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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문 대통령의 '그날'이 오려면

입력
2018.01.11 15: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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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후폭풍 거세도 흐름 못돌려

정책의지 뒷받침할 우호적 환경 중요

집권세력 전체가 사회 각계 설득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할 취재기자를 지정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할 취재기자를 지정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예상했던 대로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문재인 정부가 거센 최저임금 역풍을 맞고 있다. 6,470원인 시급이 1월부터 7,530원으로 16.4%나 오르자 여기저기서 '살아남기 위한' 반칙과 편법이 판치고, 영세자영업의 몰락과 일자리 급감을 경고하는 전망이 줄을 이은 탓이다. 보수 정당과 언론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며 아파트 경비원 등 한계 취약계층의 해고 사태를 부풀리고, 이를 호재 삼아 정부를 압박하는 데 여념이 없다.

물론 정부가 좀 더 신중하게 접근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대ㆍ중소기업 간 갑을 문제가 아니라 을을 갈등인 만큼 최저시급 1만원의 근거를 분명히 하고 사업주 및 업종별 감당능력과 정부의 지원여력 등을 면밀히 따져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의 자율결정이라고 강변할 것이다. 하지만 '3년 내 시급 1만원' 공약의 포기를 권고한 어수봉 위원장도 지적했듯이 위원회가 문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움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교섭에서 사용자 측이 12.8% 인상한 7,300원 깜짝 카드를 내놓았는데도 공익위원들은 한술 더 떠 노동자 측 손을 들어주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약속에 강박관념을 가진 문 대통령이나 소득주도 성장을 개척하는 정부 입장에서 최저임금 공약은 삶의 질을 비추는 등대 같은 것이다. 문 대통령이 새해 첫 비서관회의에서 "극심한 소득불평등 해소와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정책"이라고 강조하고 그제 신년 기자회견에서 "(소득주도 성장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쐐기를 박은 것은 이런 맥락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니 어디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또 어디서 돌연 길이 끊길지 알 수 없다. 각종 지원책으로 당장의 부작용과 후유증을 극복한다고 해도 중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주름살과 상처를 남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비관적 전망과 긍정적 기대가 엇갈린다. 노동시장 구조와 국내외 사례를 따져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27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충격에 따른 일시적 조정을 거친 후 일자리의 양과 질이 모두 개선된다는 반론도 있다.

국정을 시험대 삼아 설익은 실험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도전과 성취엔 대가가 따르는 법. 성장과 고용의 상관관계가 무너지고 노동의 가치를 새로 정의해야 하는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시간이고, 신자유주의든 케인즈주의든 전통 경제이론과 익숙한 사고체계의 수명이 바닥난 시대다. 기존 사회경제 프레임을 뛰어넘는 창의적 발상을 요구받는 시기이고 그에 따른 혼란과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시즌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영화 '1987'을 관람한 후 "한순간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역사는 긴 세월을 두고 뚜벅뚜벅 발전하고 우리가 노력하면 바뀐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영화에서 가장 울림이 컸던 대사로 평범한 보통시민을 대표하는 연희가 읊조린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그런 날은 안 와요'를 꼽았다. 신년사에서 "우리가 민주주의 역사와 희망을 다시 쓸 수 있었던 것은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 평범한 가족의 용기 있는 삶 덕분"이라고 말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지금 '그런 날' 혹은 '그날'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국민 개개인의 삶이 안전하고 안정된 날일 것이다. 그래서 '1987'의 엔딩을 장식한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을 듣는 감흥이 남달랐을 법하다.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현장의 아우성과 잡음을 인정하면서도 정책의지를 더욱 굳힌 이유일 게다.

그런데 아쉽고 불안하다. 무릇 정책은 의지와 능력과 환경이 잘 어울려야 효과를 낸다. 최저임금의 경우, 의지는 충만하되 능력은 의심스럽고 환경은 비우호적이다. 시장은 정의나 선의로 다스려지지 않는다. 집권세력 전체가 정ㆍ재ㆍ노동ㆍ언론계 등을 상대로 우호적 환경을 만드는 일에 더 절실하게 다가가야 한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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