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을 진행 중인 우리 정부와 미국 측에 미묘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수입산 철강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유럽연합(EU), 중국 캐나다 등 주요국이 보복 관세를 추진하는 등, 미국의 무역전쟁 전선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한미 FTA 개정협상에 집중했던 미국 측은 협상 진의 전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고, 한국 측도 철강 문제가 FTA 개정협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로 양측 모두 협상 속도 변화 필요성에 동의한 것이다.
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8일 미 워싱턴DC에서 한미 FTA 제3차 개정협상을 벌이기로 미국과 잠정 합의했던 일정을 이달 중순 이후로 연기하기로 했다. 1차 협상(1월 5일, 워싱턴)과 2차 협상(1월 31~2월 1일, 서울)에 이어 3차 협상까지 3개월 연속 매달 회의를 개최하던 협상 속도를 늦추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구체적 성과를 얻어야 하는 미국 측과 FTA 개정협상을 조기 매듭지어 경제적 불확실성을 제거,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우리 정부의 이해가 일치해 협상을 신속히 진행해 왔다.
산업부 관계자는 “철강 이슈와 한미 FTA 개정은 별개의 사안이지만, 통상정책의 큰 틀 안에 결국 분리될 수 없는 문제”고 말했다. 한미 FTA 3차 개정협상이 당초 합의대로 개최될 경우 철강 고율관세 현안 때문에 우리 측이 수세에 몰릴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주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관세부과 방안에 대한 최종서명을 할 예정이어서, 우리 정부는 한국을 관세 예외국으로 지정해달라고 미 행정부와 정치권 등을 상대로 설득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8일 한미 FTA 개정협상이 진행될 경우 미국을 상대로 한 우리 정부의 협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미 FT A폐기를 주장하는 대표적 강경 보호무역주의자인 피터 나바로 미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조만간 미국의 무역전쟁을 최전선에서 지휘하는 대통령 무역정책 담당 보좌관으로 임명될 예정이다. 그런데 한미 3차 개정협상이 예정대로 열려 별 성과 없이 끝날 경우 나바로 차기 보좌관이 이를 빌미로 FTA를 폐기하겠다고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정부는 당분간 관망세를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의 철강 고율 관세부과에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사임 의사를 표명하는 등 백악관 경제 보좌진 사이에 심각한 내분이 벌어졌고 EU와 중국 캐나다 등도 보복 관세를 검토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가 전방위로 압박을 받고 있어, 강공 일변도였던 미국의 통상정책이 향후 변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없지 않다.
산업부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으로 미 공화당 내부에서도 중간선거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6일 워싱턴을 다시 방문해 철강 관세에 대한 대외접촉 활동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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