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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행동치료하면 건보 적용, 임상심리사가 하면 제외

입력
2018.04.02 04:4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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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적용 주체 ‘의사’로 한정

복지부 “건보는 치료행위만 해당

서비스 지원 행위 적용은 어렵다”

심리학계 “정부 조치 수용 못해”

임상심리사들 수백명 해고 위기

#의료관련 직역들 존립 위태

‘초음파 검사’ 방사선사 반발 여전

간호사ㆍ언어재활사도 불똥 우려

“이참에 의료 행위 문턱 낮추고

안전 교육체계 강화를” 지적도

한국임상심리학회 회원들이 지난 29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메이플룸에서 인지행동치료 수가 개편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한국임상심리학회 제공
한국임상심리학회 회원들이 지난 29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메이플룸에서 인지행동치료 수가 개편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한국임상심리학회 제공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말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며 그간 보장에서 제외돼 비급여였던 인지치료, 행동치료에 올 상반기 중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단서가 있었다. 이런 인지ㆍ행동치료 제공의 주체를 ‘정신건강의학과 3년차 이상 전공의와 정신건강의학과ㆍ신경과 전문의’로 제한한 것이다. 의사가 아닌 정신건강임상심리사(이하 임상심리사)가 인지ㆍ행동치료를 한다면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상심리사는 정신복지법에 ‘심리상담과 심리안정을 위한 서비스 지원’ 등을 할 수 있다고 명시된 국가 자격이다.

심리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현재 정신병원에 고용돼 의사의 관리ㆍ감독 하에 인지ㆍ행동치료를 하고 있는 임상심리사 수백명이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서수연 한국임상심리학회 홍보이사(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1일 “복지부가 만든 임상심리사 자격증을 수년간 공부해 어렵게 취득한 사람들과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는 수많은 심리학과 학생들을 낙동강 오리알로 만드는 조치”라고 강력 반발했다.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이 예기치 않게 의사가 아닌 의료 관련 직역들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면서 환영을 받고 있지만, 당초 의도치 않았던 곳으로 불똥이 튀고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의료행위를 의사만 독점적으로 할 수 있게 한 현행 의료법에 근본 원인이 있는데, 이 기회에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은 개선을 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리학계는 정부의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심리학회와 한국임상심리학회, 한국상담심리학회는 지난달 29일 정부의 상담정신치료 수가 개편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문재인 케어의 방향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복지부의 개정안은 오히려 국민 정신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의료법은 의료행위는 의사만 할 수 있다고 한정하고 있어 임상심리사의 인지ㆍ행동치료를 정부가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어렵다”고 전했다. 치료와 서비스 지원의 경계선이 모호한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건강보험은 치료행위에만 적용되는 것인 만큼 임상심리사의 서비스 지원 행위에까지 공식적으로 적용해줄 순 없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을 하는 직종인 방사선사들 역시 문재인 케어의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가 이날부터 상복부 초음파의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하면서 초음파 검사의 주체를 역시 의사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의사의 지시를 받아 초음파 검사를 실시했던 방사선사 2,000여명이 졸지에 해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일부 병원, 특히 심장내과에서는 지금까지 검사는 방사선사들이 하고 검사 결과의 판독은 의사가 해왔다. 방사선사 수천명이 지난 25일 집회를 열고 집단 반발에 나서자 복지부는 한발 물러서 ‘의사가 방사선사와 같은 공간에서 머물면서 방사선사의 촬영 영상을 보면서 실시간 지도와 진단을 하는 경우’에 한해 방사선사의 초음파 검사도 건강보험을 적용해 주기로 했다. 방사선사의 독자적인 검사는 치료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방사선사들은 일단 한 발 물러선 상태이지만, 향후 논란의 불씨는 그대로 남겨둔 셈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진행될수록 이런 의료 관련 직역간 충돌은 여기저기서 불거질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실상 치료행위를 대신하는 간호사나 언어재활사 등으로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행위의 종류와 의료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의사 수는 정체되어 있어 일부 비 핵심 의료행위는 다른 직역이 할 수 있도록 이 참에 문턱을 낮춰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신 안전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교육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의사들의 반발과 안전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는 넘어서기 쉽지 않은 만만찮은 과제다. 서영준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사들이 직접 수행하려 하지 않는 의료행위까지 전부 의사만 실시할 수 있게 묶어 두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면서 “다른 직역의 의료행위를 일부 허용하되 교육을 철저히 하고, 이들에 의한 의료행위는 수가를 비교적 낮게 책정하는 것이 절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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