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유승민의 ‘따뜻한 공동체’ 언급
‘정의로운 대한민국’ 강조한 것도 공통점
‘사랑 없는 결혼’?… 정치 스타일이 관건
정치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출사표’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정치를 집약한 언어다. 한 정치인이 지향하는 신념과 가치를 알려면 출사표를 봐야 하는 이유다. 18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통합개혁신당을 만들겠다”며 통합선언을 했다. 1년 전 두 사람의 대선 출마 선언문에는 어떤 교집합이 있었을까. 또 이날의 통합 선언문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를 살펴보는 일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출사표에 똑같이 들어간 ‘따뜻한 공동체’
공교롭게도 지난 해 두 정치인의 출사표에는 공통점이 많다. 특히 안철수 대표가 출사표에 유승민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따뜻한 공동체’라는 표현을 쓴 데에 눈길이 간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가장 큰 차이라고 여겨졌던 안보는 안 대표가 출사표에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국민의당 내 옛 동교동계나 호남 출신 의원들은 지금도 햇볕정책 계승 여부 등 안보 노선을 내세워 극렬하게 통합을 반대하고 있다.
이날의 통합선언문은 사실상 지난 해 두 사람이 밝힌 대선 출사표의 ‘통합본’이었다. 통합선언문 속 “정의와 공정, 자유와 평등, 인권과 법치의 헌법가치를 지키겠다”는 문구는, 유 대표의 ’정의, 자유, 평등, 법치’와 안 대표의 ‘공정, 자유, 책임, 평화, 미래’를 합친 것이다. 유 대표의 ‘용감한 개혁’은 안 대표가 강조해온 ‘미래의 가치’를 녹여 ‘미래를 위한 개혁’이 됐다.
두 사람이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자신들이 하겠다고 제시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는 안 대표가 즐겨 써온 표현이다. 여기에 유 대표의 ‘민주공화국’을 덧대 “문제해결 정치로 대한민국을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따뜻한 공동체’도 이날 통합선언문에서 빠질 리 없다.
통합선언문, 두 사람 출사표의 ‘합본’
지난해 대선 때 출사표는 유 대표가 1월 26일, 안 대표보다 먼저 던졌다. 헌법을 정치의 바이블로 삼는 유 대표는 대선 출마 선언 장소로 국회 헌정기념관을 택했다.
유 대표는 정치를 시작한 이후 줄곧 강조해온 ‘따뜻한 공동체’, ‘정의로운 민주공화국’, ‘개혁’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정의, 자유, 평등, 법치가 살아 숨쉬고 시민들이 함께 공공선을 추구하는 세상’이란 기조 아래 출사표를 써내려 갔다.
안 대표는 두 달 뒤인 같은 해 3월 19일 출마 선언을 했다. 안 대표는 서울 종로구의 강연 전문 혁신기업인 마이크임팩트 스퀘어에서 대선 출정식을 했다. CEO 출신이자, 개혁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당시 안 대표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안철수의 편지’라는 제목을 붙인 출마 선언문을 밝혔다.
그는 ‘공정, 자유, 책임, 평화, 미래의 가치를 수호하는 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안 대표가 ‘따뜻한 공동체,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쓴 점이다. 이 때부터 안 대표가 유 대표에게 공개적인 ‘러브콜’을 보낸 것일까.
격차 해소나 자유의 가치, 책임 정치를 강조한 점도 유 대표와는 큰 공통점이다. 양당 통합의 걸림돌로 지적됐던 안보 분야는 공교롭게도 출사표에서 비중이 적었다. 안 대표는 당시 “평화는 미래”라며 “국방비를 늘려서라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강안보를 실현해야 한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두 사람 모두 청년의 박탈감으로 출사표를 시작한 점도 흥미롭다. 유 대표는 국정농단 사태 때 충격을 던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야’라는 말을 들며 “젊은이들의 서러움, 자식 가진 부모의 한탄”을 거론했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의미다.
안 대표는 “청년의 눈물을 보고 정치를 시작했다”며 초심을 되새겼다. 안 대표는 “5년 전 저를 불러낸 분들은 정치를 배우라고 불러낸 것이 아니라 바꾸라고 불러내셨다”며 “더 큰 간절함과 강철 같은 의지를 담아 정치를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가 출사표의 끄트머리에 “삼월의 바람과 사월의 비가 오월의 꽃을 데려온다”며 “오월은 통합, 희망, 미래”라고 한 점도 새삼 다시 보인다. 당시엔 대통령이 되어 국가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겠지만, 유 대표와 ‘신당창당’으로 손을 잡은 지금엔 ‘대선 도전과 당 대표를 거친 양당의 통합’으로 읽히는 것이다.
초선 때부터 유승민에 관심 표한 안철수
안 대표는 초선 때부터 유 대표에게 관심을 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19대 국회 때 유 대표는 여당인 새누리당, 안 대표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었지만, 따로 유 대표를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처음 ‘독대’를 한 건 유 대표가 19대 국회에서 국회 국방위원장을 할 때로 알려졌다. 이후 유 대표가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당선됐을 때도 안 대표가 축하 인사차 만나기를 희망한 적이 있다. 비공개 회동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며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 그 뒤에도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며 현안에 대한 견해를 나누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1년 뒤인 이날 자유한국당과 여권을 겨눠 “한국 정치는 낡고 부패한 기득권 보수, 무책임하고 위험한 진보가 양 극단을 독점하면서 진영의 논리에 빠져 있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건전한 개혁보수(바른정당)와 합리적 중도(국민의당)의 힘을 합쳐 정치의 혁신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두 사람이 꾸려나갈 통합신당의 미래다. 정치적 신뢰는 단박에 쌓아지지 않는다. 유 대표가 그간 국민의당 내부 상황을 들어 통합신당 창당의 속도에 신중을 기한 이유다. “사랑 없이 섣부른 ‘정략결혼’을 했다가는 깨지는 것도 순식간”이라는 주위의 우려도 컸다. 두 사람의 정치 스타일이 맞을지도 관건이다. 두 사람을 잘 아는 정치권 인사는 “안 대표는 그간 자신을 도운 정치적 멘토들이 모두 떠나 ‘마이너스의 정치’를 해온 사람이고 유 대표는 추구하는 신념과 가치가 맞지 않으면 동행하지 않는 정치의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며 “두 사람이 한 배를 잘 이끌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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