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이민형 탈북’인데 난민처럼 대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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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이민형 탈북’인데 난민처럼 대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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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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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ㆍ탈북자 이해 관심 부족

"北에서도 USB 사용하나"

2000년대 정보 수준 머물러

"조선족은 써도 탈북자는 안돼"

식당 알바 자리도 퇴짜 맞아

여전한 차별ㆍ편견에 좌절하기도

평양에 봄이 온다.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이 지난 31일 방북해 1일 첫 공연을 앞 둔 가운데 예술단이 머물고 있는 고려호텔에서 바라 본 평양시민들의 모습 2018.4.1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북에 있었으면 결혼해 애 키울 나이인데 대학생을 꿈꾼다는 게 지금도 신기하죠.“

2016년 8월 한국에 온 김정혜(23ㆍ가명)씨는 북한에서 투명인간 신세였다. 사생아인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헤어진 뒤 아버지가 호적에 올려주지 않아 ‘신분’이랄 게 없었다. 당연히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직업을 갖기도 힘들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신분을 찾아 목숨을 걸고 중국을 거쳐 한국 땅을 밟았다. 이후 하루 13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낸 끝에 중졸 검정고시에 이어 최근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한 김씨는 7월에 있을 대입 논술 준비에 사활을 걸고 있다. 친구 집에서 소녀시대의 ‘지(Gee)’를 따라 부르던 한송이(25)씨는 2013년 탈북, 현재 아프리카TV방송 진행자(BJ)로 1년째 활동 중이다. 북한 장마당(북한 각지 상품을 사고파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품과 모란봉 악단, 북한의 역사교육까지 북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소개하는 그의 입담에 끌린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현재 1만명이 넘는다.

11년 만에 성사되는 남북정상회담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남북간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벌써 “통일이 가까워진 것 아니냐”는 말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미래 통일 사회의 한 축이 될 2030 탈북자들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을까.

탈북자의 적응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가치관과 언어 표현의 장벽이다. 2017년 1월 한국에 들어와 현재 대학교 1학년인 최도연(24ㆍ가명)씨는 대입 자기소개서와 논술을 준비하면서 큰 혼란을 겪었다. 최씨는 “자기소개서에 장점에 대해 쓰라고 했지만 북에서는 생활총화(자아비판) 시간에 늘 서로 잘못된 점을 비판하고 칭찬은 당에 대한 ‘충성심’에 한정돼 장점이랄 게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라며 “처음으로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에서 글쓰기 주제가 ‘나의 꿈’이라 할지라도 미괄식 전개에 마지막은 당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식으로 써야 했다”라며 “남한에서는 두괄식 전개에 4차 산업혁명, 혼밥(홀로 식사하는 문화) 등 주제가 너무 생소해 관련 강의가 있다고 하면 일부러 찾아 들으면서 파악하느라 애를 먹었다”라고 덧붙였다. 한송이씨는 “방송을 하던 중 한 시청자가 정치적인 비판을 해 다른 시청자가 나를 보호하는 댓글을 달았는데 그걸 오해해 보호하던 이에게 ‘방에서 나가라’고 한 적이 있다”라며 “다른 시청자들이 댓글로 설명해주고 나서야 그분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북한과 탈북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과거 수준에 머무는 점은 늘 아쉽다. 2006년 탈북해 현재 가톨릭대 심리학과에 재학 중인 김필주(32)씨는 “대한민국에 산 지 12년 됐지만 ‘탈북자를 처음 봤어요’ 라며 신기해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라며 “과거 먹고 살기 힘들어 탈북하는 생계형에서 이민형 탈북으로 트렌드가 바뀌는데도 남한 사람들의 질문은 '북한은 왜 민주화가 안 되나, 북한에도 이런 물건을 사용하고 있나’ 수준에 멈춰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한 내부는 많은 것이 변하고 있는데도 (우리를)통일 동반자로서 이해하지 않고 10년 전 지식수준으로 바라 봐 쳇바퀴를 도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점점 줄어들곤 있지만 여전한 차별의 시선도 이들을 좌절시키는 요인이다. 최도연씨는 “지난해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인천의 한 식당을 찾아갔는데 사장이 말투를 듣고 조선족이냐고 묻더니 탈북자라고 답하자 면전에서 ‘조선족은 받아도 탈북자는 절대 안 받는다’라며 내쫓았다”라며 “외국인이라 말을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닌데 젊은 나이에 식당 일 하나 못 구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좌절했다”고 설명했다. 남북하나재단이 시행한 ‘2017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민(탈북자를 뜻하는 우리 정부의 공식명칭)들이 남한 생활에 불만족하는 주된 이유로 ‘남한사회의 차별ㆍ편견’(19.3%)이란 답변이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해서’(31.6%)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이들은 다른 탈북자들에게 자격지심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한다. 북한 돌격대(국가 정책에 동원되는 20~30대 준군사집단) 출신으로 2010년 탈북한 이위력(30)씨는 “한번은 거제도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사투리를 쓰는 데다 외래어까지 나오니까 대화가 잘 안 됐다”라며 “결국 사람들이 나를 배려하기 시작했는데 ‘탈북자니까 나를 이해해주세요’라고 생각하며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 싫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도 젊은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면 대화가 안 되지만 봉사 활동을 통해 약자 프레임에서 벗어나면서 그때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2030 탈북자들은 다른 탈북자의 올바른 정착을 돕는 일은 결국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한송이 씨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USB를 썼지만 지금도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만큼 한국인들의 북한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라며 “BJ 활동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북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정혜씨는 “중국에 머물 때 탈북자들이 다시 북송돼 힘겹게 살아간다는 소문이 돌아 무서웠다”라며 “중어중문학과에 진학해 국내에서 북한에 대한 향후 외교ㆍ통상 관련 직업을 얻어 중국 측에 탈북자들을 북송하지 말아 달라고 설득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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