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자산가 1375명 세무조사
빌려 준 돈으로 위장, 서류 조작
“전문가 도움 받으며 갈수록 정교”
# 공직자인 60대 남성 A씨는 식당을 운영하는 아들이 상가를 살 수 있도록 수억원의 돈을 증여세도 내지 않고 몰래 줬다. 국세청의 확인 결과, A씨 아들은 아버지에게 받은 수억원에 더해 사업소득 매출 누락으로 만든 돈을 합해 상가건물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50대 남성 변호사 B씨는 20대 딸이 서울 송파구 아파트를 매입할 자금을 챙겨 줬다. 이와 별도로 그는 딸이 강남구의 고가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도록 전세자금을 증여세 신고 없이 지원했다. 수천만원의 공인중개사 비용 등도 아내를 통해 딸에게 건네 대납하도록 했다.
고위공무원, 기업가, 고소득 전문직, 대기업 임원 등이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고 자녀에게 거액의 돈을 불법ㆍ편법으로 증여했다 과세당국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사업체를 이용해 회사 이윤을 빼돌리거나 증여를 하고도 빌려준 돈으로 위장하는 등 당국의 눈을 속이기 위한 갖가지 탈세 수법이 총동원됐다.
국세청은 지난해 8월 이후 4차례에 걸쳐 실시한 기획 세무조사에서 적발된 주요 탈루 사례를 12일 공개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 기간 1,375명에 대한 기획조사에서 성실납세에 사회적 책임이 큰 자산가들의 탈세사례가 다수 적발됐다”고 밝혔다.
고소득자와 자산가들의 불법 증여는 주로 강남ㆍ서초ㆍ송파구 등 강남권 부동산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60대 대기업 임원은 근로소득자인 아들 2명이 서초구 아파트를 살 수 있도록 취득자금을 건넸다. 이들은 임원의 동생(아들의 숙부)이 빌려준 것으로 서류를 꾸몄지만, 국세청의 추적 결과 임원이 직접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적발됐다.
지방의 한 운수업체 대표는 아들에게 수십억원을 증여하면서 실제로는 증여액을 대폭 줄여 신고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탈루했다. 아버지 회사 계열사에서 경영수업을 받던 그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받은 돈으로 강남구 고가 아파트를 사들일 수 있었다. 60대 병원장 역시 의사 아들에게 강남구 고급빌라 전세보증금 수십억원을 증여하면서 증여세 신고를 누락했다.
공직자도 세금을 내지 않고 자녀에게 부를 증여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한 전직 여성 교육공무원은 소득이 없는 아들이 아파트를 살 수 있도록 대출금을 대신 갚아줬다. 아들은 아파트를 구입한 후 수억원의 단기 매매차익을 실현하고, 그 돈으로 곧바로 인근의 재건축 아파트를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산가들이 국세청 눈을 피해 자녀들에게 불법으로 금수저를 건네는 과정에는 갖가지 ‘첨단 기법’도 동원됐다. 50대 남성 은행지점장은 자기 명의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아 아들이 상가 건물을 취득할 수 있도록 자금을 마련해 줬다. 나중에 그의 아들은 일정한 소득도 자산도 없는 ‘무자력자’였음이 국세청 조사 결과 드러났고, 이들은 부동산 담보대출금과 현금 증여액에 대해 수억원의 증여세를 추징당했다. 60대 대기업 임원은 두 딸과 공동 명의로 상가건물을 사들인 후 딸들에게 지분비율 이상으로 임대수입을 과다 지급하다 덜미를 잡혔다. 세무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40대 남성은 부모 등에게서 받은 현금을 이용해 땅을 사들였다 적발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전문가 도움을 받은 변칙증여 행위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며 “가격 급등 지역의 고가 아파트 거래에 대해 탈세 여부를 전수 분석, 탈루 혐의가 발견되면 예외 없이 세무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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