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운전자론’을 내세워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는 인상을 주고 있지만, 실제로 운전대를 쥐고 있는 것은 북한의 김정은이다. 자신의 ‘압박’이 통했다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실 문 대통령의 조종에 이끌려 뒷자리에 앉아서 끌려가는 신세다.”
20일 발행된 기사에서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의 애나 파이필드 도쿄지부장이 묘사한 최근 남북대화의 모양새다. WP는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남북대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은 매우 크다”고 공개 발언한 것이 사실은 6일 전인 4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한 사항이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기존 의도였던 대북 압박과 달리 남북대화를 멀리서 지켜보는 처지지만, 이를 지지하는 대신 자신의 지분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한국 관료는 이를 두고 WP에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정책인 대북압박정책을 완화하도록 은근히 조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WP는 실제로 남북대화를 주도하는 것은 미국도 한국도 아닌 북한이라고 전했다. 한국은 협상 과정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시기 북한의 관현악단과 응원단 파견에 이어 올림픽에 출전하는 여성 아이스하키 종목 단일팀 형성에도 동의했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이 설정한 협상시간과 의제에 전폭 동의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한국 내에서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WP는 북한이 새해 들어 적극 대화에 나선 이유로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핵 버튼’ 설전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데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또 실제로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효력을 발휘했다는 관측도 내놨다.
반면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올림픽 참가가 핵 프로그램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호기로 보이지만, 북한은 핵 문제를 논의할 상대국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 내에서는 올림픽 종료 후 한미 군사훈련이 재개되고 북한이 이를 문제 삼아 대화를 중단하려 들 경우 오히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정부 내 매파가 전쟁을 주장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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