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산재 기준 여전히 까다로워
전문가들 “주 52시간으로 맞춰야”
“추가 연구용역 후 방향 찾겠다”
고용부 미온적 태도에 회의론도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과로사회 탈피의 첫발을 내디뎠으나 정작 ‘과로’의 기준은 종전대로 주 60시간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뜩이나 장시간 근무로 인한 산업재해 승인률이 낮은 상황에서 이 같은 기준이 과로를 더 부채질한다는 지적이다.
25일 현행 고용노동부의 뇌혈관질병 또는 심장질병 및 근골격계질병의 업무상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과로 산재 인정 기준) 고시에 따르면 근로시간이 주 60시간을 넘으면 과로와 발병(뇌심혈관계 질환) 사이 관련성이 강하다고 보지만, 주 52시간 이상 60시간 미만인 경우에는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하나라도 있어야 이를 인정한다. 업무부담 가중요인이란 근무일정 예측이 어렵거나, 교대제 업무, 휴일이 부족한 업무 등 총 7가지다.
올해 7월부터 공공기관과 대기업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되면서 특례업종 종사자를 제외한 근로자는 그보다 오래 일할 수 없는데도, 업무부담 가중요인 없이 과로로 인정되려면 매주 8시간을 더 일해야 하는 셈이다. 이렇게 과로로 인한 산재 인정 기준이 까다롭다 보니 2017년에 과로로 죽거나 다쳐 산재 신청을 한 근로자 중 32.6%(589건)만 인정을 받았다. 반면 전체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산채 신청 승인률은 전체 신청 8,715건의 절반이 넘는 53.9%(4,607건)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과로 관련 산재 인정 기준을 지금보다 더 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이미 여러 연구에서 주 60시간 이하로 일하더라도 뇌심혈관질환 유병률이 유의미하게 높다고 보고됐다”며 “수년 전부터 학계에서는 과로 인정기준을 근로기준법에 규정한 최대 근로시간인 1주 평균 52시간으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온적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맞춰 관련 산재인정 기준을 바꿀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당장 이를 개선하기는 어렵다는 태도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관련 고시 개정 당시엔)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며 “추가 연구용역을 후 개선방향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빨라야 내년에야 관련 연구를 시작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굳이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마저 나온다. 한 고용부 관계자는 “과로의 산재인정 기준 고시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안과관계를 살피는 것이므로, 반드시 근로기준법의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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