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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끊길라… 횡령 쉬쉬하는 대학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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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끊길라… 횡령 쉬쉬하는 대학 연구실

입력
2018.05.29 20: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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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고지나 경찰 수사의뢰 없이

개인 일탈로 대부분 자체 수습

공금 명목 연구비 통장 일괄관리

랩장 등이 착복해도 알기 어려워

“발주기관 등서 집행과정 감시 등

연구실 재정 관리 시스템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사립대 공과대학 박사과정 A씨가 소속된 연구실에서는 지난해 1,500만원 상당의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연구원들의 통장을 관리하던 연구조교 B씨가 연구원들 인건비로 할당돼 있던 돈 일부를 수년간 사적으로 유용한 것. 그러나 B씨의 횡령 사건은 어디에도 보고되지 않았고, B씨를 연구실에서 퇴출시키는 것으로 자체 마무리됐다. A씨는 “괜히 학교에 알리거나 경찰에 수사의뢰를 했다가 연구 지원이 끊기는 것보다는 ‘없던 일’로 하는 게 낫다는 연구실 내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며 “학교 내 다른 연구실에서도 연구원에 의한 횡령 사건이 발생했지만 비슷하게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국가기관이나 기업체의 연구 지원을 받는 대학 내 연구실에서 연구비 횡령이 횡행하지만, 대부분 자체 수습하는 선에서 넘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연구실 지도교수의 주도적 횡령이 아니라 일부 연구원에 의해 횡령이 발생하는 경우 개인 일탈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연구원들의 금전적 피해는 보전되지 않는다.

연구실 내 이중적인 인건비 지급 구조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학원 연구실은 연구과제별로 정부 기관이나 기업체에서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연구비는 대학 내 산학협력단에서 관리하며, 이중 인건비 부분은 연구원들 각각의 ‘인건비 통장’으로 입금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연구실 운영이나 기자재 구입 등 ‘공금’에 활용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연구실의 ‘랩(lab)장’이라 불리는 연구조교나, ‘위촉연구원’이라 불리는 재정 담당 비서가 통장들을 한꺼번에 관리하고 이를 연구원들에게 재분배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랩장이나 위촉연구원이 돈을 착복한다 해도 연구원들은 정확한 내막을 알 수 없어서다. 이를 악용해 지도교수와 랩장, 위촉연구원이 결탁해 돈을 빼돌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게 대학원생들 얘기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대학원 포함, 총 10년간 대학원 연구실에 있었다는 최모(35)씨는 “연구실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통장 일괄관리는 관행으로 받아들여진다”며 “특정 프로젝트에서 내 몫이 얼마인지, 심지어 장학금도 어떻게 관리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횡령이 있어도 연구원들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라고 털어놨다. 과학기술대학 박사과정에 있다는 한 연구원은 “나중에 파기할 테니 내 명의의 목도장을 파서 통장을 달라는 연구실도 있다”고 말했다.

횡령을 알아채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도 있지만, 발각돼도 이를 공론화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연구실 통합과제가 개인 연구, 나아가 졸업논문과도 연계되기 때문에 비리는 눈감고 연구를 마무리하는 것이 차라리 나은 선택이라는 게 연구원들 생각이다. 학교 당국 역시 연구실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해서 지나친 개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횡령 비리가 끊이지 않자 감사원은 2015년 대학에서 수행하는 연구비 집행 과정을 전면 감사한 뒤 적발 사례에 대해 징계를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박사과정에 있는 한 연구원은 “연구원끼리 서로 쉬쉬해서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재의 허술한 대학원 연구실 재정을 통합 관리 감독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슬아 대학원생노조 위원장은 “발주기관 등에서 연구비 집행 과정을 직접 감시하는 모델이 나와야 하고, 대학 당국에서도 연구비가 투명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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