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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몸 풀기 운동부터 숨이 헉헉... 그래도 멋진 백핸드 성공 '짜릿'

입력
2018.02.07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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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열풍에 10년 만에 잡은 테니스 라켓

백핸드 스윙 몇 번에 어깨가 뻐근

감독은 시선 피하며 칭찬 추임새만

한겨울에 반팔ㆍ반바지 선수도 보여

정현 선수의 호주 오픈 4강 진출 소식에 한국이 들썩였다. 경기 고양시 서삼릉길 농협대 테니스장에서 김동현 NH농협은행 감독의 지도 아래 조태성 기자가 백핸드에 도전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정현 선수의 호주 오픈 4강 진출 소식에 한국이 들썩였다. 경기 고양시 서삼릉길 농협대 테니스장에서 김동현 NH농협은행 감독의 지도 아래 조태성 기자가 백핸드에 도전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정현 선수에겐 미안하지만, 호주 오픈 중계방송에서 내 시선을 빼앗은 건 역시 로저 페더러였다. 왼손잡이 라파엘 나달이, 짐승처럼 두꺼운 팔뚝을 휘두르며 페더러의 백핸드쪽으로 집요하게 공을 보내며 그 얼마나 괴롭혔던가(나달 팬들께도 미안합니다!). 반복되는 집중 공격이 짜증스러울 법도 한데, 우리 착한 페더러는 때론 스트로크로, 때론 슬라이스(역회전 걸어 느리게 날아가는 공)로 받아넘기면서 오히려 거칠게 달려드는 상대 공격의 호흡과 리듬을 빼앗은 뒤 정교한 위닝 샷으로 랠리를 끝냈다.

우아한 페더러. 힘도 별로 들지 않은 듯 우아하게 춤추며 공을 넘기는 그는, 한 때 나의 우상이었다. 그래, 거칠게 몸싸움해가며 투닥거리는 축구, 농구 같은 거야 어릴 때 하는 운동이지. 나이 들면 몸싸움 없고 신사적인 테니스를 해야지. 그렇게 몇몇 선후배들과 한동안 테니스를 쳤다. 그때 우리의 로망은 하얀 테니스 치마가 잘 어울리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옛 추억 꺼냈다 덜미 잡혔다. 부장 지시가 떨어졌다. 정현의 호주 오픈 4강 진출을 두고 테니스에 대한 관심이 높으니 직접 한번 해보라. 쫄쫄이 입고 몸소 ‘발레’ 시범을 보인 부장(2017년 11월 1일자 15면 기사 참조)의 지시니 해야 했다. 그까짓 거 뭐, 하고 돌아섰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벌써 10년도 넘은 옛 일이다. 그 뒤 테니스와 무관한 여자와 결혼했고 아이가 태어났고 뱃살이 늘었고 엉덩이는 퍼졌고 오른쪽 쇄골이 한번 부러졌으며 무릎은 좀 뛰었다 싶으면 덜거덕거리게 됐다. 어쩐지. 오랜만에 TV로 만난 우상, 페더러 얼굴이 깨나 늙어 보인다 싶었다.

그래서 고2 때 17살 나이로 국가대표에 뽑혀 최연소 테니스 국대 선발 기록을 보유했던 NH농협은행 김동현 감독에게 SOS를 쳤다. 추억의 페더러식 한 손 백핸드 도전을 위해. 김 감독도 선수 시절 요즘은 드물어졌다는 한 손 백핸드를 구사했었다.

Cho on Fire, Too!

장비부터 챙겼다. 고질적 ‘장비병’ 덕에 옛날 제법 사들였다 싶었는데 남은 건 라켓 2개뿐. 라켓 머리 부분이 넓고 무거운 것, 반대로 머리 부분 면적이 작고 가벼운 것 1개씩이었다. 머리 부분이 넓고 무거우면 줄의 탄성과 스윙 때 원심력을 이용할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힘이 덜 든다. 여성, 초보, 베이스라이너들이 많이 쓴다. 반대로 머리쪽 면적이 작고 가벼운 라켓은 손목과 어깨 등을 이용해 공을 정확히 맞춰 컨트롤하는 데 중점을 둔다. 남성, 초보 이상, 발리 플레이어들이 선호한다.

라켓의 줄도 일반적인 줄에서부터 스윙 때 공에 회전을 더 걸어주기 위해 두세 번 꼬아 만든 부분을 포함시킨 줄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테니스 전문 매장을 찾아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춰 줄의 텐션까지 함께 맞춰서 매면 된다.

테니스 라켓은 크기, 형태, 무게 등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자신과 맞는 것을 고르면 된다. 류효진 기자.
테니스 라켓은 크기, 형태, 무게 등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자신과 맞는 것을 고르면 된다. 류효진 기자.

테니스화도 구해야 했다. 테니스는 라켓으로 공을 치는 것에 앞서 일단 공을 좇아가 자세를 잡은 뒤 스윙하는 게 먼저다. 이 움직임의 부담이 모두 발바닥에 모인다. 정현 선수 하체가 괜히 두꺼운 게 아니다. 발바닥이 괜히 벗겨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테니스화는 컵솔(평평한 밑창으로 신발 밑바닥을 완전히 감싸는 형태)을 써서 접지력을 극대화한다.

테니스화 찾기는 의외로 쉽지 않다. 근처 가게를 몇 곳이나 들렀으나 “요즘은 걷기 뛰기 유행 때문에 스니커즈 아니면 러닝화가 대부분”이라는 대답이 많았다. 손목밴드, 일명 ‘아데’를 갖춰둔 가게도 찾을 수 없었다. 한 가게에 있었는데 그나마도 “찾는 손님이 없어 창고에 넣어뒀다”는 대답이다. 아데는 사실 관절 보호보다 땀이 라켓에 흘러 드는 걸 막는 등의 용도로 쓰인다. 테니스화는 몇 곳을 돌아 한 켤레 구했다. 손목밴드는 포기했다. 겨울이니 땀 걱정은 없지만, 사진촬영 때 테니스 느낌을 내보려 했던 것뿐이니까. 자, 이제 불타오를 시간이다.

마누라, 보고 있나

경기 고양시 서삼릉길 농협대 내 테니스 코트. NH농협은행 선수들이 오전부터 몸을 풀고 있었다. 이 추운 날에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선수도 있다. “이제 곧 시즌 시작이니까 오늘부터 할 수 있으면 한번 그렇게 해보라 했어요.” 김 감독의 말이다. 테니스 선수들은 한 해 대략 20여개 대회를 소화해낸다. 2월 초중순쯤 시작해서 10월말쯤 끝나는 일정이다. 한 시즌을 치러낸다는 건 전국을 떠도는 고단한 일정이다.

간단히 몸을 풀었다. 발목, 무릎, 허리를 많이 쓰는 운동이니 준비운동은 그 부위에 대한 집중공략이었다. 테니스는 의외로 격렬한 운동이어서 프로 선수들도 경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라 했다. 몇 번 했더니 숨이 헉헉 차오른다. 김 감독은 슬슬 횟수를 줄이기 시작한다. 표정이 안 좋다. “이러다 정작 테니스 못 치시겠어요.”

테니스 연습 전 본격 몸풀기. 발목, 무릎, 허리를 집중적으로 풀어준다. 선수들도 거르지 않는다. 단 몇 분만 해도 몸이 진짜 확 풀려버린다. 류효진 기자
테니스 연습 전 본격 몸풀기. 발목, 무릎, 허리를 집중적으로 풀어준다. 선수들도 거르지 않는다. 단 몇 분만 해도 몸이 진짜 확 풀려버린다. 류효진 기자

백핸드 연습에 들어갔다. 라켓을 쥐는 법, 스윙하는 법, 다리와 몸통이 스윙을 따라가는 법 등 자세 전반을 잡았다. 스윙 몇 번에 벌써 어깨가 뻐근해진다. 포인트는 스윙이 수직보다는 수평에 가까워야 하고, 스윙 마지막에 손목이 바깥쪽을 향해 완전히 열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공이 쭉 뻗어나가다 라인 안으로 말려서 떨어진다. 그 느낌을 잡아내려 연습을 반복했다.

요즘 백핸드 대세는 정현처럼 두 손으로 라켓을 잡는 투핸드다. 테니스 좀 한다는 선수 중에 원핸드로 치는 선수는 페더러 외에 거의 없다. 투핸드는 두 손으로 라켓을 받치니까 힘과 안정성 면에서 좋다. 하지만 두 손으로 잡으니 움직임에 제약이 많다. 반면 한 손으로 잡고 치는 원핸드는 손목 움직임과 팔 뻗는 길이 조절이 자유롭다. 페더러가 나달의 공세를 막아낸 건 원핸드의 장점을 극대화한 것이다. 김 감독은 “현대 테니스가 힘에 기반한 파워 테니스가 되면서, 선수들은 화려한 테크닉보다 일단 안정적으로 받아넘기는 데 유리한 투핸드를 택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원핸드 백핸드는, 페더러니까 하는 거다. 정현의 투핸드 백핸드는? “완성도 면에서 페더러에 견줄 수 있는 높은 수준”이라 했다.

김동현(왼쪽) 감독과 본격 연습이다. 스윙은 수평에 가깝게, 스윙 뒤엔 가슴을 확 펴주며 손목을 완전히 바깥으로 열어야 한다. 류효진 기자
김동현(왼쪽) 감독과 본격 연습이다. 스윙은 수평에 가깝게, 스윙 뒤엔 가슴을 확 펴주며 손목을 완전히 바깥으로 열어야 한다. 류효진 기자

몇 번 연습 끝에 네트를 사이에 두고 실제 쳐보기 시작했다. 공이 라켓에 닿는 순간, 공이 라켓 줄 안으로 감겨 들었다 다시 튕겨져 나가는 감각이 팔에 전해진다. 낚시의 손맛에 비유할 만하다. 제대로 맞았다 싶었을 땐 공이 뻗어나가는 게 예사롭지 않다. “처음엔 백핸드로 제대로 넘기지도 못하는 분들이 많은데 정말 잘 하신다.” “백핸드가 이 정도면 포핸드는 더 잘 하실 것 같다.” 공 한번 칠 때마다 김 감독은 열심히 추임새를 넣었다. 테니스 하러 간다고 라켓 뒤적대는 나를 비웃던 아내에게 들려주고 싶은 목소리였다. 나를 피하는 시선과 흔들리는 눈동자는 비밀로 하고.

아직 안 끝난 거 아시죠

정현 선수 말처럼 우리나라에서 테니스는 비인기종목이다. 1980년대가 최전성기였다. 대기업들마다 팀이 있었고, 일반인들도 아파트 안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즐겼다. 대기업 팀이 하나 둘씩 사라지더니 아파트 단지 안 테니스장도 놀이터로 바뀌었다. 지금은 NH농협은행 같은 금융권,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팀을 유지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유라 사태’까지 터졌다. 박용국 NH농협은행 스포츠단장은 그래서 답답하다 했다. “물론 잘못됐지요. 분명히 고쳐져야 할 부분이 있지요. 하지만 테니스 같은 개인 종목은 대기업 후원 없이 유지, 발전이 어렵다는 점도 꼭 알아주셨으면 해요. 대기업의 지원이 지닌 순기능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라켓을 파고든 공이 휘감겼다 다시 튕겨져 나간다. 짜릿한 손맛이 느껴진다. 류효진 기자
라켓을 파고든 공이 휘감겼다 다시 튕겨져 나간다. 짜릿한 손맛이 느껴진다. 류효진 기자

선수들 입장에서 가장 답답한 건 해외 시합 출장 기회다. 후원 없이는 어렵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 경산시청에 속했다. “저는 그래도 비교적 지원을 잘 받아 해외 경기에 출전해 경험도 많이 쌓았습니다. 그런데 나머지의 경우 선수단 유지하고 전국체전 치르는 데 집중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한편으론 고맙지만, 다른 한편으론 아쉬운 부분이 있는 거지요.”

테니스계가 정현의 활약을 달콤쌉싸름하게 바라보는 이유다. 정현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다. 보통 테니스 선수 전성기는 24~27세로 본다. 정현은 아직 스물두 살이다. 또 이번 호주 오픈으로 ‘자신감’을 장착했다. “예전에는 스스로 불안하니까 멀찍이 뒤로 물러서서 완전히 수비형 게임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호주 오픈을 보니까 베이스라인에 바짝 붙어서 공격적 플레이를 하더군요. 이길 수 있다고,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 믿기 시작한 거죠.” 더 전진할 수 있을까. “정현이요? 중학생 때 이미 웬만한 여자 성인 선수들을 다 이기던 아이였어요. 가능성을 믿습니다.” 그나저나 라켓 꺼내든 김에…

고양=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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