들이 주도한 메이지유신이 성공하여, 일본은 동양권에서 가장 먼저 군사와 경제 측면의 근대화를 이뤄 자국 역사의 품격을 높인다.
호공형 사고에 부정적인 조선과 달리 일본은 호공형 리더에 의해 새 시대가 열리고 역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어온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사고의 범주가 군사분야로 한정되는 조선과 달리 일본에선 교역 확대와 체제 혁신 등으로까지 확대된다. 물론 아시아 각국을 침략한 15년 전쟁의 패배 등 호공형 접근이 끼친 크나큰 폐해도 있다.
눈을 돌려 오늘의 우리를 보자. 40년 전 군출신 호공형 리더가 경제 분야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다. 이어 국방을 위시한 과학기술·사회문화 영역에서의 호공형 접근으로 일본에 한 두발 늦어 이 땅에 새 시대를 연다. 이젠 국토와 민족이 두 동강난 채 70년 이상 대립해온 불행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정치 분야의 호공형 리더 등장이 고대된다. 단, 그가 한반도 민중의 눈높이에서 군사력 아닌 외교, 공영에 기반한 협치로 주변국 리더들을 아울러 통일 대한(大韓)의 미래를 열 호협희치(好協喜治)형 지도자이면 좋겠다. 근자의 남북 화해 무드가 그런 예감을 높여준다.
배준호 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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