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불행한 아이들 혼자 두지 말라는 당부하고 싶어요”

알림

“불행한 아이들 혼자 두지 말라는 당부하고 싶어요”

입력
2018.04.10 04:40
21면
0 0

세월호 관련서적 5권 낸

‘세월호 작가’소설가 김탁환

4주기 맞아 새로운 여정 시작

전국 고교 10곳 학생들 찾아가

‘어떻게 기억하는지’ 듣기로

김탁환 작가는 숨진 김관홍 잠수사가 주인공인 ‘거짓말이다’를 비롯해 세월호 책 5권을 냈다. 그는 “김 잠수사 덕분에 시야 제로인 심해에서도 무엇인가를 찾아 함께 머무는 법을 배웠다. 손을 뻗어 만지면서 머릿속으로 그려 볼 것. 그리고 끌어안을 것”이라고 소설 속 작가의 말에 썼다. 서재훈 기자
김탁환 작가는 숨진 김관홍 잠수사가 주인공인 ‘거짓말이다’를 비롯해 세월호 책 5권을 냈다. 그는 “김 잠수사 덕분에 시야 제로인 심해에서도 무엇인가를 찾아 함께 머무는 법을 배웠다. 손을 뻗어 만지면서 머릿속으로 그려 볼 것. 그리고 끌어안을 것”이라고 소설 속 작가의 말에 썼다. 서재훈 기자

“얼마나 절실하게 질문을 던지는가가 중요하다”는 문장으로 김탁환(49) 작가의 단편소설집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2017∙돌베개)는 출발한다. 책은 고통에서 서로를 건져 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문학을 하는 세월호의 사람”(문학평론가 김명인 인하대 교수)이라 불리는 김 작가가 낸 세월호 책 다섯 권 중 다섯 번째 책이다. 그날 이후 우리는 과연 절실한, 참된, 충분한 질문을 던졌는가. 세월호 참사 4주기에 다시금 마주할 질문이다. 김 작가가 그 답을 찾으려 새 여정을 시작한다.

김 작가는 5월 1일 서울 해성여고, 2일 중앙고를 시작으로 전국의 고등학교 열 곳을 다니며 학생들과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한다. 그날 아침 깔깔거리며 세월호에 올랐을 아이들, 영원히 ‘단원고 아이들’로 남을 아이들을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하는지 듣고 싶어서다. 그렇게 많이 쓰고도 왜 여전히 세월호인가. 촛불로,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교체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이 실증된 것 아닌가. 다시 말해, 문학이 시급하게 할 일이 남아 있는가. 얼마 전 김 작가를 서울 합정동 카페에서 만나 물었다.

-학생들을 왜 만나려 하나요. 무슨 이야기를 할 건가요.

“결국 불행이 주제가 되겠죠. 모든 인간은 불행해지는데, 나는 어떤 불행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엄청난 불행을 나는 어떻게 감당할까를 함께 상상해 보는 거예요. 세월호 아이들에게 감정이입 해 보는 거죠. 고통과 상처를 되새겨 누군가를 자라게 하는 게 소설의 역할이에요. ‘어떤 아이가 불행해하면 손 잡고 안아 줘라. 혼자 두지 말아라. 그럼 네가 그 아이를 살리는 거다.’ 그런 이야기까지 넓혀 보고 싶어요. ‘아름다운 그이는…’도 세월호와 연결된 사람들을 김관홍 잠수사처럼 혼자 남지 않게 하려고 썼어요(장편소설 ‘거짓말이다’(2016∙북스피어)의 주인공 김 잠수사는 김 작가가 퇴고하는 동안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희생자들의 사연도 들려줄 거예요. 304명이라는 희생자 크기를 강조하는 것보다 희생자,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을 나누는 게 의미 있으니까요. 인간 대 인간으로 학생들을 만날 겁니다.”

2016년 11월 '단원고 416 기억 교실'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11월 '단원고 416 기억 교실'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보수 진영은 ‘세월호 피로’를 이야기해요. 밝혀지지 않은 ‘거짓말’들이 아직 많다고 보나요.

“진상 규명은 제대로 시작도 못 했어요. 초기 자료, 증언 같은 것들이 뒤엉킨 탓이죠. 또 선체를 인양하기도 전에 재판이 끝나버렸잖아요. 저는 이 상황을 ‘뒤엉킨 참혹함’이라 불러요. 뒤엉킨 것들을 제대로 펼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그 작업이 최소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합니다.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채로 올라온 세월호의 모습이 우리 안의 모습이에요. 우리가 그런 상태라는 걸, 세월호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몇몇 정치인을 비롯해 ‘내 마음은 쌈박해. 내가 정리해 줄게’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만 쌈박한 거예요. 한번도 자기 마음이 뒤엉켜 본 적 없는 거예요.”

-‘사고로 죽는 사람이 한둘이야?’ 그런 매정한 반응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외면해버리는 거죠. 제주도를 걷다 보면,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은 거의 예외 없이 4∙3 학살이 일어난 장소예요. 숲이 깊으니 거기로 데려가서 죽인 거예요. 가장 아름다운 것과 가장 아픈 것이 함께 있는 게 우리 역사인데, 그 중 하나만 보려 하는 겁니다. 단원고 2학년 교실에 몇 번 가 봤거든요. 희생자 책상에 꽃을 올려 뒀는데, 어떤 교실에는 책상 서너 개 빼고 전부 꽃이 놓여 있었어요. 그런 기막힌 장면 앞에서 인간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김탁환 작가의 세월호 책. 왼쪽부터 장편소설 '거짓말이다', 단편소설집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산문집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
김탁환 작가의 세월호 책. 왼쪽부터 장편소설 '거짓말이다', 단편소설집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산문집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

-세월호에 대해 또 쓸 건가요. ‘세월호 작가’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 않나요.

“어쩔 수 없죠. 올해로 등단 22년 차예요. 소설 써 줘서 고맙다는 말은 ‘거짓말이다’로 처음 들어 봤어요. 쑥스러웠어요. 제가 세월호 작가로 불릴 만한 그릇이 못 되는 게 걱정스러울 뿐이에요. 세월호에 대해 쓰면서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오직 어렴풋이 아는 것, 예컨대 슬픔의 무게, 절망의 깊이 같은 것들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것이죠. 사회소설을 계속 쓸 생각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저의 ‘생애 사건’이에요. 평생 함께 갈 것 같아요.”

-왜인가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그걸 분명히 알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거예요. 중요한 사건, 사람인 건 알겠는데 왜,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죠. 문장으로 쓰면서 곱씹어 생각하고 느끼는 과정을 지나고 나면 몇 마디는 할 수 있게 돼요. 저는 그 과정을 아직 지나고 있는 듯해요. 장편소설 작가들이 원래 좀 느리거든요. 세월호 참사가 대체 왜 벌어졌는가를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소설이 언젠가 나와야 해요. 제가 쓰든, 다른 작가가 쓰든, 시간이 걸리겠죠. 사회소설은 작가 역량만으로 써지는 게 아니더군요.”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황수정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