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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앞 반려동물 화장장 반대...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하나

입력
2018.02.06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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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재산권ㆍ건강권 침해”

150m 거리 4만 가구 택지개발 중

악취 나고 오염도 심할 것 뻔해

협의 없는 일방 추진 동의 못해

#업체측 “공익요건 갖춘 편의시설”

환경오염ㆍ생태계 파괴 증거 없어

법원서도 대부분 업체 손 들어줘

혐오시설이란 그릇된 인식이 문제

동물장묘시설이 들어설 예정지인 파주 교하동에 1일 이를 반대하는 주민대책위원회의 임시천막과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전혼잎 기자
동물장묘시설이 들어설 예정지인 파주 교하동에 1일 이를 반대하는 주민대책위원회의 임시천막과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전혼잎 기자

“사람을 태우는 화장장이라고 해도 머리 아플 판인데, 개 화장장이라니요. 내 나이 칠십 평생 별 꼴을 다 봅니다.”

1일 오전 경기 파주 교하동에서 만난 주민 이모(71)씨는 인근에 ‘동물장묘시설(화장장)’이 들어올 예정이라 전하면서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반려동물서비스업체 A사는 2016년 1월 이 지역에 동물 사체를 화장하는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밝히고 파주시에 관련 신청서를 제출했다. A사는 이미 동물 화장장 운영을 위한 내부 기계 설치공사까지 모두 끝낸 상황. 이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즉각 대책위원회를 꾸려 동물 화장장이 세워질 예정지 근처에 임시천막을 설치한 채 2년째 반대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동물 화장장에서 고작 75m 떨어진 곳에 민가가 있고, 직선으로 150m 거리에 3만9,521가구가 들어설 운정 3택지 개발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뚝 떨어진 산골짜기도 아니고 마을 한복판에 악취도 나고 오염도 심할 화장장을 왜 지으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접점 못 찾는 파주 동물 화장장

반려동물 보유 인구 1,000만 시대가 열린 지 오래다. 이제 개나 고양이를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며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풍경은 익숙해졌지만, 이들이 세상을 떠난 후 사체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반려동물의 사체는 폐기물관리법 의해 의료 폐기물로 분류돼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동물병원 혹은 정식 등록된 동물장묘업체에 맡겨야 한다. 사체를 임의로 땅에 매장하거나 무단투기하는 것은 불법으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반려동물 약 54만 마리가 죽음을 맞았으나 이 중 단 5.8%에 불과한 3만1,000여 마리 정도만 화장됐고 나머지는 불법 매장되거나 버려졌다.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전국의 동물장묘업체는 총 25곳. 2008년 경기 군포와 광주에 각각 3곳과 1곳이 생긴 후 동물 장례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매년 한 두 곳 이상의 관련 시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갈수록 시설을 통한 반려동물을 화장하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본 업체들이 너도나도 동물 화장장을 설치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특히 전국에서 반려동물이 가장 많은 수도권 근처에 수요가 몰리면서 경기 지역에만 전체의 절반(44%)에 달하는 11곳이 존재한다. 서울은 대기환경보전법과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동물 화장장이 아예 들어설 수 없다. 현행법상 동물 화장장 설치는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라 일정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가능하다. 다만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이를 의식한 지방자치단체가 등록신청서를 반려하거나 건축허가를 받아주지 않으면서 업체와의 법정 소송전으로까지 번지는 등 갈등의 골은 깊어가고만 있다.

파주에서도 2016년부터 시청과 A사 간의 법정다툼이 이어졌다. A사가 같은 해 1월 동물장묘업 등록신청서 및 건축허가를 내자 시청 측에서는 화장시설의 규정 미비 등을 들어 보완을 요구했고, 기한 내 보완이 이뤄지지 않자 신청서를 반려했다. A사는 파주시를 상대로 동물장묘업 영업등록 신청 반려처분 취소청구 등의 행정심판을 청구해 승소한 데 이어 서울고법의 항소심에서도 이겼다. 파주시 측에서는 다시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파주 대책위 측에서도 반대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조현욱 파주 주민대책위원장은 “주민들의 재산권 및 건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 화장장 인근에 천막을 설치하고 벌써 1년 넘게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면서 “반대 서명도 받고 있는데 인근에 들어설 운정신도시연합회에서도 함께하면서 총 1만명 이상이 서명을 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주민들은 반려동물의 증가로 동물 화장장이 필요하다는 점엔 공감하더라도 협의 없는 일방적인 입지선정 및 추진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 위원장은 “처음에 건물이 들어설 때 주변에서 ‘뭐 하는 공장이냐’고 묻자 A사에서는 반려동물 용품을 만드는 곳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나중에야 동물 화장장이란 사실을 알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반려동물 사체를 종량제 봉투에 버리라고?

동물 화장장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지역은 파주뿐이 아니다. 경기 고양과 용인, 수원, 그리고 인천, 대구, 전북 전주, 경남 김해 등지에서도 동물장묘시설을 설립하겠다는 신청이 잇따르면서 지자체와 법적 소송이 벌어졌다. 법원은 대부분 업체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해 9월 수원지법 행정1부는 용인 처인구청장을 상대로 한 B사의 ‘개발행위 불허가 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동물 장례식장이 환경오염이나 생태계 파괴를 초래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대구 서구에서도 주민 1,000여명이 동물장묘시설 반대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서구청이 관련 건축허가를 불허했으나 업체 측에서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총 5곳의 업체가 동물 화장장을 세우겠다고 나섰던 경남 김해에서는 시청에서 이중 3곳에 대해 불허 결정을 내렸지만 행정심판에서 부당하다는 결론이 났다. 나머지 2곳은 사업 검토 중이거나 허가는 이미 났으나 주민 반발에 부닥친 상태다. 결국 김해시청에서는 공설 동물장묘시설 건립을 위한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다. 김해시 측은 “실제 동물 장묘 수요뿐 아니라 주민들의 민원을 최소화할 입지, 환경오염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동물장묘업체 측에서는 법 규정과 판결이 나와있는데도 지자체가 주민들의 여론에 떠밀려 ‘불허가’를 남발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동물 화장장은 혐오시설이 아닌 공익적 요건을 갖춘 ‘편의시설’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이다. 대전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 허모(42)씨는 “지역에 동물 화장장이 없어 매달 병원에서 나오는 동물 사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라면서 “시청에서는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버리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면서 지낸 사람들에게 그게 가능하겠냐”고 말했다. 전국에서 동물 화장장이 아예 없는 지역은 서울을 비롯해 인천과 대전, 강원, 전남, 울산, 제주 등이다. 심지어 인천은 2016년 기준 전국에서 네 번째로 많은 반려동물이 등록(총 7만193마리)돼 있는데도 관련 시설이 하나도 없다. 이로 인해 인천 군수ㆍ구청장 협의회에서는 동물 화장장 건립을 건의했으나, 인천시에서 중장기 검토사항으로 돌리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한 동물장묘업체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지자체 측에서도 이를 알면서도 주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꼬투리를 잡으면서 시간을 끄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반려동물이 늘어나면서 주인들도 제대로 된 화장절차를 선호하는 추세인데, 여전히 동물 화장장이 혐오시설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남아있는 것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전국 25개의 동물 화장장의 가동 능력과 사망 반려동물 수, 화장률을 감안했을 때 현재로서도 공급이 충분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추가 설치가 필요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람의 경우 화장률이 80%에 육박하는데도 2024년까지 전국 60여개의 화장장만으로도 가능한 상황에서 화장률이 5.8%에 불과한 반려동물의 화장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면 또 다른 문제만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경기 김포에서 동물장묘시설인 ‘페트나라’를 운영하는 박영옥(53) 대표는 “요즘 동물장묘사업을 블루오션으로 여기는 시선이 많지만 실제로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을 보면 손님이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업체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게다가 정식으로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으로 동물 화장장을 운영하더라도 그다지 많지 않은 벌금만 내는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대놓고 배짱영업을 하는 불법업체도 적지 않다”면서 “무턱대고 관련 시설을 늘리기보다는 수요와 공급을 적절하게 맞춘 상황에서 엄격한 환경기준과 규제를 세우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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