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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꼬이기만 하던 탱고 스텝... 2개월 되니 걷고~ 돌고~

입력
2018.02.14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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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 8년 차인 지난해 말, 중학교 1학년 수련회 이후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20년 가까이 묻어놨던 내 안의 끼를 되살리기로 마음 먹었다. 취미는 즐거워야 하는데 내가 여태 했던 등산, 독서, 수영 따위는 나름의 성취감은 있어도 미치도록 좋진 않았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탱고를 선택했다. 고급스러운 내 이미지와 꽤 어울릴 거 같다는 생각에서였다,라고 하면 악플이 달릴 게 뻔하니, 영화 ‘여인의 향기’의 알 파치노나 ‘이지 버츄’에 나온 콜린 퍼스가 미모의 여성을 상대로 선보인 탱고 장면에 끌렸기 때문이란 정도로 해두자.(콜린 퍼스가 탱고로 유혹한 여성은 본인 며느리이긴 하지만… 그의 탱고가 멋진 건 사실이다) 동기야 어찌됐든 이달로 탱고 5개월차를 맞았다. 탱고가 좋아 보이는데 몸치라 걱정인가.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20년 만에 가능성을 발견한 나도 있다. 시련의 시기만 잘 넘기면 신세계가 열린다.

탱고 입문 5개월차에 접어든 본보 김동욱 기자가 탱고를 추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탱고 입문 5개월차에 접어든 본보 김동욱 기자가 탱고를 추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처음엔 초조함만

지난해 10월 부푼 기대를 안고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의 탱고 강습소를 향했다. 새로운 걸 배운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마음 한편에선 불안함, 초조함이 더 컸다. 강습소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감정은 더 부풀어 올랐다. ‘괜한 취미 타령에 너무 무리한 도전을 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처음엔 강습소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도 나로선 큰 도전이었다. 다행히 같이 탱고를 배우는 동료들은 날 반갑게 맞아줬다. 탱고를 배우는 사람들은 나름의 동료애가 있다. 인사를 할 때도 스페인식 인사인 베소(beso)를 한다. 가볍게 포옹하며 입으로 소리를 내는 방식이다. 처음엔 어색해도 나중엔 상대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기분이 들어 오히려 편하고 좋다.

탱고 수업 첫 시간. 앙헬 선생님(한국분이다, 강습소에서는 모두 예명을 쓴다)의 설명은 아주 쉬웠다. “탱고는 똑바로 서고, 걷는 게 기본이에요. 여기서 서로 같이 걸으면 탱고가 되죠. 아주 쉽죠?” 속으로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라며 여유를 부렸는데 5분 만에 다시 겸손해졌다.

걷는 게 뭐가 어렵냐고 묻는 이들이 많을 텐데, 진짜 어렵다. 탱고를 오래 배운 이들도 수업 전후 전신거울 앞에서 걷기 연습을 수없이 반복한다. 척추를 똑바로 세워 가슴과 등을 곧게 편다. 그러고 나선 몸에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걸으면 되는데, 초심자는 걸음걸이가 무너져 옆으로 기울어지기 일쑤다. 특히 뒤로 걸을 때 균형을 많이 잃는다. 평소 앉아있는 시간이 긴 사람들일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굳이 걸음을 배워야 하나. “탱고는 남녀 한 쌍이 서로 같이 걸으며 추는 춤이다. 내 걸음이 무너지면 상대방 탱고도 망치게 된다.” 앙헬 선생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걷기만큼 중요한 탱고의 또다른 큰 축은 아브라소(Abrazo)다. 남자의 한 손이 여성의 등을 감싸고 다른 손은 상대의 손을 잡은 채 가슴을 맞닿는 자세다. 보통 탱고를 ‘하나의 가슴과 네 개의 다리’로 표현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나로선 처음에 가장 어색했던 게 바로 이 아브라소였다. 평소 경험할 일 없는 타인과의 신체 접촉에 긴장했고, 상대의 등 뒤에서 일정 높이를 유지해야 하는 손은 힘이 풀려 자꾸 내려가는 실수를 저질렀다. 남성 초보자에겐 탱고가 어려울 수밖에 없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브라소의 매력은 커진다. 서로 따뜻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 춤을 추는 상대를 더 배려하는 마음이 생긴다.

즉흥춤의 매력에 빠지다

탱고는 기본적으로 자유춤이다. 약속된 안무가 아니다. 기본 스텝만 익히면 이를 응용해 다양한 탱고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자음 모음을 익히면 이를 조합해 단어도 만들고 문장도 구사하는 원리와 같다. 가장 처음에 배우는 스텝은 살리다(Salida) 스텝이다. 스페인어로 ‘시작, 출발’이란 뜻이다. 참고로 탱고는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탱고 용어는 아르헨티나에서 쓰는 스페인어로 돼 있다. 단계가 거듭될수록 살리다 스텝을 기본으로 다양한 스텝이 추가된다. 이들 스텝만 익히면 얼마든지 탱고를 즐길 수 있다. 내가 탱고에 재미를 붙인 것도 바로 이때부터로, 대략 탱고 2개월차다. 탱고는 댄스 플로어를 큰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돈다. 다른 커플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모두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첫 달엔 처음 외운 스텝을 그대로 따라 하기에 급급했지만 2개월차부턴 탱고 스텝을 밟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진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탱고 음악에 맞춰 생각하는 대로 스텝을 옮긴 날엔 스스로 즉흥춤을 췄다는 만족감이 대단했다. 이 시점부터 여러 변화가 찾아왔다. 더는 전신거울 앞에서 탱고 연습을 하는 내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처음엔 꺼렸던 강습 외 연습시간(쁘락티카)도 평일에 시간을 내 참여할 만큼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연습시간에 만난 여성분과 탱고를 연습할 땐 ‘감사합니다’를 연신 반복했다. 실력이 부족한 나와 연습상대를 해주는 것 자체가 고마웠기 때문이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엔 머리 속으로 살리다 스텝을 떠올리는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했다. 몸치인 나도 노력하면 춤을 출 수 있구나!

[저작권 한국일보] 탱고 배우는 사람들. 서울 마포. 신상순 선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탱고 배우는 사람들. 서울 마포. 신상순 선임기자

‘신세계’ 밀롱가에 진출하다

탱고를 배우는 이유는 제각각일 테지만, 누구든 탱고의 더 큰 즐거움을 느끼려면 밀롱가(탱고 추는 장소)에 가야 한다. 탱고가 퍼진 어느 나라에 가든 밀롱가가 있다. 여행한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그 나라 밀롱가를 가보는 것도 방법인데, 스튜디오(강습소)를 찾는 많은 이들 중에선 외국 밀롱가에 가려고 탱고를 배우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초보자, 그 중에서도 리드 역할을 해야 하는 땅게로(Tangueroㆍ탱고 추는 남자)에게 밀롱가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섣불리 여자에게 춤을 신청하기 쉽지 않아서다.

탱고 4개월차에 밀롱가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서울 마포구 상수역 인근에 있는 화려한 장소였다. 하지만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탓에 말없이 와인만 몇 잔을 들이켰다. 남자들은 춤추고 싶은 상대가 있으면 눈빛을 보내 의사를 물어본다. 카베세오다. 여성이 승낙하면 그때 춤을 춘다. 결국 카베세오를 하진 못했지만 같이 강습을 듣는 여자 동료의 배려로 처음으로 밀롱가 플로어에 나갈 기회를 얻었다. 기껏 외운 것도 까먹어 여러 번 스텝이 꼬이긴 했지만 아름다운 탱고 음악에 맞춰 플로어를 따라 빙글빙글 도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여러 사람의 탱고를 감상하는 것도 밀롱가의 큰 즐거움이다. 아르헨티나 탱고의 원로 가비또가 “탱고는 플로어에서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 말에 공감이 갔다. 처음 경험한 밀롱가는 신세계였다. 드디어 진정한 취미가 생겼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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