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 없는 병역법 양심자유 침해”
양심적 거부 처벌, 동수 합헌도 진일보
정부ㆍ국회, 합리적 대체복무안 마련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이 헌법에는 어긋나지 않지만 대체복무제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제도는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2019년까지 병역법을 개정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28일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사람을 처벌하는 병역법 88조1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법원이 낸 헌법소원ㆍ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 대 4(위헌) 대 1(각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헌재는 다만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같은 법 5조1항은 재판관 6(헌법불합치) 대 3(각하)의 의견으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재 결정은 위헌 결정시 급격한 변화에 따른 혼란을 우려해 법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개선을 촉구한 전향적 조치로 평가된다.
이번 위헌 심판 사건은 종교나 양심에 따른 입영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볼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헌재는 “처벌 조항은 병역자원 확보와 병역 부담의 형평을 기하려는 것으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형벌로 병역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라고 본 것이다. 헌재가 2004년과 2011년 합헌 결정을 내릴 때와 같은 논리다. 하지만 지난 두 번의 결정이 재판관 7대2의 의견이었던데 반해 이번에 합헌과 위헌이 4대4로 동수였다는 점은 긍정적 변화다.
특히 헌재가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조항이 잘못이라고 판단한 것은 전향적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한다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설명은 사실상 현행 법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판단이나 다름없다. 헌재가 2004년 합헌 선언을 하면서 대체복무 등 입법을 통한 해결 필요성을 언급한 점을 떠올리면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이 아쉽다.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중단과 대체복무제 도입 주장은 이전부터 거셌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인 권고를 해왔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여러 차례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도입을 발표했던 것을 이명박 정부가 철회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다시 공약했다. 변호사의 80%, 일반 국민의 70%가 대체복무제에 찬성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헌재가 밝힌 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 수가 병역자원 손실을 논할 정도도 아니고 공정한 절차와 현역과의 형평성 확보로 부작용도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다.
양심에 따라 집총을 거부한다는 이유만으로 해마다 수백 명의 젊은이가 감옥에 가야 하는 현실은 가혹하다. 떳떳하게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이들에게 공동체를 위해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이미 국회에는 대체복무기간을 현역의 1.5~2배로 하고 현역에 준하는 근무 강도의 분야에서 24시간 합숙 형태로 복무시키는 내용의 법안이 제출돼있고, 국방부도 오래 전부터 관련 법안을 준비해왔다. 정부와 국회는 내년 말까지 시간을 끌 필요 없이 조속히 대체복무제 입법화에 힘을 모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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