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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의 판사의 길] 희생양(犧牲羊)과 ‘마이너스1’의 제의(祭儀)

입력
2018.02.01 13:4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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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이른바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으로 소년법 폐지 여론이 들끓자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밀려들었다. 국민의 날 선 물음에 즉답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한데 그런 상황에서 소년재판 전담 판사인 나를 호명한 것이었다. 소년법 폐지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했기에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하는 상황에서 생방이나 다름없는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 달가울 리 없었다. 하지만 국민들이 나를 소환한 까닭을 잘 알기에 고심 끝에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약간 응용해 보기로 했다. 내 쪽에서 먼저 질문을 던져 사람들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향해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이때도 나는 먼저 그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부산여중생폭행사건과 같은 폭력을 조직폭력배들이 저질렀다고 하면 그들에게 형을 얼마나 선고하면 좋을까요?” 이 질문에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들의 대답에 근거해 본다면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선고할 수 있는 형은 징역 10년을 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형은 현행 소년법에 의해서도 충분히 선고될 수 있는 형이다. 따라서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의 경우는 소년법을 폐지하지 않고도 가해자들을 엄벌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결국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이 발생한 이후 그 가해자들인 비행청소년들을 엄벌해야 한다며 소년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한 사람들은 당해 사건에 적용될 법 규정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여론에 동조하여 감정적으로 대응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유사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비행청소년들의 잔혹성과 법을 무시하는 듯한 행위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혐오는 최근의 사태에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 소년원에서 5개월 만에 퇴원한 아이가 대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았다는 기사가 났었는데 무심코 본 댓글 창에는 그 아이에 대한 원색적 비난으로 가득했다. 이는 비행청소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제대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비행’ 또는 ‘범죄’라는 꼬리표만 붙으면 청소년들에 대해 무자비한 돌팔매질을 해대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희생양 만들기’라는 깊고 오래된 정치사회적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인류 사회의 문제는 ‘자원은 유한한데 욕망은 무한하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유한한 자원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을 하고, 그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무리를 형성하면서 시작된 공동체 의식은 때로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이나 히틀러 시대의 ‘유태인 말살 정책’처럼 집단적 광기로 표출된다. 무리에 편입되지 않은 소수를 소외시켜 이들을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희생양이 선택되면 적어도 그가 존재하는 동안에 다른 구성원들은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희생양이 사라지면 무리는 또다시 희생양 만들기에 나선다. 전체에서 하나를 빼는 방식, 즉 “보편적 카오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이너스 1’의 제의”(진중권, ‘폭력과 상스러움’)는 이렇게 계속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역사에 계속 존재했었고 지금도 우리 사회 도처에서 발견된다. 현재 학교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이른바 ‘왕따’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 아이가 왕따의 표적이 되었다가 벗어나면 가해자들은 또 다른 표적을 만들어 왕따를 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학교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나 직장 등으로 점점 침투해 들어가고 결국에는 우리 사회 전체의 모습으로 변화해 갈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들어 기승을 부리는 여성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감 표출도 이런 현상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특히, 요즘 보이는 비행청소년에 대한 극단적 혐오는 희생양 만들기의 전단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찌 보면 이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누구도 비행청소년들을 대변해 주거나 지지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자칫 잘못하면 세대 간의 단절이라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비행청소년을 상대로 시작한 일이 청소년 참정권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전체 청소년과의 대결 구도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범죄 소식을 접할 때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국가가 저출산으로 위기로 치닫고 있는데 한 명의 아이라도 더 건져내어 올바른 시민으로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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