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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처럼... 광주 아픔 위로한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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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처럼... 광주 아픔 위로한 기념식

입력
2018.05.18 16:5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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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 민주화운동 38주년 추모

“도청 나와서 형제자매 살려주세요”

당시 시민 참여 독려 가두방송한

전옥주씨 마이크 잡고 상황 재연

실종된 아들 38년간 찾아다닌

아버지 애끊는 사연 뮤지컬 공연도

文대통령 “짓밟힌 여성들 보듬어

진실의 역사 시작하겠다” 메시지

5·18 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엄수된 가운데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고 있다. 배우한기자
5·18 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엄수된 가운데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고 있다. 배우한기자

18일 거행된 5ㆍ18민주화운동 제38주년 기념식은 미완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담아낸 50분짜리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슬비가 흩뿌리는 기념식장엔 그 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유족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뮤지컬과 5월 기억 영상,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이에 화답하듯 문재인 대통령은 “진실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겠다”며 약속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 5ㆍ18 기념식도 파격 그 자체였다.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우리 형제자매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도청으로 나오셔서 우리 형제자매들을 살려주십시오.” 오전 10시, 기념식이 시작되자 식장엔 38년 전 그 날을 소환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5ㆍ18 당시 시민 참여를 독려하는 가두방송을 했던 전옥주씨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추모공연 무대에 서 그 때 상황을 재연했다. 국민의례로 시작하는 여느 국가기념식과는 사뭇 달랐다.

전씨가 5분여 남짓 풀어낸 상황극 ‘부치지 않은 편지’의 여운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기념사로 이어졌다. 이 총리는 “신군부는 정권 탈취 야욕을 노골화했고 광주는 정면으로 맞섰다. 그들은 광주를 군화로 짓밟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고 헬리콥터에서도 사격했다. 그래도 광주는 물러서지 않았다”고 했다. 이 총리는 또 “사실 왜곡과 광주의 명예를 훼손한 일은 진실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 총리의 기념사에 이어 펼쳐진 18분짜리 기념공연은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5ㆍ18 당시 행방불명된 이창현(당시 8세)군과 38년 동안 아들을 찾아 다닌 아버지의 애끊는 사연을 뮤지컬 배우 남경읍씨와 민우혁씨가 씨네라마(영화+드라마)로 전달했고, 식장 여기저기선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이어 80년 5월 당시 광주의 참상을 사진과 글로 기록해 해외 언론에 기고한 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의 부인인 마사 여사는 광주시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광주의 아픈 상처를 매만졌다. 그는 “당신(남편)이 사랑했던 광주는 이제 정의의 다른 이름이 됐다”고 위로했고, 유족과 시민들은 큰 박수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식 후 “짓밟힌 여성들의 삶을 보듬는 것에서 진실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내놨다. 5ㆍ18 당시 계엄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온 데 대한 문 대통령의 진상 규명 지시였다. 문 대통령은 “오늘 우리가 더욱 부끄러운 것은 광주가 겪은 상처의 깊이를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 알지 못하고 어루만져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라며 “국방부와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가 함께 공동조사단을 꾸려 성폭행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반드시 밝혀내고 피해자 한 분 한 분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8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옛 5ㆍ18 묘역에 들어서면서 바닥에 묻힌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18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옛 5ㆍ18 묘역에 들어서면서 바닥에 묻힌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을 대신해 기념식에 참석한 이 총리는 기념식 후 망월동 옛 묘역을 참배하러 가면서 입구 바닥에 박혀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민박기념비’를 짓밟고 지나가 눈길을 끌었다. 이를 놓고 참배객들 사이에선 “광주의 응어리를 대신 표현한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전 전 대통령 부부는 1982년 3월 10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에서 숙박한 뒤 민박기념비를 세웠고, 광주전남민주동우회는 89년 1월 13일 이 비를 부숴 5월 영령들이 묻힌 망월동 묘지 앞에 묻었다. 그러나 경찰이 망월동 묘역 참배를 마치고 옛 전남도청 앞 민주의 종각에서 열리는 타종식에 참석하러 가던 이 총리 일행을 위해 5ㆍ18묘지 진입도로 초입까지 2.9㎞ 구간에 대해 일반 참배객 차량 통행을 막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정상원 기자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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