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앨범 ‘async(비동기성)’을 완성하고 난 뒤 누구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20장 이상의 솔로앨범을 냈지만 그런 기분이 든 건 처음이었어요. 실제로 일주일 간은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았습니다(웃음).”
일본의 세계적인 영화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한국을 찾았다. 음악가로서가 아닌 미술가로서다. 전시기획사 글린트가 서울 회현동에 위치한 문화공간 피크닉의 개관전으로 26일부터 개최하는 ‘Life, Life’는 사카모토의 첫 한국 특별전시회로, 그 동안 외국에서 선보였던 각종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영화 ‘마지막 황제’(1987)로 아시아계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음악상을 받은 그는, 지난 40여 년간 여러 국가의 영화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며 전자음악의 선구자, 천재 작곡가로 불렸다. 2014년 인후암 진단을 받고 활동을 중단했으나 최근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6), ‘남한산성’(2017),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 등 다양한 영화에 참여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지난 4월엔 8년 만에 솔로 앨범 ‘async’를 발표했다.
이번 전시에는 ‘async’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미디어아트 작품을 비롯해 영화 ‘엉클 분미’(2010)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태국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상 작품, 과거 백남준과 함께 작업했던 ‘All Star Video’, 일본 야마구치 정보예술센터(YCMA)에서 작업한 대규모 미디어 설치 등 그가 직접 제작했거나 영향을 주고 받은 협업 작품들이 소개된다. 전시 개막 하루 전 피크닉에서 열린 ‘아티스트 토크’에서 사카모토는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영화에 음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견해를 밝혔다.
“제가 처음 영화음악을 맡은 건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1983)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영화야 어떻게 되든 내 음악만 눈에 띄면 된다고 생각했죠(웃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마지막 황제’에서 어린 황제가 수천 명 앞에서 즉위식을 하는 장면에 저는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 올리는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시사회 때 가보니 음악이 전부 빠져 있더군요. 그때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다시는 영화음악을 안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웃음).” 그는 “지금은 왜 (베르나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것 같다”며 “때론 음악보다 정적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정말 훌륭한 영화는 음악이 없다는 걸 인식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사카모토는 한국 작가들 중 백남준과 이우환 작가를 특별히 동경하는 작가로 언급했다. “1984년 뉴욕에서 백남준 선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보자마자 대뜸 달려와서 안아줬다”는 그는 “그날 바로 마음이 통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최근엔 이우환 작가와도 만남을 가졌다.
그는 음악가이자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일본 3ㆍ11 대지진의 피해를 입은 지역 청소년들과 함께 오케스트라를 결성했고 원자력 반대 운동에 목소리를 더해왔다. 음악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 음악으로 세상을 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미국 9ㆍ11 테러 사태 때 저는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느낀 건 인간은 극도의 긴장상태에선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가 음악을 하거나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평화로운 일상이 유지돼야 가능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려면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겠죠. 제가 음악과 함께 사회운동을 계속 하는 이유입니다.” 전시는 10월 14일까지 열린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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