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사업가 애덤 뉴먼(Adam Neumann)은 2008년(당시 28세)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에그 베이비(Egg Baby)’라는 이름의 아동복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 중이었다. 이 회사는 무릎 부분에 천을 덧댄 아기용 바지를 팔았는데,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를 둔 부유층 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뉴먼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고민이 하나 있었다. “백화점처럼 고객들이 직접 찾아와 상품을 사 가는 것도 아닌데 사무실은 크고 임대료는 비싸다. 여기서 새 나가는 비용을 줄일 수는 없을까.”
이때 같은 건물에서 일하던, 친구이자 건축 설계사인 미겔 매켈비(Miguel McKelveyㆍ당시 34세)가 뉴먼에게 “큰 사무실을 작게 쪼개서 재임대 하자”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마음이 통한 둘은 그 길로 건물주를 찾아가 한 층을 통째로 임차하겠다고 요구했다.
건물주는 부동산도 모르는 젊은이 둘이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월 5,000달러를 선불로 낼 자신이 있으면 빌려주겠다”고 무시하듯 말했다. 그런 건물주에게 뉴먼은 “후불로 임대료를 주는 대신 월 7,500달러를 주겠다”며 맞받아쳤고, 계약서를 쓰자마자 한 층을 15개 공간으로 나눠 사무실 당 월 1,000달러를 받아 수익을 냈다.
이 임대 사업을 위해 탄생한 회사가 바로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WeWork)의 전신인 ‘그린 데스크’다. 당시는 금융위기가 몰아 닥친 2008년이었지만 그린 데스크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불경기에 몸집을 줄인 창업가와 영세 사업가들이 이 회사로 몰려왔다. 창업 1년 만에 그린 데스크는 넘치는 수요를 감당 못해 뉴욕 퀸스와 브루클린에 지점 7개를 열어야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공유 사무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본 뉴먼과 매켈비는 2010년 그린 데스크를 매각한 뒤 지금의 위워크를 차렸다.
5년만에 기업가치 200배
위워크는 통상의 사무실 임대업에서 한발 더 나간 회사다. 사무실 크기에 따라 월 450~1,000달러를 지불하는 것 자체는 여느 부동산 임대업자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위워크는 단순히 공간만 빌려주는 게 아니라 입주 기업의 성장을 돕는 각종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것에서 차별점을 뒀다.
입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직원들은 위워크가 제공하는 무료 카페에서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소통하고 협업한다. 공동 회의실은 스크린, 레이저 프린터 등 회의를 위한 각종 장비로 가득 차 있는데 입주 기업은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위워크의 사무실들은 시멘트 대신 유리 벽으로 구획이 나눠져 있기 때문에 입주자끼리 얼굴을 익히기도 딱 좋은 구조다. 이렇게 쌓은 인맥으로 기업들은 사업 정보도 공유하고 필요한 인력도 구한다. 부동산 임대업을 넘어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한 위워크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위워크는 현재도 경이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forbes)에 따르면, 2012년 1억달러였던 위워크의 기업가치는 올해 200억달러(약 22조6,000억원)를 넘어섰다.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평가액이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이기도 하다. 2010년 뉴욕 맨해튼의 한 건물에서 시작한 위워크는 불과 7년 새 전세계 29개 국가 59개 도시에 진출, 273개 지점을 두고 있다.
이 중에는 서울도 껴 있다. 지난해 8월 한국 공유사무실 시장에 뛰어든 위워크는 서울 강남, 을지로, 역삼, 삼성 등 기업이 몰려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지점을 열면서 빠르게 세를 넓히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여의도와 서울역에도 지점을 추가로 낼 예정이다. 위워크 한국 담당자인 매튜 샴파인 매니저는 “한국의 상징성 있는 건물들에 입주해 더욱 강력한 커뮤니티를 형성할 것”이라며 “내년 새 지점을 열면 총 1만명 이상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실적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뉴먼은 미 언론에서 “위워크로 연간 10억달러 안팎의 수익을 내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고 있는 뉴먼은 최근 미 종합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올해의 40세 이하 영향력 있는 인물 40인’ 리스트에 열 두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키부츠로 배운 공유경제
위워크 사업의 핵심 키워드는 회사명(‘위’ㆍWe)에도 담겨 있듯 ‘우리’라는 공동체다. 이 개념은 뉴먼이 어린 시절 경험한 이스라엘의 ‘키부츠(Kibbutzㆍ생활공동체) 생활이 밑바탕이 됐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그는 9세 때 부모가 이혼해 이후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게 됐다. 의사인 어머니는 같은 해에 자식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폴리스 병원에서 레지던트 수련을 하다 이듬해인 1990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의사 생활로 바빴던 뉴먼의 어머니는 육아와 일을 홀로 감당할 수 없어, 아이들과 가자지구 접경지대에 있는 니림 키부츠로 들어갔다. 히브리어로 ‘집단’을 뜻하는 키부츠는 사유재산을 가지지 않고 구성원들끼리 국유 토지에서 농사를 짓고 결과물을 나누는 등 대규모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게 특징이다. 주거 공간은 가족 단위로 할당되지만 식사는 공동 식당에서 하고 옷도 공동으로 구입해 공평하게 배포된다.
이곳에서 뉴먼 역시 수백 명의 유대인들과 대가족처럼 지내면서 공동노동(텃밭 키우기 등) 등을 해나갔다. 낯선 이들과 몸을 부대끼고, 얼굴을 익힌 경험은 훗날 위워크를 ‘인적 네트워크의 장’으로 만드는 힘이 됐다. 뉴먼은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워크는 일이나 주 단위로 사무실을 대여해 주지 않는다”며 “최소 한 달 단위로 대여해주는 것은 위워크의 회원들끼리 충분히 교류하고 인맥을 만들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심장과 같은 뉴욕 맨해튼에서 부동산 임대업자로 부를 축적했지만, 사업을 관통하는 공유 정신, 즉 “함께 지식을 나누고 서로 도우면 모두 성장한다”는 철학은 키부츠 경험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공유 사업은 현재진행형
사무실로 성공을 맛본 뉴먼은 지난해 초 공동주거 서비스인 ‘위리브’(WeLive) 사업도 시작했다. 집을 개조해 여러 명에게 재임대하는 하는 기본 방식 등이 여러모로 위워크와 닮았다.
위리브는 입주자에게 ‘공간’만 빌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부가서비스와 공동체를 제공하는데 공을 들인다. 옷장 등 가구는 모두 개인 공간에 ‘빌트 인’ 형식으로 갖춰져 있고 세탁실과 운동센터, 라운지 공간 등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구조를 짰다. 입주민의 취향에 따라 주기적으로 채식주의자 요리모임, 잼 만들기 등 행사도 연다.
현재 위리브는 워싱턴 등에서 400여개의 집을 임대하고 있고 있다. 2020년 공사가 마무리되는 시애틀 주택에는 384개의 집이 들어설 예정이다. 위리브 사업 총괄 담당자인 제임스 우즈는 미 언론과 인터뷰에서 “어린 자녀를 둔 부모와 통근 시간을 줄이려는 직장인 등이 우리의 고객”이라며 “위워크와 위리브를 연결해 함께 살고 일하면서 놀 수 있는 건물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5월에는 사업 리스트에 ‘위워크 웰니스’(WeWork Wellness)를 추가했다. “운동도 외롭게 하지 말자”는 공유 철학이 이 사업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위워크 웰니스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가 뉴욕과 영국 런던 지역에 있는 지점 두 곳에 시간 별로 개설된 요가와 명상, 킥복싱 등 수업을 예약하면 대부분 무료로 운동을 즐길 수 있다. 스피닝 같은 일부 수업에 대해서만 15~20달러 사이 비용을 지불한다.
위워크는 최근 학교도 사들였다. 지난 10월 CNN머니는 “위워크가 뉴욕 코딩학원인 플랫아이언 스쿨을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2012년 설립된 플랫아이언 스쿨은 12주 동안 1만2,000~1만5,000달러의 학비를 받고 학생들에게 코딩교육을 포함해 웹과 아이폰 운영체제(iOS) 과정 등을 가르친다. 평균 취업률은 98%, 이곳을 나온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초봉 평균은 7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먼은 “전문가들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학교를 인수하게 됐다”며 “위워크 직원과 회원들은 누구나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뉴먼은 직장과 집, 운동까지 삶의 핵심 영역에서 그만의 거대한 공동체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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