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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패럴림픽, 그들도 영웅 아닌 사람이다

입력
2018.03.0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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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성화가 7일 '아리랑의 도시' 강원 정선에 입성해 대한민국 산업 근대화를 이끈 석탄산업 현장인 사북석탄역사체험관에서 봉송되고 있다. 정선군 제공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성화가 7일 '아리랑의 도시' 강원 정선에 입성해 대한민국 산업 근대화를 이끈 석탄산업 현장인 사북석탄역사체험관에서 봉송되고 있다. 정선군 제공

17일 동안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한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또 한 편의 ‘겨울 동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세계 장애인 선수들의 겨울 스포츠축제인 평창 동계패럴림픽이 9일 개막해 18일까지 열린다. 평창올림픽과 마찬가지로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이라는 슬로건 아래 49개국에서 선수 570명을 포함한 1,700여 명이 참가한다.

평창올림픽을 통해 도전과 극복의 과정을 지닌 스포츠가 전파하는 신비한 힘은 충분히 증명됐다. 패럴림픽이 갖는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두 다리를 잃고도, 앞이 보이지 않아도 설원을 질주하는 선수들에게서 신체의 장애가 인간의 한계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개막이 다가오자 대회 조직위원회는 언론에 각종 자료 제공을 통해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른바 ‘감동’의 소재가 될 ‘영웅’들의 스토리다.

이쯤에서 패럴림픽의 기본 정신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올림픽 메달은 표면이 사선으로 구성됐지만, 패럴림픽 메달은 패럴림픽 정신인 '평등'을 강조하기 위해 수평으로 구성돼 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영웅 대접이 아니라 편견의 배제다. 기욤 고베르 벨기에 패럴림픽위원회 마케팅&미디어 매니저는 6일 한국 언론을 대상으로 연 ‘장애인 인권 옹호 미디어 세미나‘에서 “패럴림픽 선수들을 언론에서 배트맨으로 영웅화시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패럴림픽 선수들을 올림픽보다 더 대단한 선수로 취급하지 말아달라”며 “언론인들은 장애인 선수들이 부진했다는 부분을 보도하기 부담스러워 하는데 그저 ‘원숭이도 나무 위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관점으로 경기가 부진했다고 보도하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조언했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영웅화’는 실제론 사회 활동 참여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평창올림픽 기간 중에 장애계 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개회식 방송 중 청각ㆍ시각장애인의 시청권을 보장하지 않은 지상파 방송 3사와 정부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했다. 수어통역과 화면해설 방송을 일부에서만 제공해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나 화면해설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개회식 중계방송을 제대로 시청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하면 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의 방송시청을 위해 자막, 수어통역 화면 해설 등을 제공해야 하며, 국가와 지자체는 ‘장애인복지법’ 제22조, ‘방송법’ 제69조, ‘한국수화언어법’ 제16조에 의해 방송사가 올림픽과 같은 국제적 행사를 중계할 때 장애인을 위해 자막, 수어통역, 화면해설 등을 제공하도록 요청해야 한다고 돼 있다.

패럴림픽은 ‘장애인 올림픽'이다. 누구나 이런저런 장애를 안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장애인들은 지나친 동정이나, 패럴림픽만 되면 떠들썩하게 받드는 것이 불편하다. 그들의 바람은 평소에 인간으로서 다 함께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남과 조금 다른 몸을 가졌을 뿐 마음만은 누구보다 건강한 선수들의 투혼은 올림픽처럼 투혼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옳다. 그것이 패럴림픽이 올림픽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 이유이며, 그 시작은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이었다. 그 때부터 패럴림픽은 선진국, 성숙한 시민의식의 척도로 여겨졌다. 이번 동계 패럴림픽을 역대 대회 중 모범적으로 치러야 하는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배경이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막일을 잘 모른다고 대답하거나 날짜를 잘못 알고 있는 응답자가 66.4%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3명 중 2명은 패럴림픽 개막일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얘기다. 동계패럴림픽이 동계올림픽에 비해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억지 영웅을 만들 필요는 없다. 올림픽이 인종, 국가, 정치, 문화 및 이념을 초월한 세계 평화와 화합을 위한 축제라면, 패럴림픽은 인간의 평등을 확인하는 감동의 무대다. 그것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내건 ‘패럴림픽의 성공, 진정한 올림픽의 완성입니다'라는 슬로건과 부합할 것이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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