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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논골담길…굽이굽이 바다 품고 세월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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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논골담길…굽이굽이 바다 품고 세월을 품다

입력
2018.02.27 18:1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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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코앞에 내려다보이는 논골담길 한 카페 테라스에서 여행객이 셀카를 찍고 있다. 동해=최흥수기자
바다가 코앞에 내려다보이는 논골담길 한 카페 테라스에서 여행객이 셀카를 찍고 있다. 동해=최흥수기자

그곳에도 올림픽 분위기가 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환영과 항의가 교차하는 와중에 반짝 관심은 속절없이 사그라졌다. 동해 묵호항 얘기다. 논골마을은 북한 예술단을 실은 만경봉 92호가 정박했던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계단처럼 둥지를 틀었다. 1960~70년대 오징어와 석탄 풍년에 기대 한몫 잡아보려는 사람들이 무작정 모여들어 형성한 마을이다.

슈퍼맨의 비애, 원더우먼의 희망 담긴 마을

논골마을은 달동네치고도 경사가 가파른 편이다. 논은 꿈도 꿀 수 없고, 손바닥만한 텃밭 하나 가꾸기에도 땅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논골’이 된 건 순전히 오징어 때문이다. 마을 골목에는 유난히 장화 그림과 장식이 많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길이 질척거리기 때문이다. 바닷바람 좋은 언덕에는 자연스럽게 오징어를 널어 말리는 덕장이 생겼고, 오징어를 수북이 담은 바지게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토끼길 같이 좁은 골목이 마를 날이 없었던 것이다.

묵호항 북측 언덕에 계단식으로 자리 잡은 논골마을.
묵호항 북측 언덕에 계단식으로 자리 잡은 논골마을.
골목 담벼락마다 가난했지만 정이 넘쳤던 시절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골목 담벼락마다 가난했지만 정이 넘쳤던 시절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질척거리는 흙 길 골목에서 장화는 필수품.
질척거리는 흙 길 골목에서 장화는 필수품.
어머니는 몸집보다 큰 짐을 머리에 이고 나르는 원더우먼이었다.
어머니는 몸집보다 큰 짐을 머리에 이고 나르는 원더우먼이었다.
슈퍼맨의 비애. 바지게 한 가득 젖은 오징어를 담아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을 아버지.
슈퍼맨의 비애. 바지게 한 가득 젖은 오징어를 담아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을 아버지.

공간이 조금만 생겨도 바로 집이 들어섰기 때문에 앞집 지붕과 뒷집 마당은 높이가 같다. 모두들 고만고만한 형편에 어느 누구도 2층, 3층으로 올릴 수 없던 시절이라 조망권과 일조권을 두고 다툴 일도 없었다. 덕분에 어느 집이건 앞이 툭 트여 최고의 전망을 확보했다. 그 가난과 고달픔의 흔적이 ‘논골담길’이라는 관광명소로 거듭날 수 있는 바탕이었다.

논골담길 산책은 묵호항 수변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길을 건너면 나오는 ‘등대오름길’ 골목에서 시작한다. 초입의 낮은 기와집 담벼락 벽화가 이 마을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원더우먼 복장의 어머니가 ‘논골담길’의 애잔한 사연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몸집보다 큰 고무 대야에는 집어등을 밝힌 고기잡이 배, 호롱불에 책을 읽는 아이와 오징어 덕장이 담겼다. 원더우먼의 꿈과 희망인 셈이다. 물지게를 진 아버지 뒤를 연탄을 든 아이가 뒤따르고, 그 골목으로 원더다방ㆍ대영라사ㆍ제일선구점(배에서 쓰는 기구를 파는 가게)ㆍ묵호이용소ㆍ만복상회ㆍ논골주막이 이어진다. 이렇게 시작되는 논골 담벼락 그림은 골목 곳곳에서 마을의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골목 곳곳을 장식한 아버지에 관한 글귀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골목 곳곳을 장식한 아버지에 관한 글귀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어머니의 희망이 담긴 광주리.
어머니의 희망이 담긴 광주리.

벽화뿐만 아니라 군데군데서 마주하는 글귀와 시에도 가슴 따스한 감성이 물씬 풍긴다. 등대오름길에는 특히 누구에게도 나약함을 드러내지 못하는 아버지를 위한 글귀가 많다. ‘만선의 기쁨도, 거센 파도의 공포도 딱, 소주 한잔만큼만 가지려 했던 어릴 적 바다를 향한 아버지의 그리움(아버지의 뜰)’이라는 대목에서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지만 소박한 일상을 누리기도 버거웠던 가장의 무게가 느껴진다. 슈퍼맨의 비애다. 묵호항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언덕 꼭대기, 깔끔하게 현대식으로 지은 카페 앞에는 ‘논골 만복이네 식구들’ 동상이 서 있다. 초승달 아래서 아이 업은 아낙네와 강아지(만복이)가 푸른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만선과 함께 가장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동상이다. 바람 부는 언덕에 그렇게 또 간절한 바람이 인다.

나폴리 혹은 나포리, 그리고 희망등대

논골담길 꼭대기에는 지형적 특색을 살린 찻집이 여럿 있다. 언덕 끝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논골상회’ 카페 뒤편에는 보라색으로 외벽을 장식한 ‘나포리 다방’이 숨어 있다.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나폴리에서 따온 이름일 게 분명한 이 다방은 묵호항 부근 시장 통에서 제법 유명한 찻집이었는데, 오랜 시간 사라졌다가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감성 카페로 다시 문을 열었다. 동해가 고향이자 시인인 김진자씨의 글에서 그 옛날 나포리 다방의 모습이 슬쩍 엿보인다. ‘묵호 역전 굴다리를 지나면서부터 봉사 아저씨가 애타게 찾던 나포리 다방은 간판을 내린 지 몇십년’으로 시작하는 시에는 당시 묵호와 묵호 사람들의 풍경이 정겹게 녹아 있다. ‘오봉 들고 빼딱구두 신은 이 양’ ‘비로도 한복 치마와 올림머리로 단장한 마담’ ‘비린내 나는 돈을 식탁에 올려놓던 김씨’ 등도 다방과 함께 사라진 풍경이다. ‘이까가 개락으로 나던(오징어가 풍성하게 나던)’ 묵호항과 동해바다도 흑백사진의 한 컷처럼 옛말이 되어 버렸듯이.

묵호항 인근에서 논골 언덕배기로 옮겨 감성 카페로 변신한 ‘나포리 다방’.
묵호항 인근에서 논골 언덕배기로 옮겨 감성 카페로 변신한 ‘나포리 다방’.
산과 바다와 하늘과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등대그집’ 카페.
산과 바다와 하늘과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등대그집’ 카페.
주인장의 등대 사랑이 곳곳에 배어 있다.
주인장의 등대 사랑이 곳곳에 배어 있다.

묵호등대 바로 아래 ‘등대카페’는 단층으로 집집마다 조망권을 확보한 논골의 마을 구조를 훼손하지 않고도 새 건물 못지 않게 현대적인 분위기를 살렸다. 기존 계단식 주택의 지붕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철골 구조물을 얹어 테라스를 설치해 어디서나 시원하게 바다를 내려다보며 차를 마실 수 있다. 파스텔 색상으로 단장한 의자와 탁자, 모서리 장식까지 바다를 닮았다.

인근의 ‘등대그집’ 카페는 논골의 따스함을 유지하려는 가게다. “하늘과 산, 바다와 마을이 모두 눈높이에 있다는 것이 이 마을의 가장 큰 매력이죠. 일 마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에 허브차 한잔 마실 때의 느낌이 참 좋아요.” 드라이플라워로 화사하게 장식한 카페 주인장 김정순씨의 논골 예찬이다. 30여년 전 마주한 동해바다(나중에 확인해 보니 삼척 후진항이었다) 일출이 늘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다는 김씨는 11년 전 직장 생활을 접고 서울에서 동해로 이주했고, 묵호 등대에 반해 이곳에 카페를 열게 됐다고 밝혔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에게도 등대는 희망의 상징이다. 그래서 밋밋한 묵호등대(나선형 계단으로 전망 창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빼면 특별할 게 없다)를 대신해 마당에 빨간 등대를 만들었고, 옆에는 그만의 감성 거리 이정표를 세웠다. 꿈 0km, 행복 1cm, 희망 7.7777cm 식으로 단위도 제각각인데, 인내까지 거리가 1,004km인 걸 보면 역시 참는 것이 가장 힘든 모양이다. 아랫집 지붕이 풍경이 되고, 옆집 벽이 담장이 되는 정겨운 감성을 오래도록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지만, 논골에도 전망 좋은 통유리로 나 홀로 도드라지는 현대적 카페가 이미 여럿 들어서 있다.

바다 전망이 시원한 등대 카페.
바다 전망이 시원한 등대 카페.
등대 카페의 테라스 장식. 나폴리 혹은 나포리(羅浦里) 스타일이다.
등대 카페의 테라스 장식. 나폴리 혹은 나포리(羅浦里) 스타일이다.

논골마을에서 내려오는 길에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찍었다는 작은 출렁다리를 건너면 도로변에 마을의 수호신과도 같은 ‘문어상’이 눈에 띈다. 마을을 약탈하고 떠나는 침입자에 끌려가던 호장(戶長)이 문어로 변해 약탈자의 배를 침몰시켰다는 전설을 기리는 작품이다. 바로 옆에는 묵호(墨湖)라는 지명의 기원이 된 ‘까막바위’가 바다 위에 우뚝 솟아 있다. 물도 검고 새도 검고 바위도 검어 오이진(烏耳津) 또는 ‘새나루터’라 부르다 묵호로 변했단다. 그 검푸른 바다에도 봄 햇살이 출렁이면 수면은 그대로 비단이 된다. 집어등이 수평선을 환하게 밝히던 밤바다도 그에 못지 않았으리라. 어쩌면 나포리 다방의 옛 주인은 머나먼 나라의 나폴리(Napoli)가 아니라 비단 물결 춤추는 나포리(羅浦里)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망망대해 망상, 오붓하게 산책하기에는 추암

동해시는 강원도의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비하면 아주 작은 도시다. 면적이 가장 넓은 홍천군의 10분의 1 수준이다. 동해는 1980년 명주군(강릉시로 통합) 묵호읍과 삼척시 북평읍을 합쳐서 만들었다. 시의 남측이 북평인 이유도 삼척을 기준으로 보면 북쪽에 위치한 넓은 들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같은 동해에서도 지금까지 묵호와 북평, 두 지역 간에 정서상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드넓은 모래사장 뒤로 펼쳐지는 끝없는 바다, 동해시 최북단 망상해변.
드넓은 모래사장 뒤로 펼쳐지는 끝없는 바다, 동해시 최북단 망상해변.
망상해변은 동해고속도로 하행선 동해휴게소에서도 내려다보인다.
망상해변은 동해고속도로 하행선 동해휴게소에서도 내려다보인다.

좁은 대신 이동거리가 짧다는 건 이점이다. 최북단의 망상해변과 최남단의 추암해변까지 훑어도 대략 20km에 지나지 않는다. 망상해변은 동해안을 통틀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명소다. 폭 100m가 넘는 넓은 백사장이 1.4㎞가량 일직선으로 펼쳐져 있어 매년 600만명 이상이 찾는다. 요즘 같은 철에는 봄 기운 묻어나는 에메랄드 물빛과 바닷바람, 망망대해의 한적함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해변 바로 뒤에 오토캠핑장이 조성돼 있고, 지난해 10월에는 송림과 어우러진 한옥촌을 개관해 숙박시설을 풍부하게 갖췄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에 비해 추암해변은 작지만 아기자기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 일단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등장하는 촛대바위는 대표적인 해돋이 명소다. 뾰족한 바위 끝에 해가 걸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새해마다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촛대바위는 부러질 듯 가느다랗게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의외로 웅장하다. 바닥이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고 시린 바다에서 우뚝 솟은 모습이 더욱 늠름하다.

추암해변 촛대바위. 주변의 에메랄드 바다에 이미 봄 빛이 가득하다.
추암해변 촛대바위. 주변의 에메랄드 바다에 이미 봄 빛이 가득하다.
촛대바위 옆 바위 군락, 능파대.
촛대바위 옆 바위 군락, 능파대.
추암해변 북측 산책로에서 본 능파대와 해암정.
추암해변 북측 산책로에서 본 능파대와 해암정.
추암해변 남측 산책로에서 본 촛대바위.
추암해변 남측 산책로에서 본 촛대바위.

촛대바위의 명성에 가려졌지만 그 왼편은 온갖 형상의 기암괴석이 몰려 있는 작은 석림(石林)이다. 조선 세조 때 문인 한명회가 이곳의 경관에 감탄해 미인의 아름다운 걸음걸이에 빗대 능파대(凌波臺)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는데, 실제로는 날카롭고 남성다운 힘이 넘치는 바위 군락이다. 오랜 세월 바닷물에 닳은 바위 결도 탄탄한 근육에 핏줄이 불끈 솟은 듯 힘이 넘친다.

능파대 초입에는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집현전 제학이었던 삼척심씨 시조 심동로가 관직에서 물러나 세웠다는 해암정(海巖亭)이 위치하고 있다. 뒤로는 바위산, 양 옆으로 소나무가 호위하고 있어 내부에서 바라보는 풍경보다 정자 자체가 운치 있다. 정자에서 북측 언덕으로 난 솔숲 산책로를 오르면 발 아래로 펼쳐지는 푸른 바다가 시원하다. 해변으로 되돌아오는 길, 바다열차가 다니는 추암역까지는 조각공원을 조성해 오붓하게 걷기에 그만이다.

추암해변 아래쪽 삼척과 연결되는 산책로에서 보는 풍경은 능파대의 남성적인 모습과 완전히 딴판이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해변은 한없이 부드럽고, 낮은 언덕과 촛대바위가 드넓은 바다 품에 포근히 안겨 있다. 남측 산책로는 삼척 증산해변과 연결되고, 바로 위는 우산국을 정벌한 신라 장군의 이름을 딴 ‘이사부 사자공원’이다.

추암해변에도 현대적 시설을 갖춘 식당과 횟집이 있지만, 인근 북평시장(場)으로 이동하면 선택의 폭이 한결 넓어진다. 끝자리 3ㆍ8일 열리는 북평오일장과 여행 기간이 겹치면 더더욱 가볼 만하다. 북평이 삼척의 뒤뜰이어서 지역 주민들은 ‘뒤뜨르장’이라고도 부른다. 여느 오일장이 명맥만 유지하는데 비해 북평장은 주민들이 ‘삼팔백화점’이라 부를 정도로 나날이 번창하는 영동 지역 최대 오일장이다. 기존 시장 골목 외에 왕복 4차선 도로의 바깥 2개 차로를 아예 난전으로 내놓았다.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북적대는 생동감은 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다. 즉석에서 만든 어묵과 찹쌀 도넛에, 가마솥에서 지글지글 튀기는 통닭 등 주전부리가 넘쳐나고, 한 소쿠리씩 썰어 담아 파는 싱싱한 회도 입맛을 당긴다. 무엇보다 장터에서는 국밥이 제격, 40년 넘은 ‘두꺼비 국밥집’을 비롯해 입구에 커다란 무쇠 솥을 걸어놓고 선짓국과 소머리국밥을 파는 5곳의 식당은 동해 주민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

동해=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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