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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가슴으로 쓴 편지] "돌봄 천시하는 세태 바꿔야 초저출산 해결돼요"

입력
2017.12.30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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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맘충으로 아이는 민폐 존재로

차별과 혐오는 여전히 우리 일상을 잠식

육아휴직 의무화·노동시간 단축 등

정부 차원의 노력 기울여 주세요

두 아들을 공동육아로 키우고 있는 '정치하는 엄마들'의 조성실 공동대표가 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던 중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조성실씨 제공
두 아들을 공동육아로 키우고 있는 '정치하는 엄마들'의 조성실 공동대표가 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던 중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조성실씨 제공

숨가쁘게 이어진 2017년도 어느새 저물어가네요. 어김없이 치열하게 대한민국을 살아낸 국민 모두와 누구보다 큰 부담과 열정으로 한 해를 지내셨을 대통령께 감사 및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2018년에는 더욱 뜨겁게 사랑하고 더욱 즐겁게 일하는 한 해가 되길 빕니다.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저는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86년생 조성실’입니다. 냉소를 기대로, 좌절을 희망으로 바꾼 지난 촛불의 경험과 새 정부 출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는 여전히 공고하게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맘충이 되고, 아이들은 민폐 존재가 되며, 교육 받을 당연한 권리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 사회. 저는 이 모든 바탕에 돌봄을 천시하는 가치 체계가 공고히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본래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존재이며 국가 공동체의 존속 역시 이러한 상호 돌봄에 근거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암암리에 ‘돌보고’, ‘돌봄 받는’ 모든 주체를 이류 시민으로 취급합니다. 아이와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일과 살림하는 시간은 하찮고 보조적인 것으로 치부되며,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떠안는 일처럼 여겨지지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폄하하면서 누구도 선뜻 하지 않는 일. 그것이 대한민국의 ‘돌봄’입니다.

돌봄을 천시하는 우리의 가치 체계야말로 청산돼야만 하는 적폐입니다. 초저출산 문제 역시 돌봄에 관한 국가적 재정의 없이는 불가능하고요. 저 역시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 받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또 얼마나 고된 일인지 말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이 아닌 얼굴을 보며 자라야 하고, ‘부모와 호흡을 맞추는 시간 안에서’ 자라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선 불가능하죠. 엄마에게는 단 두 개의 선택지만 주어집니다. 사회적 자아를 포기하거나, 누더기 상태의 일-가정 양립을 유지하는 것.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도 시장에선 작동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육아 휴직을 쓰지 못하고 쓰고도 당당할 수 없는 건, 개인의 ‘사적이고 하찮은’ 돌봄 노동을 위해 회사와 다른 구성원들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부모 육아휴직 의무화 및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강도 높은 법제도적 노력과 함께, ‘돌봄’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가치 재평가를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이들에게는 부모를, 부모에게는 시간을, 조부모에게는 자유를 되돌려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어쩔 수 없이 떠맡는 일이 아니라 고되지만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 될 때에야 돌봄과 살림의 성평등한 분담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 10차 개헌에 “모든 사람은 돌봄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돌봄권 신설), “국가는 자녀의 출생과 양육을 지원하여야 한다”(임신·출산·양육의 국가지원 의무화), “국가는 모든 사람이 일과 생활을 균형 있게 영위할 수 있도록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일·가정 양립 지원 의무화)가 명시돼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이를 위한 대통령님의 특별한 관심과 의지 표명을 요청 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돌봄의 가치 재평가를 위한 국민 담론 형성에도 주력해주시길 촉구 드립니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돌보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옹호되고, 그들이 처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모순이 해결될 때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대통령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저 역시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향해 변함 없이 노력해가겠습니다.

-두 아이를 돌보며 엄마들의 정치참여를 촉구하는 조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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