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의 대표작 ‘제5 도살장’의 배경이 된 ‘드레스덴 폭격’은 1945년 2월13일 밤 10시 무렵부터 시작돼 사흘 동안 이어졌다. 영국 공군(RAF)과 미 육군항공대(USAAF) 소속 전략폭격기 1,250여 대는 약 3,900톤의 고폭탄 및 소이탄으로 독일 드레스덴 도심 40㎢를 초토화하며, 철도와 도로ㆍ통신시설을 무력화했다. 사망자만 2만2,000~2만 5,000명, 대부분 민간인이었다.
2차 세계대전 동부전선 소련 붉은 군대의 진격을 지원하고 독일군 부대이동을 지연시키기 위한 작전이었다. 당시 처칠은 소련이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을 괴멸시킬 경우 유럽 전쟁은 그 해 4월 중순이면 끝날 수 있고, 소련의 진군이 여의치 않으면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라 판단했다. 드레스덴 폭격은 서부전선 독일군의 동부 이동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최소 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독일 공군의 런던 대공습에 대한 보복 심리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드레스덴은 당시까지 폭격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독일 7대 도시이자 항공부품과 방공 야포 등을 생산하는 군수산업지대 중 한 곳이었다.
가장 강력한 공격이 시작된 2월 14일 오전, 미 육군항공대 전략폭격기 ‘B-17’ 40여 대가 작전지역이 아닌 체코 수도 프라하를 폭격했다. 드레스덴에서 남동쪽으로 120km 가량 떨어진 프라하는 39년 독일에 점령된 적성지역이긴 하나 이렇다 할 군사시설도 이동 거점도 아니었다. 그날 쏟아진 152톤의 폭탄에 프라하 시민 701명이 숨졌고 14세기 엠마우스 수도원과 파우스트하우스 등 도심 유적 대부분이 파괴됐지만, 몇 안 되던 군수공장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프라하 폭격은 미 육군항공대 레이더 항법장비 오류로 인한 오폭이라는 게 정설이다. 당일 일기가 좋지 않았던 데다, 공중에서 보이는 도시 풍경 즉 엘베 강의 드레스덴과 블타바(몰도바)강의 프라하가 무척 흡사하다고 한다.
프라하 폭격은 대전 중 나치가 연합군의 ‘만행’을 홍보하는 선전용으로, 전후 냉전기에는 소련과 동구의 반미 선전용으로 이용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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