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이성ㆍ비도덕ㆍ무근거ㆍ무의미ㆍ난센스야말로 아방가르드이고 과격하고 재미있고 멋지다는 것은 도련님과 아가씨의 소꿉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략)그런 인간들의 따분한 희언(戱言)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과연 사사키 아타루다. ‘발정난 문체’는 손끝에서가 아니라 이미 입에서부터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 책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저자가 그 책 출간 직후 행한 강연, 대담 같은 자투리 글들을 모았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그리고 그 이전 ‘야전과 영원’이 대단한 책이었다곤 하지만, 좀 떴다고 뭘 굳이 이런 것까지 책으로 묶나 싶은데 읽어나가다 보면 역시나 낄낄거리게 된다.
재미없을 리 있겠나. 전위적이고 자유분방하다는 프랑스 철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요 단지 읽지 않을 수 없어 읽었을 뿐이라고만 말하는 사내가, 그래서 ‘일본의 니체’라 불린다는 사내가, 전위적이고 자유분방한 포스트모던이니 뭐니 하는 게 실은 다 가짜라 폭로하는데.
오늘날 좀 멋지다는 이들은 “이성이 아니라 반이성, 인과성이 아니라 비인과성, 근거가 아니라 무근거, 이것이 근본적이고 과격하고 멋져 보이고 재미있다고들” 한다. 뭔가 저지르고 일탈하고, 그럼으로 진정한 자아를 찾는,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들에 푹 빠져 있다. 알다시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건 다 돈이다. 파격적 예술가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누린다는 건, 대개 돈 걱정 없는 딜레당트 들이다. 그런 류의 쿨함이란 “부모 슬하를 떠나지 못하는 인간이 척박한 모래사장에서 흙장난을 치는데 불과”하다고 해뒀다.
이 나날의 돌림노래
사사키 아타루 지음ㆍ김경원 옮김
여문책 발행ㆍ255쪽ㆍ1만7,000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사키는 슬쩍 부추긴다. 기존 이성, 근거, 논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무이성, 무근거, 무논리를 찬양하는 건 어리광이다. “근거, 이성, 도덕, 규율을 새롭게 만들어 내야” 한다. 정말 근본적인 건 이런 모험인데, 이게 하기 싫으니 적당히 반항하는 척하다 은근슬쩍 그 반항을 훈장으로 가슴에 달고 폼만 잰다.
그는 다른 제안을 한다. “패배한 자의 기쁨”이다. 멋지게 반항하는데 그치지 않는, 또 다른 근거와 논리를 세우려는 하루하루의 노력들, 그리고 그 패배의 흔적들. 승리하지 못한다 해도, 별 볼 일 없이 이 세상에서 잊혀진다 해도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목소리를, 기쁘게 남겨놓는 작업들. 어쩌면 사사키가 철학 책에서 읽어낸 건 마치 돌림노래처럼 이 입에서 저 입으로 둥둥 떠다니는 그 기쁜 목소리들이었을 것이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출간 직후 얘기들이다 보니 책 출간 뒷얘기나 번역 문제 등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힙합 얘기도 그렇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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