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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는 금융혁명 중] <상> 은행 직원 5만명 중 2만여명 기술 엔지니어…"IT기업처럼 사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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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는 금융혁명 중] <상> 은행 직원 5만명 중 2만여명 기술 엔지니어…"IT기업처럼 사고하라"

입력
2018.03.07 03: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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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형 금융지주회사 캐피탈원

카드사서 인터넷중심은행 탈바꿈

모바일 이용자 편의성 높이려

UIㆍUX 디자이너 500명 채용

블록체인 등 IT서비스 강화 주력

점포 없애고 대신 카페로 변신

방문자들 커피 마시며 재무상담

“기존 은행, 더이상 경쟁자 아냐”

캐피탈원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사용자 경험(UI·U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영교씨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캐피탈원에서 회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허경주 기자
캐피탈원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사용자 경험(UI·U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영교씨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캐피탈원에서 회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허경주 기자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하워드가의 캐피탈원파이낸셜(캐피탈원) 샌프란시스코 지사. 5층의 넓은 회의실 한 편에 캐주얼 차림의 직원 세 명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화면을 한쪽 벽에 띄워둔 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선 후드 티 차림의 몇몇 직원들이 헤드폰을 쓴 채 소파에 파묻혀 노트북을 연신 두드렸다. 이곳이 정말 ‘금융회사’인 지 갸우뚱거려질 정도였다. 캐피탈원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3년째 사용자 인터페이스ㆍ사용자 경험(UI∙U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영교(30)씨는 “일반적인 은행에서 ‘디자이너’는 생소한 분야지만 캐피탈원에는 UI∙UX 디자이너만 500명이 있을 만큼 모바일 이용자 편의성을 끊임없이 고민한다”며 “기존 은행들은 더 이상 경쟁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전통적 금융의 틀 안에 갇혀서는 더 이상 고객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최고경영자(CEO)와 JP모건의 마리안 레이크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이미 “우리는 (은행이라기보단) 정보기술(IT)회사”라고 강조한 이유다. 미국 8위(자산 기준)의 대형 금융지주사인 캐피탈원도 예외는 아니다. 1990년대 중반 미국 동부를 거점으로 하는 신용카드 업체로 출발한 캐피탈원은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6,000여종의 맞춤형 카드를 출시하며 미국 5대 카드 회사로 성장했다. 이후 2011년 ING그룹의 인터넷전문은행 부문인 ING다이렉트를 인수하면서 은행업에 뛰어들었다. 캐피탈원의 창업자 리차드 페어뱅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예 ‘IT회사가 설립한 것 같은 금융사’를 만들기로 작심했다. 그는 “우리는 테크 회사처럼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도 자체적으로 양성하는 등 색깔 바꾸기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2011년 4분기 2,060억달러였던 총자산은 지난해 4분기 3,656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지사의 모습은 보수적인 ‘은행’이라기 보단 ‘IT기업’에 가깝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직원과 고객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3~8층 곳곳에 위치한 카페에선 언제든 빵과 음료를 갖다 먹을 수도 있다. 새 둥지나 인디언 텐트 등 다양한 모양의 소파도 배치돼 있어 자유롭게 회의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심지어 각종 주류가 놓여있는 바와 바텐더도 있어 가볍게 술을 마실 수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하워드가에 위치한 캐피탈원 샌프란시스코 지사 내에 있는 '이용자 테스트룸' 모습. 사전에 참가 의향을 밝힌 고객들은 창문 너머의 방안에서 모바일 앱을 이용하게 되며, 직원들은 카메라 등을 통해 이들의 사용 모습을 살펴보게 된다. 샌프란시스코=허경주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하워드가에 위치한 캐피탈원 샌프란시스코 지사 내에 있는 '이용자 테스트룸' 모습. 사전에 참가 의향을 밝힌 고객들은 창문 너머의 방안에서 모바일 앱을 이용하게 되며, 직원들은 카메라 등을 통해 이들의 사용 모습을 살펴보게 된다. 샌프란시스코=허경주 기자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앱 출시 전 사전 검사를 진행하는 ‘이용자 테스트룸’이다. 사전에 참가 의향을 밝힌 고객들은 6평 남짓한 방 안에서 캐피탈원이 제공한 휴대폰으로 앱을 사용하게 된다. 창문 너머 직원들은 방 안의 앱 이용자를 살펴볼 수 있지만 내부에선 밖을 볼 수 없다. 이들은 짧게는 1시간, 최대 4시간 동안 방 안에서 자유롭게 앱을 이용하고, 밖에서는 확대ㆍ축소가 가능한 4대의 카메라로 이들의 행동을 살핀다. 이를 통해 고객의 표정과 머뭇거리는 손놀림 등 말로 설명하지 힘든 사용 모습과 패턴을 분석한다. 김씨는 “한국의 UIㆍUX는 제품을 만들어낸 뒤 소비자의 반응을 살피지만 캐피탈원에서는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제품 개발 시작부터 끝까지 고객들과 함께해 시행착오를 크게 줄인다”고 설명했다.

IT 분야 강화에 나선 캐피탈원에선 전체 직원 5만명 가운데 기술 엔지니어가 약 2만 명에 달한다. 금융업을 하는 회사 직원 40%가 기술 분야 종사자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캐피탈원은 지난 2016년부터 빅데이터를 활용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고 아마존의 대화형 인터페이스 ‘렉스’를 통한 음성인식 뱅킹을 도입했다. 최근에는 머신러닝(컴퓨터 인공지능이 스스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학습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을 이용한 금융 서비스도 연구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포스트가에 위치한 '캐피탈원 카페' 창문 너머로 비친 카페 내부 모습. 카페 왼쪽에 '엠버서더'라고 불리는 상담데스크 직원들이 서 있다. 상담 데스크와 현금자동입출금기 등을 제외하면 이곳은 여느 카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샌프란시스코=허경주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포스트가에 위치한 '캐피탈원 카페' 창문 너머로 비친 카페 내부 모습. 카페 왼쪽에 '엠버서더'라고 불리는 상담데스크 직원들이 서 있다. 상담 데스크와 현금자동입출금기 등을 제외하면 이곳은 여느 카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샌프란시스코=허경주 기자

반면 점포 수는 줄이고 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 은행권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캐피탈원은 지난 2012~2017년 6년간 점포의 32%를 폐쇄했다. 대신 점포의 빈 자리를 커피 브랜드 ‘피츠 커피’와 손잡고 카페로 채웠다. 샌프란시스코 포스트가 101번지에 위치한 ‘캐피탈원 카페’는 여느 카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방문자들은 자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카페 한 켠에 놓인 캐피탈원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작은 상담용 데스크, ‘재무 상담 가능 시간’ 알림판 등이 이곳이 금융회사가 운영하는 카페라는 점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메건이란 이름표를 단 상담데스크 직원은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계좌와 신용카드 개설, 모바일앱 사용법 등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앰베서더’라고 불리는 이들은 고객들이 원할 경우 재무상담도 해준다. 캐피탈원 카페는 미국 10개주 26곳에 설치됐다. 이날 카페에서 만난 고객 제이슨은 “캐피탈원 카드로 결제하면 커피 값이 50% 할인되는 점도 이 카페를 방문하는 이유 중 하나”라며 “굳이 은행 점포를 방문할 이유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캐피탈원 같은) 모바일 은행이 혜택을 더 많이 제공한다면 대세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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