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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이 장면] 돌아온 솔리드, 다시 만난 지팡이

입력
2018.03.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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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B급 장면’을 소개합니다. 특종보다 재미있는, 연예계 이면의 진실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그룹 솔리드 래퍼인 이준(오른쪽 첫 번째)이 21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새 앨범 ‘인투 더 라이트’ 발매 쇼케이스에서 자신의 분신 같은 지팡이를 짚고 히트곡 ‘천생연분’을 부르고 있다. 솔리드 제공
그룹 솔리드 래퍼인 이준(오른쪽 첫 번째)이 21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새 앨범 ‘인투 더 라이트’ 발매 쇼케이스에서 자신의 분신 같은 지팡이를 짚고 히트곡 ‘천생연분’을 부르고 있다. 솔리드 제공

“약속을 정하고 그 날이 왔어. 신경 써서 옷도 입고 머리도 하고.” 2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그룹 솔리드 래퍼 이준(46)이 팀 새 앨범 ‘인투 더 라이트’ 발매 쇼케이스에서 히트곡 ‘천생연분’(1996)의 랩을 하며 살짝 웃었습니다. 1997년 그룹 활동을 중단한 뒤 21년 만에 무대에 올라 랩을 해 자신도 신기하고 멋쩍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어색함도 잠시, 이준은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묵직하게 랩을 내뱉었습니다. 이준 특유 중저음의 매력은 여전했습니다. 노래 부르듯 랩을 하는 스타일이 요즘엔 다소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1990년대 중후반에 이준의 랩은 분명 강렬했습니다.

그룹 솔리드 2집 재킷 사진 이미지. 래퍼 이준이 포켓볼 8번공이 박힌 지팡이를 들고 있다.
그룹 솔리드 2집 재킷 사진 이미지. 래퍼 이준이 포켓볼 8번공이 박힌 지팡이를 들고 있다.

미국에서 산 지팡이

이준만 돌아온 게 아니었습니다. 그의 오른손엔 검은색 지팡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이준이 전성기 시절 ‘이 밤의 끝을 잡고’ 등의 무대에서 몸을 흐느적거리며 분신처럼 휘둘렀던 그 추억의 소품입니다.

노래 ‘당신’(1991)으로 유명한 가수 김정수하면 중절모가 떠오르듯, 솔리드를 대표하는 물건은 지팡이였습니다. 솔리드의 작곡을 담당했던 정재윤은 “솔리드의 상징은 지팡이”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감미로운 리듬앤드블루스(R&B)로 유명한 그룹이 뜬금없이 왜 지팡이를 들고 나왔을까요. 미국 흑인 음악 문화와 관련이 깊습니다. 솔리드가 데뷔했던 1990년대에 활동했던 흑인 래퍼 혹은 R&B그룹들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고급스러운 지팡이 등을 무대 소품으로 활용했습니다. 비싼 보석이 박한 반지 등을 끼고 흑인 음악인들의 성공을 보여주려 한 겁니다.

재미동포였던 세 청년은 미국에서 자연스럽게 흑인 음악 문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22일 솔리드 측근에 확인해보니 솔리드는 1993년 1집 ‘기브 미 어 챈스’를 내기 전 미국에서 옷 가게에 들렀다가 지팡이를 샀고, 무대에서 활용했다고 합니다.

요즘엔 가수들의 의상과 소품을 스타일리스트가 챙기지만, 당시엔 가수들이 직접 구했습니다. 미국 흑인 음악에서 주로 사용되는 소품이기도 하고 정장 옆에 놓인 지팡이가 멋져 보여 무대에 들고 나가면 멋있겠다 싶어 활용했다고 합니다.

듀스, 비까지… 진화한 지팡이

가요계 지팡이 애호가는 솔리드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솔리드와 같은 해 데뷔했던 남성 듀오 듀스 멤버인 이현도는 3집 ‘굴레를 벗어나’(1995)의 동명 타이틀곡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무대에서 지팡이를 들고 강렬하게 춤을 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솔리드가 지팡이를 들고 무대에 오르자 듀스 멤버들이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봤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한국 힙합 음악 1세대인 듀스의 뒤를 이어 가수 비도 지팡이에 빠진 춤꾼이었습니다. 비는 ‘레이니즘’(2008)에서 지팡이를 활용한 ‘지팡이춤’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시대가 흘러 지팡이도 진화했습니다. 비는 지팡이를 LED(광다이오드)로 제작해 볼거리를 주기도 했습니다.

21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솔리드 래퍼 이준. 데뷔 때 ‘X세대’였던 그는 이제 두 아이의 아빠다. 솔리드 제공
21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솔리드 래퍼 이준. 데뷔 때 ‘X세대’였던 그는 이제 두 아이의 아빠다. 솔리드 제공

부러진 오리지널 지팡이… ‘포켓볼 8번공’은

이준이 21년 만에 들고나온 지팡이엔 사연이 있었습니다. 재결합 무대를 위해 지팡이를 새로 제작했다고 합니다. 이준에게 이유를 직접 묻자 긴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미국으로 떠날 때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데 갖고 가기가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이모님 댁에 맡겼죠. 이번 활동을 위해 이모님께 ‘지팡이 잘 있냐?’고 여쭸더니 부러졌다고 하더라고요. 사촌 형이 아파서 지팡이를 사용했는데 부러졌다고요.” 이준은 스스로 “이젠 지팡이를 쓸 나이도 됐다”는 너스레도 떨었습니다.

이준의 지팡이 손잡이엔 ‘포켓볼 8번공’이 박혀 있습니다. 8번공은 포켓볼 경기에서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공입니다. 솔리드 2집 재킷 사진엔 이준이 이 공이 박힌 지팡이를 들고 찍은 모습이 들어있습니다. 솔리드는 왜 포켓볼 8번공을 지팡이에 박았을까요. 솔리드 측에 따르면 애초 미국에서 산 지팡이에 포켓볼 8번공이 박혀 있었답니다. 그 디자인에 반해 사긴 했지만,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합니다.

가요계를 떠나 미국에서 부동산 사업에 몰두했던 이준은 다시 지팡이를 손에 쥐었습니다. 이젠

22일 발매한 솔리드 새 앨범 ‘인투 더 라이트’로 활동에 나섭니다. 이준은 “솔리드 활동 전 부모님과 약속을 한 게 있다. 가요계에서 활동해도 대학교는 졸업해야 한다는 약속이었고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가서 대학교 졸업을 했고 그렇게 21년이 지났다”고 했습니다. 잠깐 쉰다는 마음으로 떠났는데 20여 년이 훌쩍 흘렀다는 얘기였습니다.

지난 20일 KBS2 음악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 녹화를 마친 솔리드는 5월 19, 20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합니다.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아 ‘추억의 끝을 잡고’ 솔리드가 돌아왔습니다, 새로운 지팡이와 함께.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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