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전ㆍ현직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 정치후원을 한 혐의로 황창규(65) KT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황 회장 소환(4월 17일) 이후 두 달 만으로 후원금을 받은 일부 의원실은 KT측에 “고맙다”라고 전하는 등, 불법 정치자금임을 인지했던 만큼 수사는 여야 전ㆍ현직 의원을 상대로 확대될 전망이다. 정치자금법상 법인, 단체는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낼 수 없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8일, 정치자금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로 황 회장 등 7명을 입건하고, 이 가운데 황 회장과 구모(54) 사장, 맹모(59) 전 사장, 최모(58) 전 전무 등 CR(홍보ㆍ대관담당) 부문 전현직 임원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4년 5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법인자금으로 상품권을 사들인 뒤에 되팔아 현금화하는 ‘상품권깡’ 수법으로 비자금 11억5,000여만원을 조성해 이 가운데 4억 4,190만원을 불법 정치후원금으로 사용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의원 46명에게 1억6,900만원을, 20대 국회에서는 66명(낙선자 5명 포함)에게 2억7,290만원을 불법 후원했으며 중복된 의원을 제외하면 총 99명이다. 후원은 여야, 전ㆍ현직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이뤄졌으며, 특히 20대 총선이 있었던 2016년에 불법 후원에 동원된 임직원은 27명으로, 현역 의원이 아니라도 당선이 유력시되면 후보자에게도 후원했다. 의원 1인당 후원금은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1,400만원에 달했다.
주요 대상은 KT 관련 현안을 다뤘던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와 정무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실이었고 군 통신 장비와 관련해 국방위원회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전방위적인 후원에 따른 일부 대가성도 의심하고 있다. 2014~2015년, KT 신규가입자 모집에 장애가 됐던 ‘합산규제법’은 3년 일몰로 통과돼 시간을 벌 수 있었고, 2015~2016년 KT에게 위협이 됐던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합병도 무산됐다. 황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 명단에서 제외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황 회장은 지시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경찰은 불법 정치후원 계획부터 실행까지 회장 보고 하에 이뤄졌다는 일부 임원들의 진술과 관련 보고 문건도 확보했다.
불법 후원금을 인지하고도 받은 의원실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하다. KT가 임직원 개인 명의로 후원한 뒤 의원실에 이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후원 사실을 통보 받은 의원실 약 10곳이 구두 혹은 문자메시지로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1차적으로 KT 후원금 사실을 인지한 의원실 10여 곳을 상대로 조사할 방침”이라며 “이후 다른 의원실도 인지한 정황이 포착되면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경찰은 후원금 대신, 지역구 내 시설ㆍ단체 기부나 협찬을 요구하고 보좌관, 지인의 취업을 청탁한 일부 의원에 대해서도 내사를 진행 중이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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