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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한 사람이 사라진 자리

입력
2018.04.24 15: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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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나는 장례식장에 있었다. 의뢰인의 장례식이다. 정확히는, 당사자의 유족이 의뢰인인 사건의 발인이 있었다. 상사의 괴롭힘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이역만리 선상에서 목을 맨 고인은 대체복무 중이던 스물다섯 청년이었다. 소식을 듣고 변호사를 찾아온 의뢰인은, 하나뿐인 동생을 잃은 누나다.

변호사에게는 두 가지 부고가 있다. 하나는 일반적 부고다. 지인이나 친지, 동문회에서 오는 소식이다. 다른 하나는 사건이다. 한 사람의 삶이 끝난 후에 일어나는 일을 변호사로서 만나는 것이다.

법과 제도는 죽음을 예정하고 있어서, 한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강 그만한 크기의 서류와 절차의 자리가 있다. 제도는 놀라지 않는다. 법은 당황하지 않는다. 나는 놀라고 당황한 사람들에게, 한 사람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를 침착하게 가리킨다. 마치 매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듯이 행동한다.

내가 평생 알지 못할 이들이 나오는 CCTV, 사진, 비디오를 본다. 지금은 없는 사람들의 전화통화를 듣고 주고받은 문자며 카카오톡을 보고 부검 보고서와 사진을 본다. 진료기록을 읽고 출퇴근 카드를 한 장씩 엑셀파일로 만든다. 가늠할 수 없는 깊고 깊은 슬픔이 넘실대는 사이에 혼자 허리에 튜브를 끼우고 어색하게 떠서 펜과 종이를 흔든다. 마치 전혀 놀라지 않은 것처럼,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것처럼, 그 칸이 절대 한 사람보다 더 크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

“자, 하나씩 합시다. 카카오톡은 이렇게 중간을 자르지 말고 스크린 샷을 통째로 따 주세요. 날짜 나오게, 화면 그대로 주세요. 녹음이 45분이라고요? 중요한 부분이 어디인가요? 일단 들어보고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맡기죠. 통장은 못 찾으셨어도 괜찮아요. 은행 가셔서 입출금내역 달라고 하면 돼요. 국민신문고요? 선생님 그건 좀...”

그러나 죽음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놀랍게도, 기막히게도, 제발 당연하기를, 차라리 이 모든 일이 그저 애당초 일어날 일이었기를 간절히 바랄 때조차도 결코 당연하지 않다. 한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많은 것들이 들락거린다. 대개 한 인간의 무게보다 무겁고, 한 인간의 몸보다 물렁하고, 한 인간의 삶보다 깊다. 그것은 커지려면 끝없이 커질 수 있는 구멍이다. 그래서 나는 그렇지 않은 척한다. 누구 한 사람 정도는 그 칸을 딱 한 사람의 크기로 보지 않으면, 그 구멍은 모든 사람들을 삼켜버릴지 모른다.

빈소를 차리기는커녕 동생 얼굴도 아직 다시 보지 못한 사회초년생 누나는 오전 열한 시, 아직 추운 봄날, 변호사 사무실에 앉아 이를 악물고 말했다. “우리 동생 같은 일이 또 없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후회가 안 남을 것 같아요. 제도개선을 위해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끝까지 할 겁니다.” 눈에 고인 눈물이 떨어지기 직전, 전화벨이 울렸다. “11층에 안 계신가요.” 그의 휴대폰 너머에서 택배 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네. 지금 외부에 있어서, 8층에 맡겨 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폐기한 어떤 기록들, 유족이 찾아가지 않았고 나도 버리지 못한 유품, 아버지 없는 딸의 첫 돌잔치 같은 기억들을 잠시 떠올렸다. 그 모든 ‘당연한 척’의 사이사이에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내가 몰랐던 사람들을 애도한다. 슬픔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없지만, 그래, 모두가 슬퍼하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지만.

나는 처음 맡았던 산재사망사건의 피해자보다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아니, 지금 이 말은 거짓말이다. 나는 내가 그보다 나이를 더 먹은 당일, 알았다. 어떤 아기가 두 돌이 된 날 사실은 달력을 보자마자 알았던 것처럼.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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