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동안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한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또 한 편의 ‘겨울 동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세계 장애인 선수들의 겨울 스포츠축제인 평창 동계패럴림픽이 9일 개막해 18일까지 열린다. 평창올림픽과 마찬가지로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이라는 슬로건 아래 49개국에서 선수 570명을 포함한 1,700여 명이 참가한다.
평창올림픽을 통해 도전과 극복의 과정을 지닌 스포츠가 전파하는 신비한 힘은 충분히 증명됐다. 패럴림픽이 갖는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두 다리를 잃고도, 앞이 보이지 않아도 설원을 질주하는 선수들에게서 신체의 장애가 인간의 한계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개막이 다가오자 대회 조직위원회는 언론에 각종 자료 제공을 통해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른바 ‘감동’의 소재가 될 ‘영웅’들의 스토리다.
이쯤에서 패럴림픽의 기본 정신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올림픽 메달은 표면이 사선으로 구성됐지만, 패럴림픽 메달은 패럴림픽 정신인 '평등'을 강조하기 위해 수평으로 구성돼 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영웅 대접이 아니라 편견의 배제다. 기욤 고베르 벨기에 패럴림픽위원회 마케팅&미디어 매니저는 6일 한국 언론을 대상으로 연 ‘장애인 인권 옹호 미디어 세미나‘에서 “패럴림픽 선수들을 언론에서 배트맨으로 영웅화시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패럴림픽 선수들을 올림픽보다 더 대단한 선수로 취급하지 말아달라”며 “언론인들은 장애인 선수들이 부진했다는 부분을 보도하기 부담스러워 하는데 그저 ‘원숭이도 나무 위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관점으로 경기가 부진했다고 보도하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조언했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영웅화’는 실제론 사회 활동 참여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평창올림픽 기간 중에 장애계 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개회식 방송 중 청각ㆍ시각장애인의 시청권을 보장하지 않은 지상파 방송 3사와 정부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했다. 수어통역과 화면해설 방송을 일부에서만 제공해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나 화면해설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개회식 중계방송을 제대로 시청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하면 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의 방송시청을 위해 자막, 수어통역 화면 해설 등을 제공해야 하며, 국가와 지자체는 ‘장애인복지법’ 제22조, ‘방송법’ 제69조, ‘한국수화언어법’ 제16조에 의해 방송사가 올림픽과 같은 국제적 행사를 중계할 때 장애인을 위해 자막, 수어통역, 화면해설 등을 제공하도록 요청해야 한다고 돼 있다.
패럴림픽은 ‘장애인 올림픽'이다. 누구나 이런저런 장애를 안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장애인들은 지나친 동정이나, 패럴림픽만 되면 떠들썩하게 받드는 것이 불편하다. 그들의 바람은 평소에 인간으로서 다 함께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남과 조금 다른 몸을 가졌을 뿐 마음만은 누구보다 건강한 선수들의 투혼은 올림픽처럼 투혼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옳다. 그것이 패럴림픽이 올림픽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 이유이며, 그 시작은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이었다. 그 때부터 패럴림픽은 선진국, 성숙한 시민의식의 척도로 여겨졌다. 이번 동계 패럴림픽을 역대 대회 중 모범적으로 치러야 하는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배경이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막일을 잘 모른다고 대답하거나 날짜를 잘못 알고 있는 응답자가 66.4%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3명 중 2명은 패럴림픽 개막일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얘기다. 동계패럴림픽이 동계올림픽에 비해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억지 영웅을 만들 필요는 없다. 올림픽이 인종, 국가, 정치, 문화 및 이념을 초월한 세계 평화와 화합을 위한 축제라면, 패럴림픽은 인간의 평등을 확인하는 감동의 무대다. 그것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내건 ‘패럴림픽의 성공, 진정한 올림픽의 완성입니다'라는 슬로건과 부합할 것이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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