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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보수가 사는 법, 중도 공략ㆍ대중주의로 전환

입력
2018.06.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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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8일 캐나다 퀘벡주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8일 캐나다 퀘벡주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세계화와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를 주도하던 보수 정당들은 21세기 들어 다양한 도전에 직면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시장의 신화는 위기에 빠졌고 저소득층은 부의 적극적 재분배를 요구했다. 각지의 분쟁으로 인해 난민이 서구 사회로 밀려들었고 극단주의가 유행하며 테러리스트의 공격도 빈발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강력한 권위주의 정권 국가도 영향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위기에 빠진 보수 진영의 선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일부 주류 정당은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소수자를 포용하고 복지 정책을 확대하는 ‘공감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를 표방해 중도와 진보로 외연을 확장했다. 반대로 민족주의ㆍ대중주의 노선을 내건 ‘대안 우파’ 성향의 보수들은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어 권력을 창출했다. 이들의 세력 확장은 미국의 우파 대중주의 정치인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자유주의 세계 질서마저 뒤흔들고 있다.

‘메르크롱’의 중도정치

세계 주요 민주주의 국가 중에 보수 정권이 가장 성공적으로 오랫동안 집권하고 있는 국가는 독일이다. 2005년 집권한 기독민주연합(CDU)-기독사회연합(CSU) 연정의 대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13년째 총리에 재임하고 있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맞이한 프랑스 대통령은 4명이고 이탈리아 총리는 7명이다.

서구 언론은 메르켈 총리가 장기 집권하는 이유를 보수 정권의 안정성과 진보 정책도 포용하는 실용주의에서 찾는다. 물론 메르켈 경제정책의 기본 원칙은 시장자유주의에 입각한 엄격한 긴축 정책과 정부 지출 축소였다. 복지 정책도 보수의 가치인 가족을 지원하는 복지를 표방했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의 사회진출을 지지하고, 동성혼을 허용하는 법안의 통과를 사실상 방조하고, 시리아 난민을 적극 수용하는 등 진보 진영의 가치를 적극 반영한 ‘무티(Muttiㆍ어머니)’ 리더십도 나타난다.

이 때문에 독일 청년층도 메르켈 총리를 지지한다. 이른바 ‘메르켈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지난해 총선을 앞둔 6월 여론조사에서 57%가 메르켈 총리를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독일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SPD)은 최근 발행한 2017년 총선 자체분석 보고서에서 특히 30~44세 중산층이 메르켈 정권이 보여주는 현대성과 사회 비전에 경도돼 있다고 지적했다.

메르켈 총리의 성공은 다른 나라 보수 정권에도 모범이 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좌파 정당 출신이지만 당에서 이탈해 우파 경제개혁 의제를 내걸고 집권한 경우다. 전임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정부에서 경제장관까지 지낸 마크롱은 좌우의 중도 성향 정치 세력을 아우르는 새 세력을 결성했다. 집권 후에는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시장주의 노동 개혁을 밀어붙이는 한편, 진보진영에서 여성ㆍ소수자 인권 포용과 환경 보호 의제 등을 적극 채용했다.

이외에 보수 자유당을 이끌면서도 동성혼 합법화를 적극 밀어붙인 맬컴 턴불 호주 총리, 경기 부양을 위한 과감한 재정정책에 나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등이 보수 정파 출신이면서도 유연한 정책 노선을 취해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한 정치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이들도 완전하지는 않아 최근 정치 스캔들과 대외 정책의 실패로 지지율에 부침을 겪은 바 있다.

민족주의 열풍 탄 신흥 우파들

메르켈과 마크롱이 이처럼 ‘안정적 중도’를 표방하는 데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자유주의 질서에 반발하는 좌우 비주류의 공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민족주의 우파는 실제로 중동부 유럽에서 집권에 성공했다. 유럽연합(EU)의 서구 중심성에 반대하는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 폴란드의 법과정의당(PiS) 정권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메르켈의 난민 포용 정책을 비판하며 발칸 루트 폐쇄를 주도한 제바스티안 쿠르츠 국민당 대표가 총리로 나서며 대권을 쥐었다.

이들은 늘어나는 이민자와 테러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해 국경을 통제하고 EU의 지나친 통합에 반대하며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유럽 기독교 우파의 영향을 받아 소수자 의제에도 보수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높은 경제성장률과 이를 바탕으로 한 과감한 복지 투자로 국민의 마음을 사고 있기도 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폴란드 우파 역사상 가장 너그러운 복지 정책이 오히려 좌파의 입지를 약화시켰다”고 전했다.

민족주의 바람에 기존 서구의 주류 정치권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6년 EU탈퇴(브렉시트) 국민 투표를 계기로 정책 노선이 크게 흔들린 영국 보수당의 테리사 메이 총리는 외형상 엄격한 이민 정책과 중산층 복지 확대를 표방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마테오 살비니가 이끄는 반난민 우파 대중주의 정당 동맹(La Lega)이 기본소득 지급을 주장하는 좌파 대중주의 정당 오성운동(M5S)과 손잡고 연정을 구성했다. 좌우가 아닌 주류 대 비주류의 대결구도가 정치의 향방을 결정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도 자국 내 반이민 세력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

유럽 외에 우파 민족주의의 성공사례로는 터키와 인도가 꼽힌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종교적 대중주의를 지지 기반 삼아, 세속주의 엘리트와 자신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집권을 달성했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의개발당(AKP)은 이슬람 민주국가를 표방한다. 2016년 쿠데타 진압을 계기로 반대파를 강경 탄압한다는 서구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내부에선 경제성장 성과와 강경한 대외정책 덕에 국민의 지지가 높다. 인도의 모디 총리 역시 과격 힌두민족주의 세력과 연대해 대중의 지지를 모으면서도, 부패를 일소하는 강도 높은 화폐ㆍ세제개혁을 실시해 인도 경제의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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