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남성 멘토와 1대1 결연
일주일 한번 통화, 한달 한번 만남
독거노인들 집 도배 등 봉사활동
희망텃밭서 수확한 채소 나누기도
참가자 정신건강 등 만족도 높아
지난달 28일 서울 근교의 한 주말농장. 중년 남성 예닐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지난해 심어 놓은 양파를 앞에 놓고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대화 사이사이 웃음 소리가 아직 겨울의 황량함을 떨치지 못한 텃밭에 봄 꽃 피듯 터졌다. 상기된 얼굴로 밭에 물을 주고, 죽은 양파를 솎아내던 정성근(60)씨가 “집에만 있다가 텃밭에 나오면 이야기할 사람이 많아 활력이 난다”고 웃었다.
이 남성들은 모두 같은 동네(양천구 신월1동)에 혼자 사는 주민이다. 그러다 이제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내는 진짜 이웃이 됐다. 양천구가 지난해 6월부터 관내 중년 남성의 고독사 비율이 높다는데 착안해 시작한 ‘나비남 프로젝트’의 하나인 ‘희망텃밭’ 사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나비남’이란 한자로 ‘아닐 비(非)’와 ‘사내 남(男)’을 써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현재 양천구의 남성 고독사 비율은 85%로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고 연령대별로는 50대(35.8%)가 가장 많다.
구는 중년 독거남 계층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해 50~64세 주민등록 1인 가구 6,841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생계, 건강, 일자리, 정신건강, 주거 환경 등 생활 전반에서 404가구가 위험에 처해 있었다. 구는 이중 고위험군은 법적 지원 체계로 흡수하고 나머지 중ㆍ저위험 가구 약 300명을 선별해 나비남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프로젝트는 이들에 대한 자조 모임, 봉사활동, 일자리 연계 등 여러 사업을 통한 공동체 회복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52개 사업이 시행됐다. 우선 이들의 사회적 관계 형성을 위한 ‘멘토-멘티’ 사업을 펼쳤다. 일반인 남성 멘토 95명과 독거남들을 1 대 1로 맺어줬다.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 통화를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친목을 다졌다. 멘토와 멘티가 여행을 함께 가는 기회도 마련했다. 신월1동은 희망텃밭과 함께 요리 교실 프로그램(‘집밥이 쉬워졌어요’)을 운영하고 신월6동은 밑반찬 제공과 주거 환경 개선을 돕는 ‘행복한 광식씨’ 사업을 진행하는 등 18개 동별로도 사정에 맞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 시작 6개월쯤 지나자, 당장 동네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김명선 구 자치행정과 동복지지원팀 주무관은 “어딘지 모르게 위축돼 있던 분들이 나비남 프로젝트를 계기로 다른 이웃들을 돕는데 나서게 되면서 의미가 배가 됐다”고 말했다. 목2동의 나비남들 중 일부는 독거 노인 집을 방문해 도배를 해주는 봉사활동을 펼쳤고 희망텃밭에서 지난해 수확한 채소는 주변 취약 계층과 함께 나눴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지난달 열린 ‘나비남 프로젝트 평가 및 성과 공유회’에선 나비남들의 사업 만족도가 4.13점(5점 만점)을 기록했다. 먹거리(4.56), 치료(4.33), 정신건강(4.14) 지원에 대한 만족도가 특히 높았다.
나비남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기존 제도권 복지가 소홀히 여겼던 ‘중년 독거남’이란 복지 사각지대를 조명해 대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금란 신월1동주민센터 방문복지팀 팀장은 “참가자들이 본인 친구나 옆집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며 “관에서 찾아 다니는데 한계가 있었던 복지 사각지대가 저절로 발굴되고 이들이 ‘서로 돌봄’을 하도록 만든다는 게 이 프로젝트의 힘”이라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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