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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중 휴식ㆍ출장 중 이동, 사용자 지휘 아래 있다면 근로시간

입력
2018.06.11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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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ㆍ티타임, 장소 등 따라 논란 소지

교육ㆍ체육행사, 참여 강제성 있으면 ‘근로’

회식은 참여 강제성 판단 어려워 논란

사전공지ㆍ비용 출처 등 증거 필요

거래처와 식사, 보고ㆍ지시 등 조건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주 최대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드는 새 근로기준법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업무와 비업무의 경계를 두고 관심과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야근과 휴일 출근 등이 일상화된 지금까지는 막간의 흡연 시간이나 출장 이동 시간, 부서 회식 시간 등이 근로시간에 포함되는 지 여부에 대해 노사 어느 쪽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 개정에 따라 최대 근로시간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근로와 비근로의 경계에 있는 ‘애매한 시간’이 법 준수와 위반을 가를 핵심으로 떠올랐고, 법 시행을 앞두고 정확한 정부의 지침을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뒤늦게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배포한다지만, 결국은 지금까지 법원의 판례와 정부의 행정 해석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에 한국일보가 10일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법원 판례와 행정 해석, 그리고 정부 관계자와 노동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조사해 본 결과 근로시간 경계를 판가름하는 대원칙은 ‘사용자의 지휘ㆍ감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업무를 한 시간이 아니더라도 사용자의 지휘나 감독 하에 있는 시간이라면 근무시간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만 개별 상황에서 지휘ㆍ감독 하에 있었는지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변수가 개입될 여지가 많아 일률적 잣대를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근무 중 휴식, 출장간 이동… 대부분 근로시간에 해당

법원 판례를 보면, 근무 중 휴게시간이나 업무 전후에 발생하는 이동시간은 대체로 근로시간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아파트에서 24시간 맞교대로 일하던 경비원 A씨가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인 휴게시간을 제외한 시간만큼만 임금을 받게 되자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경비원들의 경우 야간 휴게시간에도 급한 일이 생길 경우 즉각 반응해야 하는 만큼 별도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휴식ㆍ수면이 아니면 온전한 휴게시간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판결의 취지였다.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ㆍ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으로 본다는 근로기준법 상의 해석을 A씨의 사례에 적용한 것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시간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처분이 가능하도록 한 시간”이라며 “실제 업무시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해외 출장 등을 위한 이동 시간 역시 근로시간으로 보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 7월 수원지법은 모 기업 팀장으로 일하던 B씨가 제기한 근로수당 지급 청구 소송에서 휴일 출입국절차, 비행 대기 및 비행, 현지 이동 및 업무 등에 소요된 시간 전체를 근로시간으로 판단해 연장근로수당까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추가 수당 지급 여부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한지에 따라 판단이 나뉠 수 있지만 고용노동부 또한 출장 간 이동 시간 자체를 근로시간으로 보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출장 현지에서의 시간은 업무 시간과 비업무 시간으로 구분되는데 증빙 여부에 따라 다툼이 있을 수 있다.

업무 중에 가지는 이른바 ‘커피ㆍ담배 브레이크’의 경우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언제든지 사용자의 지시를 받을 수 있다면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장소 등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내 휴게실 같은 지정된 장소에서의 커피ㆍ흡연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볼 수 있지만 인근 카페나 제3의 흡연 장소는 해당되기 어렵다”며 “휴대폰으로 언제든 지시를 받을 수 있으므로 대기상태라는 주장도 있지만 연락이 안 될 경우에도 특정 장소에 사람을 보내 업무를 지시할 수 있지 등 지휘ㆍ감독 하에 있는지가 조건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회식ㆍ사내교육은 참여 강제성 여부가 중요

회식이나 사내 교육 및 행사 등 업무에 이은 부가적 활동 역시 ‘뜨거운 감자’다. 사내 교육이나 체육대회 등의 행사에 대해서 상당수 전문가들은 일단 참여의 강제성이 있으면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판단이 어려운 부분은 회식이다. 중앙노동법률사무소의 양지웅 변호사는 “회식의 경우 장소의 사전 공지, 참석 여부 공지 의무, 목적, 법인카드 등 비용의 출처 등에 따라 업무 시간으로 인정 될 수도 있다”며 “다만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원 법무법인 김도형 변호사는 “회식 중 부상에 대해 산재를 인정하기도 하니까 근로시간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는데 산재와 근로시간은 적용 기준이 다르다”며 “회식은 업무를 마친 후 하는 경우가 많아 일단 근로시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의 자발성 여부를 가리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엄격히 말해 회식도 회사 일의 연장이라고 보면 근로시간이 맞지만 상사가 ‘집에 갈 사람은 가라’ 식으로 말을 해도 모두가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 상황별 구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업사원의 거래처 식사는 업무 관련성ㆍ보고 체계가 핵심

일부 영업직 종사자의 거래처 식사 자리 등이 근로 시간으로 인정받으려면 본인의 통상적 업무에 해당하는지, 식사 자리 등에 대한 보고와 지시 등 회사의 체계적 관리가 진행되는 지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누구를 언제 어디서 얼마나 오래 만나는 지 등에 대해 회사가 마련한 기준과 절차가 필요하다”며 “일일이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노사간에 별도 합의를 하거나 재량근로 등의 특례를 적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쟁점별 혼선과 논란에 대해 법무법인 세종의 김동욱 변호사는 “어느 정도 혼란은 있겠지만 노동의 영역에 대해서 이제라도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논의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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