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에 공공임대주택
대학ㆍ직장 인근 지역에 건립하고
관리비도 10만원 안팎 부담 적어
“친구들이 제게 로또 맞았다 해요”
#인근 주민 반발로 속도 못내
동네 건물주들 재산권 침해 우려
‘임대주택=빈민가’ 이미지 때문에
일부 주민 반대 전단지 붙이기도
#청년들 “잘못된 인식” 호소
‘전국 1호’ 서대문구 행복기숙사
학생들 덕에 상권 살고 분위기 밝아져
“영등포 등 임대주택 건설되기를”
직장인 이선용(28)씨는 지난해 3월부터 서울 송파구 마천동 ‘행복주택’에 살고 있다. 새로 지은 데다 21㎡(약 6.5평)의 공간에 베란다까지 있어 쾌적하다. 걸어서 10분 안 되는 거리에 지하철 5호선의 시작점 마천역이 있어 강남 사무실까지 출근하는 50분 동안 대부분 앉아서 갈 수 있다. 이곳에 오기 전 노량진 고시촌 16㎡(약 4.8평) 원룸에서 살 때 3명이 누우면 빈틈이 없을 정도로 좁고, 출퇴근 시간 ‘지옥철’에서 시달렸던 기억을 떠올리면 여기는 천국이다. 바로 뒤 천마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깨끗한 공기는 보너스다. 심지어 돈도 덜 든다. 노량진 원룸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 관리비 8~9만원을 내야 했지만, 행복주택은 보증금 5,200만원에 월세와 전세자금 대출 이자 17만원, 관리비 6~7만원만 부담하면 되기 때문에 매달 30만원 이상 더 모을 수 있다. 보증금 중 3,800만원은 이자율 2% 후반대의 버팀목 전세대출로, 1,000만원은 부모님 도움으로, 나머지 400만원은 본인이 모은 돈을 보탰다. “친구들이 로또 맞았다고 해요. 10만원도 안 되는 관리비 내고 서울 시내에서 이렇게 사는 게 실화냐고 합니다. 최대 6년, 결혼하면 추가로 4년 더 살 수 있는데 10년 동안 살면서 돈도 모으면 보증금은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옥고' 탈출로 로또 맞았다는 2030
이곳은 서울시 SH공사가 대학생, 젊은 직장인 등 청년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시중 가격의 60~80%에 공급하는 임대주택이다. 입주자 213명(일부는 가족) 중 80%는 2030세대이고, 20%는 만 65세 고령자와 주거급여 수급자다. 수 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여기 입주한 청년들은 더 이상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자체가 만족스럽다고 했다.
같은 단지에서 보증금 3,700만원에 월세 약 17만원, 관리비 8~9만원을 내고 21㎡ 세대에 살고 있는 웹 디자이너 안은주(25)씨는 3년 동안 건대 입구와 도봉구 쌍문동을 오가며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야 했다. 보증금 4,000만원에 월세 32만원을 내는 낡은 집은 벌레가 나오고, 곰팡이가 피었지만 집 주인은 도배는커녕 물 쓰는 비용을 더 내라고 했다. 출근 때마다 쓰레기 냄새를 참아야 했고, 저녁에는 술 취한 남성들이 뒤쫓아 오며 신체 접촉까지 하려 해 불안했다. “여기는 출입 관리 시스템이 잘 돼 있고, 지하철역부터 집까지 폐쇄회로(CC)TV, 보안등이 설치돼 있어 여자 혼자 살기에 안전해요. 집 바로 뒤 공원이 있어 강아지(호두, 마루)들도 좋아해요. 서울 도심서 반려견 키울만한 공간이 많지 않거든요. 출퇴근 스트레스, 보증금 월세 관리비 스트레스, 강아지 스트레스가 없으니 너무 좋죠.”
2030세대야말로 도심에 살아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대부분 대학이 도심에 있다. 등하교 시간을 줄여 강의 및 취업 준비를 해야 할 학생들은 학교에서 가까이 살려고 애쓴다. 기업들도 거의 시내에 있으니 주머니 상황이 넉넉지 않고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직장인들은 사무실과 멀리 떨어져 살기 힘들다. 도심에 살기 위해 청년들은 비좁음과 불편함을 인내해야 한다. 쾌적함과 안락함을 원한다면 도심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시간과 기회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러지도 못한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비싼 주거비 때문에 부모 도움 없이는 도심에 살 곳 마련이 힘들다”라며 “청년들의 주거 문제는 연애ㆍ결혼ㆍ출산까지 주저하게 만들어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진단했다.
대학 교직원 성현빈(25)씨는 청년들이 ‘N포 세대’가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집이라고 했다. “먹는 거 입는 거는 아끼면 해결될 문제지만 집은 그렇게 안 되잖아요. 지금 신혼부부는 하남, 남양주에라도 집을 구할 수 있지만 우리는 5~10년 뒤 결혼할 때쯤이면 서울서 더 멀리 가야 할 테니 암담하죠. 우리가 모으면 얼마나 모으겠느냐며 친구들과 한숨만 쉽니다.”
행복주택, 역세권청년주택, 행복기숙사 등장
정부, 지방자치단체는 도심 내 청년 주거 공간을 확충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행복주택이 대표적이다. 이는 청년, 대학생 등 취업준비생, 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주변 시세보다 20~40% 싸게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이다. 2015년 민간임대주택특별법을 만들어 그린벨트를 풀고 전체 물량의 51%는 임대주택으로 하고, 나머지는 분양이 가능하도록 한 다음 청년세대, 저소득층, 고령층 등이 살 수 있게 했다. 특히 기존에는 대학에 다니거나 직장 등 소득 활동을 하는 청년들만 청약 자격이 주어졌지만 올해부터는 소득과 관계없이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서울시가 지난달 24개 단지 2,627가구를 행복주택으로 내놓는다고 공개하자 무려 2만3,353명이 청약, 평균 8.9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LH는 올 하반기 전국에 39개 단지 1만7,221호의 행복주택 입주자를 모집한다.
서울시는 이와 별도로 지난해 2030세대를 위해 지하철역 가까운 곳에 전용 면적 15㎡, 16㎡부터 60㎡까지 소형주택을 임대하는 역세권청년주택 사업을 시작했다. 민간이 보유한 땅 중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지하철역 인근에 용적률 상향, 세제 혜택 등을 지원해 주상복합 형태의 임대 주택을 지어 30%는 월세 10만원대, 나머지 70%는 20~30만원대에 살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영구임대주택과 달리 8년 간 의무임대 후 분양을 할 수 있다. 현재 18개 지역이 사업 인증을 받았고 삼각지, 충정로, 서교동, 용답동 등 4곳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1호 청년주택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시는 2022년까지 8만 가구를 청년들에게 보급할 계획이다.
‘청년주택=빈민주택(?)’ 주민 반발로 번번이 무산
하지만 상당수 시도는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속도를 못 내고 있다. 서울시 역세권청년주택의 경우 사업 인가를 받은 18개 사업장 모두 주민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재산권이 침해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 시 관계자는 "임대업을 하는 건물주들은 시설 좋고 임대료는 더 싼 새 건물이 들어서면 임대료를 내려야 할지 몰라 반대한다"며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임대아파트가 못 사는 사람들 모여 사는 동네라는 이미지 때문에 집값이 떨어진다고 걱정한다"고 전했다.
실제 서울 영등포구 역세권청년주택 예정 부지 인근 아파트 일부 주민들이 '빈민 임대 아파트'가 들어서면 아파트 가격 폭락이 우려된다는 전단지를 붙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청년 주거 복지 증진이라는 공익과 집을 통한 재산 증진이라는 사익이 충돌하고, 집 있는 부모 세대와 집 없는 청년 세대 갈등 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도시 외곽이 아닌 기존 인구가 밀집된 도심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으니 상황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이 대학생 주거 안정을 위해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계획한 행복기숙사는 당초 내년 개관을 목표로 지난해 11월 공사를 시작하려 했지만 지역 주민들 반대로 중단됐다. 재단 관계자는 “교통 불편, 안전위협, 소음, 먼지, 일조권 침해 등 문제는 주민들과 대화로 해법을 찾을 수 있지만 기숙사를 혐오시설로 등치시키는 인식은 극복이 쉽지 않다”라며 “아이들이 성범죄 피해, 흡연 및 음주 문화에 노출되고 지역이 우범지대가 된다는 주장마저 나온다”고 말했다.
1호 행복기숙사 주민들 “분위기 밝아졌어요”
사학진흥재단이 2014년 서대문구와 함께 서울 홍제동에 지은 ‘전국 1호 행복기숙사’의 인근 주민들은 입주 5년이 지난 지금 기숙사와 대학생들 덕에 동네가 좋게 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이곳에는 대학생 516명이 살고 있다. 송현선(47)씨는 “처음에는 대학생들이 몇백 명 살면 시끄러워지고 사건 사고 난다고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았죠. 그런데 그동안 학생들 때문에 사고 났다는 소리는 듣질 못했어요. 젊은 학생들이 인사도 잘하고 동네 분위기도 밝아졌어요”라고 전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60대 A씨는 “기숙사 생기고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세탁소 장사도 더 잘 됩니다. 동네 가게들도 학생들 덕에 장사가 더 잘 되죠”라고 말했다.
행복기숙사 관계자는 “처음에는 소음이나 흡연 문제가 있었지만 학생들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잘 지키면서 주민들과 조화가 잘 되는 것 같다”며 “오히려 기숙사 식당이 일반 식당보다 싸고 맛있다고 소문나면서 많이들 와서 먹고, 기숙사 내 운동시설, 주차장을 적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니 주민들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집값에는 어떤 변화가 왔을까. 고진수 광운대 교수와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지난해 5월 ‘주택연구’에 ‘행복주택이 인근 주택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2016년 10월 입주가 끝난 삼전, 내곡, 천왕, 강일 등 서울 시내 4개 행복주택 주변 아파트의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행복주택과 500㎙ 거리 안에 있는 아파트 가격은 그렇지 않은 아파트 가격보다 사업 승인 이후 4.3% 상승했고, 250㎙ 이내의 아파트 가격은 6.5% 올랐다.
청년들 “기숙사, 청년임대주택 짓게 해달라”
학교와 직장이 가까운 도심에 2030세대의 주거 공간을 마련하자는 시도들이 번번이 무산되거나 제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애가 타는 당사자는 청년들이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뉠 곳 행진’이라는 거리 행사를 진행했다. 학교 측이 2013년부터 캠퍼스 인근 개운산의 학교 소유 공원 부지에 새 기숙사를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6년째 서울시의 건축 심의 전 단계인 전문가 자문도 끝내지 못했다. 학생회에 따르면 고려대 학생들의 기숙사 수용률은 10.3%로 사립대 평균 수용률 20.1% 절반에 불과하다.
최성훈 고려대 총학생회 주거복지국장은 “학교 측은 새 건물과 외국인 유학생 기숙사는 척척 지으면서 국내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나 몰라라 한다”며 “학교 근처 원룸 월세는 40만원을 넘은 지 오래고 갈수록 비싸지다 보니 점점 먼 곳으로 방을 구하러 가야 하고 방값 마련하느라 주말에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학교 소유지만 공원 부지여서 일반 부지보다 건축 심의 과정이 훨씬 복잡하고, 만약 기숙사가 들어서면 휴식 공간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주민 반대까지 겹치면서 쉽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 부지에 짓는다면 그나마 절차와 시간을 줄일 수 있을 텐데 학교가 공원 부지를 고집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고 덧붙였다.
청년 주거 문제 개선을 위한 비영리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은 최근 ‘따뜻한임대주택되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영등포, 성내동 등에 역세권청년주택 신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직접 찾아가 ‘청년들은 빈민도 예비범죄자도 아님’을 설명하고 청년 주택을 짓게 해달라 호소하고 있다. 이한솔 사무처장은 “일부 주민들이 임대주택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는 잘못된 것임을 설명하고 청년들의 안정적 주거 환경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재만 교수는 정부, 지자체, 대학, 사업 주체 등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설득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는 동시에 청년 주거 대책이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30 세대들이 다달이 40만원 가까운 방값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한 조치이지 무작정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과거 영구임대주택과는 다르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역 주민들과 공유할 독서실, 보육시설, 카페, 운동시설, 주차장 등 편의 시설에 청년들을 위한 창업 공간도 생기기 때문에 기존 주민들의 거주 여건 개선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이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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